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애도의 시간을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몸 아끼라고 얘기해도 덤벼 들어서...” 직원 사망 사고 직후 한문희 코레일 사장이 유가족에게 했다는 말이다. 문장만 놓고 보면 과도한 의욕을 부린 작업자를 탓하는 듯하다. 단독 보도한 종합편성 뉴스에서는 한 사장이 ‘숨진 직원들에게 책임이 있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유족들은 “사고 책임이 고인에게 있느냐”고 반발했다.
사고는 2024년 8월 9일 새벽 2시 16분 발생했다. 구로역에서 선로 위 전차선을 보수하던 차량(전철 모터카)과 선로를 점검하는 차량(선로 점검차) 두 대가 부딪혔다. 작업하기로 한 선로 옆까지 작업대(바스켓)를 뻗어 다른 선로 위 전차선의 애자(절연장치)까지 정비하려다 전철 모터카 작업대와 선로 점검차가 충돌했다. 해당 선로에서 운행 중이던 선로 점검차는 작업대를 미처 보지 못했다. 작업자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
현장 수습에 나서고 비상 안전조치를 내린 한 사장은 즉시 빈소를 찾아간다.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최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지역 본부장과 본사 인사업무 총괄책임자 등을 장례식장에 상주시킨다. 산업재해와 원호사업, 복지후생을 담당하는 분야별 담당자도 자리를 지켰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고 지원을 한다.
홍보실에는 언론대응에 신중을 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혹시라도 돌아가시거나 다친 작업자에게 책임이 전가되지 않도록 불필요한 설명을 자제해야 했다. 작업하기로 한 옆 선로에서 사고가 발생했기에 선로를 침범한 작업자를 먼저 추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고 당일부터 발인까지 유가족들과 한 사장은 몇 차례 만났다. 죄인 심정으로 사장은 거듭 사과했다. 사고 이튿날에도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유가족들은 사과도 사과지만 사고 원인을 알고 싶어 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바랐다. 국내 최대 공기업이 사람 죽을 만큼 위험한 일터냐는 것이었다. 일하러 간 아들이 돌아오지 못했으니 어떤 설명이라도 듣고 싶어 했다.
사장은 말을 아꼈다. 책임이 전가되지 않게, 오해를 사지 않도록 말을 줄였다.
다른 간부들도 있었지만 최고 책임자 말의 무게는 달랐다. “이렇게 위험한 작업인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한 유가족의 발언에 조심스럽게 한 사장이 설명해야 했다. “몸 잘 아끼고 하라고 얘기를 해도 일하시는 분들 입장에선 눈에 일이 보이면 그걸 막 덤벼들어서 하려고 하거든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대화는 녹취되고 있었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 사장이 아니라 누구의 말이라도 놓치지 않아야 했다.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 말인데 녹취는 당연했다. 어떻게 기자에게 전달됐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녹취를 확보한 종합편성 뉴스에서는 유가족 입장에서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취재 기자는 코레일에 공식적인 입장을 물어왔다. 사장 발언에 대한 해명 기회였지만 방향을 정해져 있었다.
기자에게 연락이 온 것은 사고 발생 이틀 후인 일요일 오후 16시경이었다. 휴일에 연락한 것을 양해를 구하며 입장을 물어왔다. 유가족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사장 발언’이 있었다며 설명을 요청한 것이다. 어떤 정황인지 몰라서 그런 일이 없다고 답했다. 사고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 선 적도 없었고 내부 회의에서도 예우를 갖추고 조심하라는 말이 전부였다. 수습과 안전조치 이후로 모든 상황을 미뤄놓은 상황이었다.
녹취는 있는데 담당자가 모르고 있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설명할 길이 없다. 유가족과 사장이 같이 한자리에 있었던 것도 몰랐기에 정확한 경위를 알지 못했다. 실제 한 발언도 뒤늦게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도 취재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공식적이지 않은 특정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알아야 한다. 기자들이 취재원 신원을 100% 보호한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일절 입을 닫는다. 발언을 해명해 달라는 것만 물었다. 오늘 저녁 뉴스에 나온다고도 알려줬다.
결국 홍보실 책임자가 사장에게 직접 확인하고 발언 내용을 확인했다. 같이 있던 간부들을 통해 발언 배경을 정리하며 맞춰본 후에야 취지도 재확인 수 있었다. 현장 분위기에서는 발언의 톤도 있고, 해서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한 사람도 있었다.
홍보실에서는 “직원 탓으로 돌리려는 취지는 아니었으며 그렇게 느꼈다면 유족에게 마음 깊이 사과하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정확한 사고 경위가 밝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실 확인 전에도 사장이 고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의도가 없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잘못 전달되거나 말실수가 있을 수는 있어도 그런 말을 할 사장은 아니었다. 사고 직원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는 상황이었다.
사고 초기 현장 브리핑을 안 한 이유도, 사고 급보를 여러 차례 내지 않은 이유도, 과도한 설명으로 직원들 잘못으로 전달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언론에서 직원 실수로 선로를 넘어간 잘못이라고 파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실제로 언론에 보도된 것은 오해를 살만한 ‘막 덤벼들어’ 한마디였다.
피해자가 뚜렷할 때는 온전히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공식적인 발언은 삼가야 한다. 사과 이외의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희생자 아픔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얼굴을 맞대고 말할 때는 정중한 표정이나 뉘앙스도 전달되지만 ‘글’로 옮겨놓으면 건조하게 전달된다. 여기에 앞뒤 문장과 대화의 상황이 생략되고 일부 문장 그대로만 전달되면 누군가에게는 얼마든지 상처를 줄 수가 있다. 외부의 시각에서는 전적으로 발언자의 부주의에 의한 것이다.
사고 발생 1년 3개월이 지난 2025년 11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작업대 선로 침범이 직접 원인이었다. 작업 승인 범위를 넘어선 데다 안전 관리체계가 미흡해 빚어진 인재라는 것이다.
옆 선로까지 작업대를 2미터 이상 이동(연장, 상승)시켜 그 위에서 작업자 3명이 작업을 하려다가 85km/h 속도로 경부선 상선을 통과하려는 선로점검차가 친 것이었다. 작업대는 통과선로를 0.87m를 침범한 상태였다. 통과열차 운전자는 작업 차량을 발견했으나 (작업대를 못 봐) 본인 선로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정상 운행했다.
조사보고서가 발표될 때 한문희 사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구로역 사고 이듬해 청도역 인근에서 외부 작업자가 무궁화호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사의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