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웃게 하는 마법을 부릴 수 없어요.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트로피가 되지 못한 어느 딸의 고백

by 보통엄마
"휴~"

긴 한숨 후에 열한 살의 나는 이내 사진들이 꽂혀있는 앨범을 덮는다.


내 열심으로는 절대 남동생의 존재감을 이길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그 마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날 아침 우리 집 풍경은 평소와 달랐다.


좁은 부엌은 왠지 들뜬 엄마의 분주한 모습과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가득 찼다.


처음 맛본 엄마표 김밥은 비록 다 터진 것들이었더라도 천상의 맛이었다.


엄마는 늘 그렇듯 많고 많은 예쁜 것들 중에서 꼭 나를 닮은 못난 것을 나에게 먹어보라며 먼저 주곤 했다.


그리곤 예쁜 것들을 골라 남동생 유치원 운동회날 엄마와 함께 먹을 도시락통에 줄을 세워 담았다.


마지막에 "톡톡" 두 번씩 깨를 뿌려 모양을 냈다.


엄마의 기계적인 "톡톡"이 나는 재미있고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이 "톡톡 김밥"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렇다. 오늘은 엄마가 그렇게도 기대했던 남동생의 유치원 운동회날이다.


엄마는 오늘을 위해 예쁘게 파마한 머리 양쪽으로 핀을 찔러 그 시대 유행했던 스타일의 머리를 흉내 냈다.


선홍빛의 점퍼는 활동적으로 보이면서도 모두의 시선을 확 끌기에 충분했다.


이날의 의상은 며칠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다.


나는 유치원은커녕 학원도 한 달 이상 가본 적이 없는데 엄마는 그 유치원에 남동생을 보내기 위해 접수날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섰다.


안 그래도 귀여웠던 남동생은 색이 노랗고 동그란 고무줄 끈이 달린 유치원 모자를 쓰니 꼭 병아리 같았다.


나에겐 왕관처럼 느껴지는 그 노란 모자를 쓰곤 좁은 방안을 신이 나 돌아다닌다.


아마도 이 집 안의 왕은 본인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꿈에 마지않던 것들이 남동생에겐 늘 기본 값이었다.


어찌 되었던 나는 그날 첫 엄마표 김밥을 먹어본 걸로 만족했다.


그날은 내가 하교 후 동생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휴식 같은 하루이니 나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며칠 후 유치원에서 받아온 그날 찍힌 엄마와 남동생의 사진들은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나는 외로웠다.

나의 엄마와 남동생의 엄마가 다른 사람 같다고 느꼈다.


우리는 분명 같은 뱃속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그 사진들은 꼭 나는 다른 뱃속에서 태어난걸 이제 알았냐며 진실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혹시 진짜로 나를 낳아준 나의 엄마는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어릴 때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이런 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 수많은 부당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런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눈물로 넘쳐흐르기 직전이었다.


사진 속의 선홍빛 잠바를 입은 예쁜 엄마는 포대자루를 야무지게 두 손으로 잡고는 포대 안에서 두 발로 점프하며 다른 학부모들과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학부모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었다.


"엄마에게 이런 표정이 존재하는구나."


젊은 그녀는 마치 그날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밝고 빛났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는 그냥 아직 젊은 엄마이자 여자였다.


젊은 엄마는 그날 그분위기에서 그녀의 고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었으리라.


또한 남겨진 딸의 외로움도 잊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엄마와 동생 몰래 엄마가 고이 모셔둔 앨범 속 그 사진을 보고 또 보곤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신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랬고,


나도 그렇게 엄마를 웃게 해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 보고 또 봤다.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며 동생만 유치원을 보내준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사실 진심은 나도 엄마를 이렇게 웃게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존재만으로 아무 노력이 없어도 엄마에게 이런 웃음을 선물해 줄 수 있는 남동생만이 가진 마법이 부러웠다.


"나도 아들이었으면 엄마에게 저런 웃음을 선물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못내 아쉬웠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이건 내 노력으로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알지만 나는 늘 아쉬웠다. 다음엔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존재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보완하고자 늘 뭐든 열심히 했지만, 그 열심은 엄마의 해석뒤엔 "독한 년"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나를 더 부족하다고 느끼고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엄마에겐 그저 나는 "더 독한 년"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혹은 "지랄 맞은 아이"


내 열심으로는 절대 남동생의 존재감을 이길 수 없었다.


나는 생존을 위해 이겨야 할 경쟁자로 동생을 규정했다.


나는 남동생이 가진 그 마법이 영원히 내겐 허락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하지만 사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나의 부모에게만 발휘되는 그 마법을 가지고 태어난다.


나는 그 진실을 다 커서야 깨달았다.


그저 나는 운이 없게도 나만의 마법이 발휘되지 않는 엄마를 만났을 뿐이었다.


그 이유로 나는 나를 태어날 때부터 나만의 마법이 결여되 출시된 불량품 같은 존재라고 인식했다.


남동생보다 열등한 나라는 걸 그게 내 존재라는 걸 어린 나는 스스로 내 몸에, 내 마음에, 내 자아에 주홍글씨처럼 아픈 줄도 모르고 새기고 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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