'불만'이라는 녀석에게 하고 싶은 말
'불만 → 편협 → 후회'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별명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워낙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다 보니 그 별명이 한 두 개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모두 기억하기 힘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별명 한 두 개쯤은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가끔,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가슴속에 있던 별명을 꺼내게 되면, '그래 내가 좀 그렇지'라며 웃어넘기게 되는 재미있는 녀석이기도 하죠. 별명은 타인에게 투영된 나의 모습과 타인에게 평가된 나의 모습과 나의 진실된 모습과 지나간 나의 모습(추억이라는 놈)을 모두 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별명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태생적 투덜이'입니다. 어릴 적에 봤던 만화영화 '스머프'에서 '난 그거 싫어'를 항상 입에 달고 사는 '투덜이 스머프'의 그 투덜이 맞습니다. 투덜이 스머프는 재밌습니다. 그 투덜댐의 원인이 뭘까 살펴보면 결국, 불만이 있어 투덜대기는 한다만, 사실 나도 왜 투덜대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 수는 없어, 라고 해야 할까요? 워낙 불만이 많고, 불만을 겉으로 이야기하며, 불만에 잠식되어 극단적 선택(회사에서는 퇴사가 되겠네요)을 자주 하다 보니, 처음에는 이러한 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붙인 별명이고, 십여 년을 이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타인도 인정하게 된 별명입니다.
가장 불만을 토로하는 대상은 당연히 '회사'입니다. 하루 중, 아니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고, 가장 많은 사람과 부딪히는 공간이고, 가장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공간인지라,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를 향해 불만을 터뜨리게 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한 편으로는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어'라는 불만을 쌓아갑니다. 회사라는 불특정 대상을 향한 불만이 쌓이다 보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에 대한 불만으로 그 방향이 서서히 이동합니다. 불특정 지역을 광범위하게 사격하는 포격에서, 한 사람만 뚫어지게 파고드는 저격으로 역할이 변화합니다. '회사는 왜 이리 답답할까?'라는 불만은 '저 친구는 왜 저렇게 밖에 못할까?'라는 불만으로 축소되고, 집중됩니다. 불만의 표면적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불량의 정도는 심해졌기에, 태생적 투덜이가 스머프만한 크기에서 걸리버만한 크기로 변화하는 순간입니다.
'불만'이라는 녀석은 참 신기합니다. 이쪽에 1이 투입되면, 다른 쪽에는 1이 감소해야 한다는 <열역학 법칙>을 전혀 따르지 않습니다. 아니면 <등가교환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요? 특별히 애정을 주는 것도 아닌데 불만은 또 다른 불만을 열렬하게 만들어냅니다. 다시 그 불만'들'은 또 다른 '불만들'을 만들어내어, 마치 복리이자 불어나듯 순식간에 불만이 불어나고 쌓입니다. 여유로 채워졌던 마음이 불만으로 가득 메워지는 것도 한순간. 그렇게 불만에 잠식당한 마음은 부정적 사고로 이어집니다. 쌓인 불만을 어딘가 터뜨려야 하는데 도저히 터뜨릴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면, 단톡방 중 하나를 공략합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불만을 털어냅니다.
불만'들'이 쌓여 '편협'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오로지 불만을 쏟아내야 하는 대상만을 바라봅니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타겟이 된 회사, 사람, 혹은 무언가만을 바라보는 편협함이 마음에 가득 찹니다. 편협의 시간이 팽배해질 때, 문득 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그대로 담아낸다고 하는데, 이렇게 편협한 사고와 부정적 기운의 발산으로 가득한 순간을 살고 있는 내가 과연, 여유롭고 자애로운 얼굴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아, 나는 드디어 꼰대의 반열에 드어 섰구나'
'생산적 불만은 창의의 원천이 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헙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 때 스머프 중에서 가장 발전적인 스머프는 똘똘이가 아니라 투덜이 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언제나 사회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결국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으니까요. 소위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불만을 가질 때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능력은 없는 사람이 불만을 가지면 그건 변화가 아니라 또다른 불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후회'를 옆에 두고 살아갑니다. 극단적 불만의 결과로 퇴사를 선택했을 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끝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쌓인 불만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 버리려는 '나'와, 나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그들'이 존재합니다. 어떻게 보면 '태생적 투덜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도 이런 나를 어떻게든 변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언제나 인상을 쓰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며, 불만으로 가득 찼던 마음에 후회라는 감정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참을 수 없었던 불만은 결국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불만과 편협과 후회의 반복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만을 가진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희망을 가지고 행복을 품으며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희망적일 순 없지만 반대로 언제나 불만이 가득한 상태일 수는 없습니다. 불만은 불만을 낳으며 나의 감정을 잠식하기에 조금이나마 스스로에게 주의를 주어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히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만의 끝이 언제나 후회로 남게 되는 걸 알고 있고, 여전히 불만을 다스리는 건 어렵기만 합니다.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불만을 죽이고, 언제쯤이면 여유의 한 숨을 마음에 담아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