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문 앞에서 홀로 선 아들의 눈물, 사회성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야.
아들의 대학신입생 오티가 있는 날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아들이 함께 평일 아침식사를 했다. 나는 막 구운 토스트에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을 따뜻하게 올려 샌드위치를 만들고 명절에 들어온 부사를 꺼내 예쁘게 그 곁에 깎아 두었다.
두 사람의 옷매무새를 챙기곤 현관 앞에 서서 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반쯤 닫힌 현관문을 다시 열고 아들은 내게 '엄지 척' 포즈를 해 보였다. 오늘 뭔가 잘해보겠다는 스무 살의 파이팅. 그 뒷모습을 보며 나까지 잊고 있던 설렘이 소환되는 아침이었다.
나의 귀여운 아들은 심성이 곱고 따뜻한 아이이다. 어릴 적부터 따뜻했다. 가끔은 양보만 하고 제 것을 잘 챙기지 못해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내가 겪어온 삶을 돌아볼 때 아들의 따뜻한 심성과 배려는 꼭 이용당하기 좋은 '약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때는 내 욕심에 아들을 내 방식대로 이끌려한 적도 있었다. 축구, 태권도, 특공무술 같은, 주로 상대와 몸을 부딪히는 운동들을 시키며 씩씩하고 카리스마 있는 남자로 성장하길 바랐다. 하지만 아들은 결국 본인의 결대로 자라났다. 경쟁을 싫어하고 공감을 잘하며, 여유 있는 부드러운 성품으로 말이다.
매년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선 아들의 성취나 재능보단, 성품과 인성에 관한 칭찬을 들었다. 처음 몇 해는 좀 아쉽기도 하고 그 칭찬이 엄마를 위한 일종의 '립서비스'일 거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상담 횟수가 누적될수록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 상황만 다를 뿐 꽤나 구체적인 메시지를 주시기에 나는 그 말씀에 담긴 진심을 받아들였다.
아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소수의 친구들이지만, 친구들과 신의 있게 잘 지내고 있었다. 물론 분위기를 이끄는 소위 '인싸'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내가 '인싸'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무렵이었다.
사춘기초입 초등학교5학년 땐가, 아들이 툭 던진 한마디는 내게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엄마, 나 아무래도 아싸인 거 같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가 내 인싸 인생 황금기였고, 그 이후로는 계속 아싸의 길을 걷고 있어."
인싸? 아싸? 나는 그 '아싸'라는 말이 우리 때 유명했던 김흥국 아저씨의 히트곡 '호랑나비' 속 감탄사인 줄로만 알았다.
"아싸? 음... 기분 좋은 거 아니야? 잘됐네, 아싸!!!"
흥겹게 추임새를 넣는 내 모습에 아들은 정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아싸' 말고 '아싸'라고. 엄마는 진짜 뭘 모른다니까."
아들이 방으로 들어간 뒤 몰래 인터넷을 찾아보고서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싸'는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를 뜻하는 신조어였다. 아들은 자신의 고립을 고백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거기다 대고 호랑나비춤을 추며 환호를 지른 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자랄수록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결이 확연히 달랐다. 다들 몰입하는 게임에도 관심이 없었고, 종일 종이에 상상 속 만화를 그리고 그걸 접어 책을 만드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유행하는 가요보다 일본 음악을 찾아들었고, 엄마의 끈질긴 권유에도 불구하고 몸을 부딪치는 운동은 끝내 질색했다. 십 대라면 당연히 알 법한 유명 연예인 이름도 나보다 몰랐다.
아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즐기는 카드게임조차 주류가 아닌, 소수 마니아들만 아는 종류였다. 이쯤 되면 친구 관계가 어렵겠다 싶어 걱정이 앞섰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남들 하는 걸 따라 하라고 등 떠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동네엔 아주 오랜 '불알친구들'이 존재했고 그중 한 녀석과는 진로까지 '만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번 대학 진학으로 흩어지기 전까지 소위 그 '불알친구들'을 초, 중, 고 학창 시절 내내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아들은 처음으로 친구들 없이 대학이라는 문 앞에 오로지 홀로였을 것이다. 막상 대학 오티에 와보니 친구들의 그늘이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섯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덩그러니 박수만 열심히 치면서 있었으니 말이다.
힘겹게 오티를 마친 아들은 아빠의 퇴근 시간과 비슷하게 저녁 여덟 시쯤 집에 도착했다. 카톡으로 미리 물어보니 오늘은 엄마표 '김치볶음밥'이 당긴단다. 아마도 긴장한 탓에 자극적이고 짭조름한 게 당겼나 보다.
우리는 수북이 쌓인 김치볶음밥을 식탁에 중앙에 올린 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창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들이 갑자기 풀이 죽어 말한다.
"엄마, 나 기죽었어, "
이 말을 빠르게 낚아챈 아빠가 아들의 말을 별일 아니라는 듯 부정했다.
"뭐가 기가 죽어, 기 안 죽었구먼"
아들이 내 마음을 왜 그대로 인정하지 않냐는 듯 말꼬리를 바로 잡아 달려든다.
"나 기죽은 거 맞아!! 기죽었다는 데 왜 아빠는 자꾸 아니라고 그래. 내가 기죽었다는데"
아들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정받고 싶었고, 아빠는 그 부정적인 감정이 적응하면 금방 해결될 별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분위기를 읽은 나는 말했다.
"그래, 우리 아들 딱 봐도 기죽었네. 무슨 일 있었어?"
아들이 망설이다 입을 땐 다. 좀 창피한가?
