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내게 준 선물, 영원히 활짝 웃지 못하는 마음
이사 온 약수터 아랫집은
산아래 위치해 아침이면
귀여운 새들의 노랫소리로
기상알람을 대신했다.
그것 하나로 나는 이 집을 좋아했다.
내려앉은 새벽공기를 자유로이 파괴하는
새들의 연주는 마치 용기를 주는 행진곡 같았다.
내게
눈을 떠 오늘을 시작해 보라고
오늘은 어제보다 괜찮을 거라고
손을 내민다.
우리가 사는 옥탑방 아래엔 주인집이 있었다.
그곳엔 나와 동갑내기의 사내아이 한 명과
어린 남동생이 주인집 부부와 함께 살았다.
샛방살이가 다들 그러하듯 나는 혹시라도
내가 주인집 아들들의 심기를 건드려
마음에 드는 이 집에서 쫓겨날까 봐
그리고 엄마의 화살이 나에게 향할까 봐
형제들의 웬만한 장난질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동거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런 기간마저도 잠시였다.
관계에서 힘의 불균형은 늘 경계선의 붕괴로 향한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동네엔
또래 아이들 사이에 자전거 붐이 불었다.
나는 아빠를 졸라 노란색 중고 자전거를 얻었다.
오락실 가 있는 남동생을 찾으러 다닐 때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동네 고물상에서 싸게 얻어 조금 손을 보니
예쁜 노란색인 데다 꼭 새것 같았다.
내 것을 별로 가져본 적이 없던 나는
그 자전거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아꼈다.
바람이 빠지면 바람 넣는 것도 재미있었다.
벨도 달려있어서 그걸 "딸랑" 하고 당겨 울리면
꼭 "나 여기 있어요~" 라고 나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노란 자전거를 누린 지 며칠이 지났을 때 즈음
주인집 아들의 심통은 점점 심해져 갔다.
우리 집 앞쪽엔 제법 경사가 높은 언덕이 있었다.
그 붉은 흙길 위에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했다.
도로를 깔끔하게 정비하는 것 같았다.
아스팔트가 깔리자 동네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되었다.
게다가 차량도 별로 다니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그 아스팔트 언덕을 내려올 땐
속도감에 약간의 스릴마저 느껴졌다.
어느 날 주인집 큰 아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야~ 나 이거 한 번만 타볼게 나 좀 빌려줘"
늘 양보했던 나지만 이것은 뺏기기 싫었다.
빌려달라고 했지만 평소 장난이 심했던
그 아이 손에 남아 날리 없었다.
"싫어~ 나 이거 망가지면 엄마한테 혼나"
나는 처음으로 작은 목소리로 거절했다.
주인집 아들은 뭔가 결심이나 한 듯 나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리곤 너무 쉽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이내 불안해졌다.
이렇게 쉽게 내 말을 들을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자전거를 받은 그 순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주인집 아들이 내 자전거를 자기 것처럼 탈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뺏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뺏긴 상태의
마음 상태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이것은 그 당시 나의 "방어기제" 중 하나였다.
미리 뺏겼다고 치고 실망해 버리는 게
차라리 마음이 덜 다치기 때문이었다.
나는 훗날 성인이 되어 깨달았다.
이것이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자란 자녀의 방어기제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선제적 포기"
이 방어기제는 힘의 불균형이 극심한 나르시시스트 엄마라는 환경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입는 '심리적 갑옷' 같은 것이었다.
내가 기뻐하려고 할 때마다 내면의 엄마가 속삭였다. "네가 감히? 곧 빼앗길걸?"이라고..
슝슝~~~~
나를 향해 달려온다.
언덕에서 노란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나를 향해.
주인집 아들의 자전거가 나를 노리고 있던 포식자가 되어 목표물인 나를 향해 달려든다.
금세 내 옆까지 다가와
내 노란 자전거를 공격한다.
자전거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나는
대처법을 모른 채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노란 자전거는 풍선처럼 가볍게 공중으로 날아간다.
나는 경사를 따라 주르륵~~~
두 팔을 앞으로 벌린 채 미끄러져 내려왔다.
"보복운전" 이아닌
"보복자전거"인 셈이다.
그 언덕 아스팔트 위에서
나의 앞니 두 개 중 하나는 꽤 깊게 갈렸고.
나머지 하나는 모퉁이를 살짝 갈렸다.
입술은 퉁퉁 부었고
아스팔트는 마치 범죄 현장처럼
나의 피로 흥건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 큰 사고였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집에 도착했다.
소식을 듣고 누워있는 나의 모습을
보러온 주인집 아주머니는
엄마에게 검정 비닐봉지를 쥐어줬다.
엄마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끝까지 친절했다.
그 검정 비닐봉지 속에는 고작
후렌치파이(과자) 두 박스뿐이었다.
검정 비닐을 들고선 엄마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조심히 좀 타지~ 그것 좀 빌려주면 어때서
하여튼 성격이 별나, 꼭 일을 만든다니까"
그때 엄마는 나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 주인집에서 받은 건 사과와 치료비가 아니었다.
그냥 과자 두박스 였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이후 나에게
어떤 치료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녀의 딸에게 영원히 활짝 웃지 못하는 상태를
기꺼이 선물했다.
그날 나는 완벽히 깨달았다.
세상에 나를 보호해 주는 보호자는 없다는 걸.
나는 울었지만 이가 아파 우는 게 아니었다.
나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게 서글퍼 울었다.
내 존재의 가치가 고작 후렌치파이 두박스라는
사실이 초라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