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VS "어머니의 마음"

파업 최전선에서 대자보와 기자회견이 맞붙다

by 문좀열어주세요

2013년 12월 서울 한 대학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철도 민영화와 대선 개입 의혹 등 산적한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안녕하냐’고 묻는 글이었다. 각성을 촉구한 대자보였다. 불과 몇 해 전 튀지니와 이집트, 시리아까지 중동에 민주화 바람이 스마트폰과 SNS를 타고 분 시대에 386세대에나 쓰였던 대자보가 ‘복고풍 여론’을 형성했다.


반어적 안부 인사는 젊은 세대뿐 아니라 기성세대까지 자극했다. 대학 후문 벽에 붙은 것으로 시작해 SNS로 번지며 언론에도 수도 없이 보도되었다. 대중의 전폭적 공감을 얻으며 들불처럼 번졌다. 서울과 수도권 대학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연이어 붙기 시작했다. 전국 50여 개 대학에 릴레이 대자보가 올라왔다. 그해 유행한 일련의 사회운동이었다.


발단은 철도 파업이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4,213명을 직위 해제한 것이 노동법에서 보장한 파업권을 침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파업을 주도했던 전국철도노동조합 노조위원장은 대자보에 화답했고, 최초 게시자는 다시 답신으로 철도 파업을 지지했다.


당시 최고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자막에도 “안녕들 하십니까”가 나왔다. 한 가수는 같은 제목의 트로트곡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불법파업으로 우리 국민들은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안녕들 하십니까?”를 되묻는 영상을 공식 SNS 계정에 올렸다.


당시 파업은 코레일이 ‘수서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이하 수서발 KTX)의 운영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철도노조가 반발하며 시작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며 공공서비스에도 경쟁이라는 명목으로 민간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핵심은 ‘민영화’로, IMF로 외국 자본에 사회 인프라가 잠식되는 것을 겪은 당시로서는 민감한 문제였다.


코레일 사측은 ‘수서발 KTX 설립’은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철도경쟁체제 도입은 정부 정책으로 교섭할 사항도, 파업 명분도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홍보실은 경영진의 뜻에 따라 기관장을 내세운 기자회견으로 파업에 대응한다. 전면 파업을 3일 앞둔 12월 6일,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기자들 앞에서 담화문을 발표했다. “민영화의 움직임이 있다면 제가 먼저 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막아내겠다. 제발 사장인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시기 바란다”며 파업 철회를 호소했다.


노조는 분할 민영화의 수순이며, 국토부가 추진했던 철도 민영화 정책의 일환이라는 주장으로 9일로 예정된 파업을 강행했다. 이름만 바꿨을 뿐 결국 밀어붙인 대운하 계획과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었다. 결국 파업에 돌입했다. 당시로는 역대 최장인 22일까지 파업이 이어질지 몰랐다. 최장 철도 파업 기록은 2016년 깨졌다.

최 사장은 파업 시작 당일, 또 기자회견을 연다. “집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숭고한 일터로 속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파업 시작한 직후 바로 가담자 4,213명을 바로 직위 해제한다.


직위해제 다음날인 10일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올라오게 된 배경이다. 어머니의 마음 운운하면서 직위 해제한 것이 자식들에게 할 짓이 아니라는 여론이 일었다. 코레일에서는 직위해제는 ‘해고’가 아니라 ‘인사 대기’로 파업 참여로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없기에 업무에서 일시적으로 배제했다고 해명했다.


파업 초기의 양상은 코레일 사장의 기자회견과 한 대학생의 대자보가 여론전을 펼치는 양상이었다. 초기부터 파업 지지세가 강했다. 보수 텃밭이던 대구지역에도 철도 민영화 반대 현수막이 걸리고, 지지 여론이 전국에 확산되었다. “불편해도 괜찮아” 운동이 일었다. “국민재산 지키는 철도파업 지지해요.”라는 구호도 퍼졌다.

“파업에 참가한 한 기관사는 열차 몰면서 밥 벌어먹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이런 파업은 처음이다”라고 한 신문과의 인터뷰를 했다. 시민이 지지해주니 공공철도 기관사의 자부심을 갖고 꼭 지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반면에 열차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자 불만도 표출되었다. 정례적으로 하는 파업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공기업 직원의 철밥통을 지키려는 쌩떼, 안정적인 신분에서 과분하게 누리는 특권, 전국민을 볼모로 삼는 파업 등등 부정적 여론도 한꺼번에 폭발했다.


