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9일 소행성 1998 or2가 지구와 충돌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630만km 차이였다. 간발이냐며 호들갑이라고도 하지만 광활한 우주에서 퍽 가까운 거리다. 지구와 금성 사이 최단 거리 4,140만km를 생각하면 지구 공전 궤도 깊숙이 들어왔다.
이 소행성은 두 번 주기를 돌아 2079년에 1/4은 더 가까운 거리까지 지구에 접근한다. 공룡 멸종의 원인도 소행성 충돌로 꼽힌다. 소행성이 지구로 돌진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겟돈이나 딥임팩트 영화처럼 핵폭탄은 답이 아니다. 행성까지 날아가 터트리기도 쉽지 않지만 안착해도 진행경로를 바꾸기에 파괴력이 약하다.
일찍이 하찮은 걱정을 먼저 한 유엔은 2012년 ‘소행성 움직이기 대회(Move an asteroid competition)’를 개최했다. 소행성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에 상을 주기로 했다. 당시 우승자는 MIT 한국계 대학생 백승욱 씨였다. 계획은 기발했다. 흰색 페인트통을 던져 소행성을 흰색으로 칠하면 된다. 표면을 덮은 흰색 페인트가 우주에서 햇빛을 반사하는 반작용을 일으키고 궤도에 1°의 변화만 생겨도 지구를 비켜간다. 흰색 페인트가 세상을 구할 줄 누가 알았을까?
코레일이 폭염에 앞서 400여km의 레일에 흰색 페인트를 뿌렸다. 흰색이 검은색보다 수배 햇빛을 더 반사해 폭염에도 레일온도를 4~5℃ 가량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1mm 두께도 안 되는 흰색 페인트가 레일이 늘어나는 것을 억제하고 안전운행을 챙기고 있다.
흰색 페인트 도포뿐만 아니라 철도의 안전한 운행은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많다.
레일과 레일 사이 유간(遊間)이라는 간격도 최대 11mm에 불과하다. 유간의 작은 공간은 완충작용을 한다.
온도변화에 레일이 늘어나도 유간이 있어 뒤틀림을 막는다. 무궁화호 덜컹거림은 이 틈을 넘을 때 차바퀴와 레일에서 나는 소리다. 조금 불편하지만 안전을 위한 최소한 여백이다.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가 곡선부를 돌 때는 궤도를 이탈하려는 원심력이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해 바깥쪽 레일을 더 높게 만드는 ‘캔트(Cant)’를 두는데, 최대 160mm을 넘지 않는다. 어린아이 한 뼘에 불과한 이 높이가 700t에 달하는 열차가 바깥쪽으로 튀어나가지 않고 안전한 구심력으로 달릴 수 있도록 제어한다.
해마다 폭염 일수가 늘고 있다. 세심한 노력에도 레일은 뜨겁게 달궈진다. 고속선은 레일이 팽창해도 레일을 고정하는 체결구의 결속력으로 레일이 휘지 않게 잡아준다. 다만, 온도가 올라갈수록 레일과 체결구가 이룬 힘의 균형이 레일이 늘어나는 쪽으로 기운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열차가 고속으로 달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레일 온도가 55℃를 넘으면 KTX를 230km 이하로 서행 운행한다. 온도 영향이 큰 오송역 일부 구간은 지난해 규정된 온도보다 낮은 53℃만 넘어도 서행운행을 했다. 작지만 안전을 위해 기준 온도를 2℃ 더 낮춘 것이다.
2℃ 영향까지 더해 지난해(2019년) 17회 KTX를 늦춰 운행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0.1%도 안 되는 400m 구간만 감속해도 앞뒤로 열차가 연쇄 지연된다. 열차에 탑승한 수백 명에게 ‘막대하고 소중한 시간’이지만 이를 감내하고 제한 속도를 낮추는 것은 1℃의 온도라도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과 고객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확신이다.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장담할 수 없다. 코레일은 120곳에서 레일 온도를 모니터링하고 87곳에 자동살수장치를 설치해 48℃ 이상이면 자동으로 물을 뿌린다. 그러나 폭염에 레일이 뜨거워지면 무리하게 운행하기보다 열차 속도를 늦추는 것이 가장 큰 원칙이다.
1mm 두께 흰색페인트, 11mm 간격, 2℃ 온도...
작은 것들이 지키는 안전이지만, 작은 것들을 지키는 불편이 곧 안전이다.
안전은 작은 것들에 대한 믿음(信)이다
얇은 페인트 칠, 1° 궤도가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2020년 초여름, BTS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유행할 때 소행성을 소재로 쓴 기고입니다. 신문에 게재되진 않았습니다. 그때와 상황이 바뀌어 레일에 흰색 페인트는 덜 칠합니다. 대신 457곳, 220km 거리에 자동살수장치를 설치해 레일 온도를 관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