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 파장, 사고는 무슨 사람이 다쳤습니까

PI, 사고보다 불안한 안전불감증

by 문좀열어주세요

기관장은 ‘조직의 얼굴’이다. 핵심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기관장의 메시지가 조직의 미래 비전이다. 때로는 언론도 구체적인 기관보다 기관장의 상징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인물로서의 실체가 조직의 기능과 섞여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PI(President Identity, 최고경영자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PI는 홍보에 최고경영자(기관장, 사장)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전략이다. 인터뷰나 기고‧칼럼, 기자 간담회 등을 통해 최고경영자를 언론에 노출시킬 수 있다. 주요 행사에서 인사말이나 축사를 통해 소개되기도 한다. 핵심 콘텐츠와 이미지 등을 설정하고 기관 홍보 방향과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일치돼야 한다.


방송과 신문 등 언론 노출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리스크 관리에도 주의해야 한다. 기관장은 가장 밝은 곳에서 빛나기도 하고, 가장 어두운 그늘에서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긍정적 보도만큼 비난에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뉴스에 부정적으로 노출되는 파장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고는 무슨....사람이 다쳤습니까?”에 국민 ‘부글부글’


2011년 2월 열차 운행장애가 연이어 발생했다. 봄철 해빙기는 크고 작은 장애가 잦기도 하지만 그해에는 유독 많았다. 2월 11일 광명역에서는 고속열차가 궤도를 이탈했다. 당시로는 여객을 실은 고속열차 최초의 궤도이탈이었다. 세간의 이목은 집중되었고 조직 분위기도 경직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TX가 고장으로 멈추는 일도 몇 건 더 생겼다. 전사적 긴장감을 갖고 안전 점검을 강화했다.


그러던 2월 26일 토요일 오전 9시 KTX-산천 #354 열차가 동대구역을 출발하고 20분 만에 김천구미역 인근에서 차량 이상신호를 감지했다. 기장과 관제상황실에서는 열차를 대전역에서 멈추기로 결정한다. 혹시 모를 기기 결함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승객 600여 명은 대전역에서 내려 다른 열차로 옮겨 탔다. 도착시간은 40여분 늦어졌다.


2월에만 다섯 건의 운행 장애가 이어지던 불안감 속에 언론과 사람들은 이를 곱게 볼 수 없었다. 사고 연장선으로 보도했다. ‘너트 풀린 철로’, ‘잇따른 고장, 사고 이용객들은 불안’등의 기사가 쏟아졌다. 반복되는 철도 장애를 언론에서도 심도 있게 다뤘다.


사고 당일 보도전문 채널에서 사고 브리핑을 위해 대전역을 스케치했다. 때마침 코레일 기관장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고 대응을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대전 지역에 상주하는 기자라서 기관장을 한 번에 알아봤다. 기민한 카메라 감독도 신속히 움직여, 기관장 앞을 막아섰다. 급히 마이크를 들이댄 기자는 최근 이어지는 사고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


기자는 말했다. “연이은 철도 사고에 국민이 불안해하는데, 코레일 사장으로 한 말씀해주세요. 사장님...” 당시 기관장은 “사고는 무슨... 무슨 사람이 다쳤습니까? 이상한 신호가 들어오니까 그걸 점검하고 다시 출발한 건데... 그걸 갖고 무슨 큰일 난 것 같이... 그게 그냥 어디까지나 작은 고장인데...”


이 영상은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사고에 대한 그간의 분석보다 태도에 대한 비난이 더 컸다. 안전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의 마음가짐 문제까지 지적된다. 몇 시간 단위로 나오는 보도전문 채널의 뉴스에 “사고는 무슨...”이라는 멘트가 빠지지 않았다.