"응, 벌써 친해진 애들이 있더라고, 아는 애들인가 봐, 엄청 친하더라고 그래서 기죽었어"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려는 순간 아들의 눈엔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 앞에서 우는 게 쪽팔린 지 참느라 콧구멍을 벌렁벌렁거린다. 어릴 때부터 짓던 울음 참는 그 표정이다.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 반갑고 웃기다.
"엄마, 나 사회성이 부족한 거 같아."
이게 아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는 얼굴을 보며 말한다
"사회성이 뭔데? 대중 앞에 거리낌 없이 서고, 타인과 금방 친해지고 이런 것만이 사회성은 아니야.
말 그대로 사회에서 타인과 갈등조절 잘하고 나를 잘 지켜내는 게 사회성이야."
그리고 너에겐 이미 불알친구 3명에, 고등학교 친구 00이, 맨날 전화해서 징징대는 친구 00이 있는데 부족해? 불알친구들이랑 오사카 여행까지 다녀온 아이들은 니 또래 중에 별로 없을걸?
너는 이미 평생 갈 좋은 친구들을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이나 만들어 놓은 사회성이 만렙의 인간이야.
아들이 안심한 듯 눈물을 멈춘다
"그러네 ㅎㅎㅎㅎ"
내가 한마디 덧 붙인다.
"엄마는 오히려 네가 혼자 좀 다녀봤으면 좋겠어. 멀리서 친구들을 좀 바라봐봐. 그중에 너랑 결이 맞는 친구가 있는지. 이 기회에 혼자 밥도 먹어보고, 원하는 동아리가 있는지 동아리방도 어슬렁대보고,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도 중요해, 지금 친해 보인다는 그 무리들도 학교 때 베프들이 아닐 수 있어 진짜 관계의 밀도는 본인들 말고는 아무도 모르거든,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인데 낯선 대학에선 괜히 더 반가운 거지,
대학은 허물없던 고등학생 때랑은 조금 달라, 적당한 사회적 관계는 물론 중요하지만 너는 성인이고 이제 네 곁에 어떤 사람을 둘진 탐색의 시간을 거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네가 선택하는 거야."
금세 안심이 되었는지 활기가 도는 아들이 말했다.
"00이랑 같이 대학 왔어야 했는데, 그러면 이렇게 외롭지 않았을 텐데."
내가 말했다.
"떨어져 봐야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돼. 그리고 아무리 친구라지만 너무 의지하는 것도 별로 좋지 않아. 홀로 서봐, 그리고 친구들에게 외로울 때마다 연락해 봐. 친구들도 너랑 똑같이 너의 연락에 위로를 받을 테니, 그럴 때 필요한 게 불알친구 거든. 그리고 언제든 엄마, 아빠를 의지해 네 편이잖아"
사실 아들의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에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순간 내 마음속엔 이런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아니 뭐가 부족해서 기가 죽는 거야. 내가 지를 얼마나 자존감 뿜뿜으로 키웠는데. 왜 기가 죽는 거야.'
하지만 이내 정신을 붙들었다. 내가 어릴 때 나르시시스트엄마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은 뭐였지? 아들이 저 말을 할 때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은 뭘까? 고민했다.
"친구 열심히 사귀어라!!! 그래야 사회성이 있는 거야!!" 일까?
나는 아들이 느끼는 감정이 정상이라고 말해줬다. 정당하다고, 그 감정 그대로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속으론 답답했을지언정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결핍' 그 자체인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의 발달과정마다 많은 과제들을 부여받곤 늘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다른 엄마들이 본능적으로 내놓는 다정한 말들을, 나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성찰해서 머릿속에 저장해두어야 했다. 그리고 아들이 무너진 순간, 그 저장된 페이지를 천천히 꺼내어 읽어주었다. 실제로 내가 이날 아들에게 내놓은 이 대답들은 많은 시뮬레이션 후에 도달한 것들이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자란 나의 인생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엄마로부터 정서적으로 받은 게 별로 없는 거 같은데 , 이런 나도 보통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그냥 '보통엄마'가 되는 게 나에겐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되는 '인생과제'였다. '좋은 엄마'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냥 '보통엄마'만 되어도 나에겐 엄청난 성공이다. 이날 이런 답을 내놓고도 나는 한편으로 가슴을 쓸었다. 비록 최고의 답은 아닐지라도 중간의 답은 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보통엄마'로 향하는 또 한번의 테스트 잘 치뤘단 안도감이었을 것이리라,
그리고, 실제로 내가 본 아들은 충분히 사회성이 있었다. 책임감이 강하고, 배려하고, 잘 인내하며, 타인과의 거리 확보엔 내가 인정할 정도로 천재적이었다. 아무리 친한 관계여도 함부로 조언하지 않았으며, 불같은 성격의 두 명의 불알친구들 사이를 조율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나는 아들의 많은 장점을 보았기에 아들이 대학생활에서도 아들만의 좋은 인연들을 만들 거라고 믿는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아들은 어릴 때도 키즈카페 입구에서 한 시간 반을 버티고 나머지 30분 동안 신나게 놀곤 결국 집으로 갈 시간이 되면 안 가겠다고 떼를 쓰던 아이다. 아들은 신중하기에 발동 걸리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가끔 우리는 타인의 눈에는 잘 보이는 본인만의 장점을 유독 본인만 부인하지 않던가? '나'라는 존재는 어쩌면 나와 가장 가깝기에 나에 대해 가장 엄격한 평가를 내리는 존재 일지 모른다. 아들이 대학생활을 통해 본인의 사회성이 꽤 괜찮다는 걸 조금은 빠르게 눈치채고 인정하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저녁식사 대화 마지막에 나는 가장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아들아, 사회성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야. 네가 가진 그 서툴지만 따뜻한 진심이 조만간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게 될 거야. 엄마는 그걸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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