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 엄마로부터 한 번도 정직하게 비춰진 적 없던 나의 마음
해가 길어진 어느 여름 새벽 어슴프레 동이 튼다.
우리 가족은 아빠를 쫓는 빚쟁이들을 피해 다시 이사를 감행하였다.
이번엔 나지막한 산아래 약수터가 보이는 단독주택의 옥탑방 살이었다.
늘 그렇듯 주인집이 사용하는 정식 대문과 내가 사용할 쪽문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인 나는 이제 드나드는 대문의 형태만 봐도 그 사람의 경제 수준을 짐작할 줄 아는 "작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마치 엄마의 정신과 주치의와 같았다.
그 역할을 부여받은 나는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24시간 대기 중인 흡사 응급실 의사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녀의 감정쓰레기통 역할엔 남동생이 아닌 나만을 필요로 하였으므로 나는 역설적이게도 그 역할을 수행할 때만은 그녀에게 '특별히 인정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성장할수록 엄마가 나에게 강제한 4살 차이 남동생을 돌보는 임무와 가사노동은 더 구체적이고 더 가혹해졌다.
그것들을 완벽히 해내야만 나를 위한 시간이 허락되었으므로 나는 그 시절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운 놀이들로부터 속절없이 이별을 당했다.
남동생은 점점 힘으로도, 말로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갔고 통제되지 못한 남동생에 대한 엄마의 비난과 질타는 매일 받는 숙제검사처럼 늘 나를 기다렸다.
가끔은 도구를 가리지 않고 손에 집히는 대로 맞기도 했고 홀딱 벗겨져 문밖에 쫓겨나기도 했다.
엄마는 더 이상 내 보호자가 아니었다.
매일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 모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기어코 내 건강한 자아를 망가트리려는 폭군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빠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방관자였다.
"내가 딸한테 이런 말도 못 하니?"
"내가 어디 가서 이런 말을 하겠어, 딸한테 밖에 못하지"
"내가 이렇게 힘든데 네가 어떻게 누나가 돼서 네 생각만 하니?"
"내가 너를 믿어서 그렇지 너는 혼자서도 잘하잖아. 내가 아줌마들한테 니 자랑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내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발이 퉁퉁 부었어"
엄마의 오로지 본인을 지칭하는 "내가~"로 시작되는 연속된 문장들은 지금 되돌아보면 마치 속사포 랩처럼 들렸다.
그렇다. 엄마는 오늘도 랩을 시작했다. 그 지겨운 랩은 한시간은 족히 넘겨야 그 기운이 꺾였다.
그녀가 쏟아내는 배설물 같은 문장속에 어린 나를 배려하는 "너~"로 시작되는 문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너는 어땠어?"라는 그 질문은 오로지 본인으로만 꽉 차있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사전엔 존재하지 않는 문장이었다.
나는 늘 엄마의 표정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당함을 확인받고 싶었지만, 엄마는 자꾸 그 거울을 나에게 향해 그녀의 감정만을 알아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깨진 거울이라도 갖고 싶었다.
어린 나는 남동생도, 그런 엄마도 밉고 버거웠다.
열한 살의 나는 부모의 정서적, 물리적 짐을 그대로 나눠 갖는 "부모화"로 점점 웃음과 생기를 잃어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가정에서 그 역할이라도 필요했다.
어린 나의 정체성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역할에라도 기대어 내 삶의 이유를 부여했다.
이 역할을 제외한 내 존재의 이유는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 대도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어린 나는 내가 이 역할마저 포기할까봐 마음속으로 떨었다.
어린 나는 공포스러웠다.
언제까지 내가 이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이 엄마의 죽음 외엔 없다는 걸 깨닫곤 그런 생각을 한 내자신이 마치 악마나 더러운 오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이런 생각에까지 다다랐다는 걸 아무에게도, 내자신에게 마저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을 비밀창고에 넣고 영원히 열지 못할 큰 자물쇠를 걸었다.
아무도 나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하게 나는 사회적으로 더욱 완벽한 딸처럼 굴었다.
죄책감으로 인해 나는 더욱 내 희생의 강도를 높였다. 고백하자면 꼭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꼴이었다.
과도한 책임감과 부여된 역할, 그리고 죄책감 저 밑으로 내 십 대의 순수한 욕구와 반짝임은 흔적도 없이 묻혔다.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그 반짝이는 내 안의 것들을 알아차리길 거부했다.
그 간극이 너무 커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이 끝나지 않는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반짝이는 내 안의 그것을 잃어서 눈물이 나거나 하지도 않았다.
눈물은 기쁜 거다. 영혼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나는 그저 슬펐다. 내가 아무것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