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전교 3등의 딸을 기어코 상고에 쳐 넣었다.
00 여중 3학년 10반 교실 안은 고등학교 원서 접수 막바지로 제법 소란스러웠다. 우리 모두 각자의 꿈을 향해 인생의 첫 갈림길 앞에 서 있던 시기였다.
'드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렸다. 담임 선생님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직감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랫말처럼 말이다.
선생님은 바쁘신지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물었다.
"00야, 전교 3등이 상고를 왜 가니? 어제 아빠가 학교에 오셔서 네 상고 진학 원서를 쓰고 가셨어. 알고 있었어? 선생님 생각엔 네가 너무 아깝다. 내일이 마감이니 집에 가서 부모님이랑 꼭 다시 상의해 봐. 알았지?"
엄마라면 당연히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에게 펼쳐질 찬란한 미래에 대해 꿈을 꾸지 않던가? 내게도 있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위해 그려놓은 엄마의 큰 그림이. 나의 엄마는 내가 살아내야만 할 인생의 결말을 친절하게도 미리 정해놓았다.
나는 가끔씩 나를 향한 엄마의 그 계획을 직감할 때마다 애써 외면했다. 그래도 그녀는 나의 생모이다. 내가 기댈 구석은 나의 생모가 정확히 맞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었다. 사람이라면, 엄마라면, 자식인 나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진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땐 내가 엄마를 더 사랑했다. 그래서 그렇게 순진하게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야 말았다.
나는 34년 전 엄마를 지금이라도 경찰서에 신고하고 싶다. 내 미래를 마음대로 망쳐 놓은 그 죄를 똑똑히 묻고 싶다.
"엄마, 그때 나에게 왜 그랬어? 그래서 좋아?"
그녀가 그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중3 소녀로 만들었다.
나도 그녀를 세상 가장 초라한 늙은이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쉰살이 되어도 이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엄마는 늘 내가 썩 괜찮은 성적표를 들이밀어도 무반응 이거나 혹은 그 성과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며 기를 죽이기 바빴다. 어떤 날은 가난한 집에서 딸이 성적이 좋은 건 비극이라고 까지 했다.
불안해진 내가 인문계에 보내달라고 애원하면 엄마는 아빠에게 물어보라 했고, 아빠는 다시 엄마에게 물어보라며 배구공 토스하듯 대답을 떠넘겼다. 결국 엄마는 본인의 면피를 위해 아빠를 내세워 나 몰래 상고 원서를 접수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매달렸다.
"엄마! 나 내 힘으로 대학 갈 수 있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문제집 사달라고도 안 할게. 집에서 돈 한 푼 안 가져갈 테니까 인문계만 가게 해 줘."
하지만 엄마의 답은 늘 똑같았다. 돈이 없어서 남동생 한 명만 대학을 보낼 수 있다는 것.
나는 울먹이며 반발했다.
"알겠어. 엄마 아빠가 번 돈으로는 동생만 보내. 대신 내 인생까지 동생 대학 가는 데 보탤 생각은 마. 공부도 내가 동생보다 훨씬 잘하잖아!"
전교생이 천 명에 달하던 시절, 나는 늘 반장이나 부반장이었고 수학·과학 영재반에 속해 있었다. 선생님들은 내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교사용 문제집을 몰래 챙겨주셨다. 나는 그 문제집으로 새벽 세네 시까지 코피를 쏟으며 공부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받은 상장만 50개가 넘었다.
내가 그렇게 존재감을 발휘했던 건, 이 성적표를 보면 엄마가 나를 상고에 보내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도 알고 있었다. 나를 상고에 보낸다는 것은 결국 남동생의 학비를 대는 일꾼이 되라는 뜻임을.
나는 부모에게 정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딱 3년만 더 밥만 먹여주고 잠잘 곳만 주면 됐다. 하지만 엄마는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나를 오로지 남동생의 빛나는 미래를 위한 '불쏘시개'로 남겨두기 위해 가스라이팅하고 학대했다. 가난은 괜찮았지만, 나의 희생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 상황이 사무치게 억울했다.
결국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남동생은 겨우 지방대에 진학했다. 지방대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희생된 내 가능성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엄마는 동생의 과외비와 학원비를 위해 내 월급까지 희생시켰지만, 엄마의 영원한 트로피는 끝내 빛나지 못했다.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가 나를 상고에 보낸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나르시시스트였던 엄마는 딸인 내가 본인보다 잘 나가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보통의 엄마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은밀한 학대와 방임'.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나쁜 딸로 만들어서라도 이 상황을 견뎌야 했다.
엄마에게 집안의 주인공은 오직 남동생이었고, 나는 그 빛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타버려야 할 불쏘시개였다. 불쏘시개 주제에 주인공을 꿈꾸는 딸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고, 옳은 말을 하는 딸을 밟아 무력하게 만들어야 본인의 비대한 자아를 유지할 '감정 쓰레기통'으로 영원히 곁에 둘 수 있었을 테니까.
엄마는 내가 더 유능해질 수 있는 기회들을 항상 앞서서 먼저 소거했다. 꼭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엄마는 법적 보호자라는 권리를 본인과 아들의 이익을 위해 마구 휘둘러댔다. 그 모습은 추하고 폭력적이었다.
"네가 아무리 별짓 다해봐라~ 너는 상고 가게 되어있어~"
묵직한 집안 공기 속에 엄마와 방관자인 아빠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아빠가 상고원서를 접수한 그날, 나는 엄마의 목적대로 결국 꺾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나는 패배감속으로 스스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이 시점부턴 엄마가 나를 향해 주입했던 그동안의 메시지가 드디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중요한 도전 앞에 설 때마다 내 안에서 끝없이 엄마의 조롱석인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그냥 평생 셋방살이나 어울리는 남동생의 불쏘시개야, 그냥 받아들이면 편하잖아?"
다음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다시 부르셨다.
"00야~, 상의해 봤니? 오늘 마감이라서..."
자존심으로 힘겹게 지켜온 눈물이 속절없이 터져버렸다.
꾹 눌러 참아도 안 됐다.
"네, 그냥 그대로 써주세요. "
선생님은 조용히 티슈를 건네며 위로하셨다.
"그 학교도 좋은 학교야. 거기서도 대학 가는 방법이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자."
"네"
나는 "네" 한마디를 남기고 드르륵, 교무실 문을 닫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