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다시 사랑할 핑계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사춘기딸은 영원히 같은 점에서 만날 수 없었다.

by 보통엄마

어린 나의 눈에 가난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혼자힘으론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무서운 덫이었다.


우리 가족은 힘껏 발버둥을 쳐봤지만

제자리걸음을 유지하기에도 벅찼다.

우리는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이사를 했다.


나는 자전거 사고로 갈려나간 앞니 때문인지

웬만해선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더 과묵한 소녀로 성장했다.


이런 내게도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본격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하는

사춘기가 도착해 있었다.


열네 살의 교복을 단정히 입은 소녀는

질문하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그지점에 떠밀려 서 있었다.


반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그동안 소녀의 마음속에만 차곡차곡

쌓여있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반드시 답을 해야만 했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과연 엄마에게 이유가 있기나 할까?"


엄마가 나에게 당연한 듯 행했던 차별과 부당함에

어떤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려진 감정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날 그녀에게

속으론 울었지만

겉으론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남동생과의 차별과 부당함을

내가 학대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

그건 엄마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이다.



조금 숨을 고른 뒤 그동안 정말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

.

.

.

.

"엄마 나한테 왜 그런 거야?"


.

.


'그녀의 마음이 아팠으면,
아파라. 아파라. 제발 아파라.
나의 이 말을 듣고 엄마의 마음이 아팠으면'



나는 그녀가 나의 말을 듣고

조금이라도 아프길 기대했다.


아프면 사과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유는 없지만 사과는 있지 않을까?


그때까진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그동안 엄마가 다른 엄마들이랑 조금 다르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것이 "나르시시스트 엄마"라는

무서운 이름이란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엄마가 사과를 하면, 나는 엄마를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중학생의 나는 아직 엄마의 사랑이 한참이나 필요했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 쉽게 대화를 거부했다.

그녀는 내게 준 모든 상처들을 짧은 두 문장으로 부정했다.


"내가 그랬니? 나는 기억도 안 나는데~
너랑 동생이랑 똑같이 키웠는데 너만 지랄이야~"


이런 질문을 하는 사춘기 딸의 등장

엄마에겐 그저 조금 더 "다루기 힘들어진 도구"

등장 일 뿐이었다.


이렇게 나의 열네 해 동안 준비한 질문은

기대와 다르게 싱겁게 끝이 났다.


나는 그렇게,

다시 엄마를 사랑할 핑계마저 잃었다.


그 무렵 나는 학교에선 말수가 적었지만,

집안에서는 점점 진실을 말하는

'트루텔러(True-teller)'가 되었다.


내가 성장할수록 엄마의 비난은 힘을 잃었다.

나의 성장은 그녀의 비난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집안에서 가장 건강한 판단력을 가진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희생양이었다.


나는 이제 나의 부모를 '절대적 선'이 아닌

'객관적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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