정부와 코레일은 철도노조의 파업에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4,213명에서 시작했던 노조원에 대한 직위해제는 7,608명에 이르렀고, 12월 21일에는 노조 집행부에 77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급기야 민주노조의 심장부인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12월 22일 오전 9시 경에 철도노조 지도부 일부의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이들이 서울 정동에 있는 민주노총 본부에 있는 것으로 파악한 경찰은 민주노총 본부로 진입했다. 경찰은 민주노총 노조원들과 충돌을 일으켰고 대치 중에 문을 부수고, 몸싸움도 일고, 노조원이 끌려가기도 했다. 몇 시간이 걸려서 진입에 성공했으나 누구도 연행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내려왔다. 지도부는 그곳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성탄절인 25일에는 최 사장이 파업 중인 직원들의 현장을 방문한다. 서울 수색동에 있는 서울차량사업소로 근무 상황 등을 점검하겠다는 취지였다. 평시에도 강성이라고 알려진 곳에 카메라 기자와 방송 카메라와 함께 찾았다. 인근에 있는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 수색역을 차례로 찾은 사장은 근무 중인 직원들을 격려하고 파업 노조원들에게는 ‘하루속히 일터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전해진 내용이다.


파업 시작 17일째였다. 해당 기사를 검색하면 수많은 카메라 틈에서 노조원의 손을 잡고, 15도 정도 틀어져 얼굴의 어색한 사진기사가 나온다. 파업 상황에서 여유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방문 소식을 들은 노조원들은 손팻말을 만들고 찾아와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은 민영화로 가는 수순인 만큼 당장 철회해야 한다"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노조원 입장에서는 언론에 그림을 만들어줄 것이 뻔하지만 현장까지 찾아온 사장 앞에서 현수막 없이 그냥 보낼 수는 없어 시위를 급히 준비했다고 전해진다.


파업은 결국 정치권의 중재로 2013년 12월 31일 종료됐다. 22일 만이다. 철도노조 지도부 일부는 서울 조계사로 몸을 피해 있었다. 노조는 종교계의 중재를 기대했고, 최 사장은 26일 다시 조계사를 방문했다. 그 사이 27일 밤 수서발 KTX를 운영할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법인설립 등기가 완료되었고, 곧바로 국토교통부가 면허를 발급했다.


코레일은 노조 집행부와 해고자 등을 포함한 200여 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파업을 주도해 검찰에 기소된 김명환 노조위원장 등은 이듬해 12월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2013년 철도파업의 목적은 한국철도공사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것으로 위법”이라면서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비춰 볼 때 당시 파업은 업무방해죄 요건인 ‘전격성’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7년 대법원도 최종 확정했다.


또한, 2022년 대법원은 민주노총에 강제 진입한 것과 관련해 국가가 469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파업 이후 최 사장은 강골, 원리원칙을 강조한 인물로, 언론으로부터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 기사가 나왔다. 출처는 한 경제지와 통신사 중 하나였다. 그중 통신사에서는 파업 과정에서의 불통과 강경 일변도로 일관하는 모습을 비난하면서 대통령과 최 사장을 싸잡아 ‘대처를 닮고 싶었던 그들’이라며 ‘리틀 박근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라는 제목과 함께 ‘철의 여인’을 언급했다. 부정과 긍정의 이미지를 모두 품은 ‘철의 여인’을 일부 매체에서 좋은 쪽으로 다른 매체에서는 부정적으로 읽었다.


파업이 끝난 이후 최 사장은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황우여를 만난 것이 다시 한번 논란이 일었다. 철도노조 파업 대응 이후 찾아간 것인데 황 대표는 기자들에게 최 사장이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청탁하러 왔다는 투로 말했다. 정치를 하고 싶은데 돌봐달라며, 대전 서구을 당협위원장 자리를 친인척으로 고려해 달라는 요청이었다는 것이다.


최 사장은 파업으로 국민과 당에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하고 인사를 하기 위해 황우여 대표를 만났다고 해명했다.


논란의 진원이 당 대표라는 점에서 당사자의 입장이 애매해졌지만, 일각에선 당 대표가 고의적으로 기자들에게 밝혔다는 의혹도 있었다. 철도 파업 강경 진압으로 보수진영으로부터 정치적으로도 확고한 기반을 다진 최 사장이었다.


최 사장은 2016년 3월, 임기를 7개월 앞두고 사임한다. 제20대 국회의원 총설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새누리당 비례대표 5번으로 후보를 배정받고 그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선 이후에는 바로 열린 8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까지 결국 선출되었다.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이었던 김명환 위원장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9기 12대 위원장으로 선출된다. 2018년부터 2020년 7월까지 노동계 최정점에서 활동한다.


이듬해엔 “안녕들 하십니까” 책이 출판되었다. 그 속에는 200여 편의 대자보 내용이 실렸다.


파업의 원흉이었던 ‘수서발 KTX’는 지금의 SRT(SR의 고속열차) 모태다. 대다수 사람들은 KTX와 SRT를 구분 없이 탄다. 두 기관이 다르다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2025년 코레일과 SR 통합 논의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

2013년 12월 22일 민주노총 압수수색을 막는 철도노조
2013년 12월 22일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철도노조를 지지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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