“사고보다 더 걱정스러운 안전불감증” “사장 태도 오만불손” 언론의 질타는 줄을 잇는다. 그동안 일어난 사고일지와 코레일의 미온적 대응은 주말 사이 심층 취재되고 월요일 신문 지면을 도배했다. 코레일 관계자들의 지난 발언들도 도마 위에 올라왔다. “인명 피해는 없지 않았나. 열차는 체계가 복잡해 언제든 크고 작은 사고가 날 수 있다”“고속열차는 수없이 많은 부품이 있는데 한 군데쯤 고장 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등등


2011년 2월 28일 자 일간지 언론보도(사설)

지면 출처: 중앙일보, 세계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문화일보 2월 28일

주요 역 역무원 등 마침 카메라 앞에선 직원들이 그대로 인터뷰로 담겼다. 일부 직원은 허가 없이 역에서 촬영하는 기자에게 신원확인을 하는 도중에 나온 발언이 그대로 방송되곤 했다.


불을 지핀 기관장이 나서 수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홍보실장이 건의해 기관장이 기자실을 직접 찾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국민을 안심시켜야겠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 “경각심을 갖고 챙기겠다”라고 해명을 했다. 취재기자도 악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사고가 이어지면 큰 사고는 큰 사고대로 작은 사고는 작은 사고대로 부풀려진다. 사고를 예방하는 측면에서는 작은 사고도 큰 사고로 이어질까 봐 과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조그만 문제가 있어도 과하게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코레일은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기조로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사소한 점검도 마다하지 않기로 한 경영진 결정이 있었다.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일단 열차를 멈추고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운행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운행 장애가 계속 발생하자 ‘사고철’, ‘고장철’등으로 씌워진 프레임도 벗어나야 했다.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지연’, ‘출입문고장’ 등의 사건도 ‘또 사고’라는 기사로 보도되었다.


자동차 사고도 접촉사고 같은 경미한 건이 있는 것처럼 철도사고도 경중에 따라 정확한 용어로 전달해야 한다고 경영진은 판단했다. 기관장이 언론에 한 설명도 같은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명이 오히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내부에서만 이해하는 사정은 몇 문장의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사과하고 철저한 안전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으면 되는 일이다.


최초 보도한 뉴스에서는 방송 당시 우리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 “앞으로 사소한 고장도 없도록 잘 점검해서 안전 운행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뉴스 뒷부분에 실었다. 열차에 오르기 전 짧은 시간에 약식 인터뷰에 응해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주었다. 촬영 당시 기자 태도에 기관장도 기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고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관장의 실웃음도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사소한 고장’을 정말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최초 인터뷰를 하기 전에 찍힌 카메라를 피하는 듯한 뒷모습, 회피하는 행동도 진정성 없게 화면에 나왔다. 말의 내용만큼 태도도 진중하지 못했고 기자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으로 뉴스의 마침표를 찍었다.

2011년 2월 26일 자 보도전문채널 화면

화면 출저: YTN 뉴스(보도 비평용 목적)

당시 뉴스 카메라에 경솔하게 노출된 것이 1차 불찰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으로는 관계자 인터뷰조차 쉽지 않았던 방송기자는 마침 대전역에서 KTX를 기다리다 우연히 ‘대어’를 알아보고 마이크를 들이댄 것이었다.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게 당연해 보였던 기자는 기관장에게 자연스러운 인사를 먼저 건넸다.


기자는 대전역에서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왜 이렇게 사고가 많느냐. 사고 원인, 사고 피해, 사고 예방 등등 연이어지는 ‘사고’ 용어가 신경 쓰인 기관장은 고개를 돌리고 ‘사고’에 대한 생각을 전한 것이었다. 멀리서 카메라는 돌고 있었다.

해당 역 역무원 무성의한 발언도 방송을 통해 밝혀졌다. 현장에서 기자와 마주친 코레일 한 직원은 장애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모자라서 “잠깐 섰다 간 것인데, 무슨 일 때문에 물어보시는 거냐?”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기관장이었다.


기관장 말은 영향력만큼이나 파장이 크다. 의도와 다르게 비치기도 하고 실제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특히 사고와 같이 수세적 상황에서는 입장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변명으로 비칠 수 있다. 정확한 사과와 재발 방지대책이 기본 메시지여야 한다. 해명은 나중에 해야 오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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