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게도 생각을 비워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채워진다
라디오를 듣는데 첫곡부터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 기타 연주부터 중간에 염세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내레이션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곡이 퍼져 나온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자판에서 손을 내리고 눈을 슬그머니 감았다. 유튜브 등을 통해 내가 원하면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요즘이지만, 라디오라는 특수성이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래, 하루 종일 열심히 했으니 이 노래가 나오는 3~4분 남짓, 잠깐 눈 감고 농땡이 친다고 뭐라 하는 사람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노래에 몰입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노래에 집중하기 위해 하던 일도 잠시 내려놓고, 두 눈을 꼭 감았건만, 머리는 쉬질 못한다. 나도 모르게 생각에 생각이 꼬리는 무는 통해 노래를 듣는 건지, 업무 생각을 해려고 업무를 잠시 내팽겨쳤는지 헷갈릴 정도다.
'지금 하던 일이 이거였으니, 다음에는 뭘 해야 할까?'
'아까 생각한 콘텐츠 소재를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
업무에 대한 생각만 이어지는 게 아니다.
'메탈리카가 참 좋지, 다음은 어떤 노래를 들을까?'
'중간 내레이션 부분에 나오는 꼬마 목소리는 누구일까?'
'노래 듣는 건 좋은데, 볼륨이 너무 큰 건 아닐까?'
심지어는 노래를 들으며 브런치에 쓸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 노래에 몰입하기 위해 눈을 감고, 일도 잠시 내버려 둔 순간을 글로 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런치를 한 동안 쓰지 않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줬을까?'
'브런치에 올린 글이 좀 민감한데 계속 올려놔도 될까?'
'그래도 한 달 동안 애써 쓴 건데 비공개로 돌리자니 아까운데...'
'브런치에는 왜 글꼴 기울기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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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노래를 듣는 건가, 생각을 하는 건가?
'멍~하니 있는 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말이지 않을까?'
'멍한 건 겉모습일 뿐,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이 지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
노래의 절반 정도밖에 듣지 않았는데 생각이 넘쳐난다. 눈을 감으니 더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과 생각이 모여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한다. 잠시 노래를 들으며 가벼워보고자 한 것이었는데, 가득 찬 생각 덕분에 더욱 무거워짐을 느낀다. 이런, 내가 왜 노래 하나 온전히 듣지 못하는 거지?
급하게 반성하며 생각을 멈춰낸다, 생각을 비워낸다 그리고 생각이 끼어들 틈을 메우고 메운다. 하지만 쉽지 않다. 멈춘 생각은 엔진이라도 장착됐는지 언제든 달리고 있다며 왕왕대고, 비워낸 생각 사이로 또 다른 생각 - 그러니까 생각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그새 자리 잡는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멈추지 않으려는 생각과 애써 비워내려는 생각의 사투를 벌인 결과는, 엉망이 된 노래 감상의 상처만 남기고 노래는 끝나버렸다. 다시 라디오를 통해 프로그램 시작 첫 음악으로 enter sandman을 들을 수 있을까? 혹여나 그때가 오면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노래에 집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