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때문 했다가, 자진 사퇴
기자들 앞 기관장 발언은 일부를 ‘토막 낸다’ 해도 흠결이 없어야 한다. 길게 설명한 부분이 모두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 가장 튀는 말, 파장이 큰 말만 토막 내서 보도된다. 장황하게 전달된 내용에 부정확한 정보 하나가 화를 키울 수 있다. 특히 비상 상황에서 정제되지 않은 내용은 기관장 입을 빌어 언론에 보도될 수 있고 질타는 고스란히 기관 전체에 쏟아진다.
2018년 12월 8일 토요일 7시 35분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KTX가 출발 5분 만에 탈선했다. 당시 오영식 사장은 휴일임에도 사고 보고 직후 3시간 만에 서울에서 강릉 현장까지 이동했다. 좁은 논길 속, 강릉시 덕현리의 한 구릉지 현장에 도착했다. 때 이른 혹한의 날씨에 사고 현장에선 백여 개 넘는 입김이 하늘로 향했다. 갖은 추측성 정보들도 넘쳐났다. 그중 추운 날씨로 사전 점검이나 대응에 에로가 있고 사고에도 기여했을 거라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사고 현장은 사방으로 뚫려 수십여 매체에서 아침부터 취재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은 고속열차 탈선이라 강원도 지역 거의 모든 매체가 현장에 왔다. 사고 현장 인근 높은 산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취재용 드론도 날고 있었다. KTX-산천 기관차가 선로 바깥으로 튀어나온 장면 등이 여실히 노출돼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지역 뉴스는 전국 뉴스로 보도되었다.
사고 브리핑을 해야 했다. 신속하고 소상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사장은 판단했다. 주도적으로 관할 정부부처와 유관기관과 함께할 자리를 마련했다. 강릉시청 회의실에 최적이었다. 국토교통부 2차관, 한국철도시설공단(현재 국가철도공단) 이사장, 강릉시장이 참석해 대책 회의와 함께 언론에 브리핑을 했다. 기민한 대응에 기자들도 적극적으로 취재를 이어갔다.
오전에 이미 사고속보를 보도한 매체들은 사고 원인, 복구 시점 등에 대한 추가 정보가 필요했다. 코레일은 물론, 다른 부서도 사고 원인에 대한 섣부른 예측은 자제했다. 기자들 앞에서 코레일 사장은 사고가 발생한 이유를 속단할 수 없다는 설명을 먼저 전했다.
사고가 어떻게, 왜 발생했는지 반복해서 물어왔다. 질문 범위도 점점 좁혀왔다. 직원 실수냐? 기기 결함이냐? 사고 직전 점검자가 현장에 있었다는데 문제를 인식한 것이냐? 복구 시점은 언제인지? 운행 중지된 열차와 대체 수송 대책 등등... 이어 “추운 날씨도 원인일 수 있냐? 안전 점검은 제때 이루어졌나?” 는 한 기자 질문도 이어졌다.
복합된 질문에 당시 오 사장은 한꺼번에 답변했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선로에 이상이 생길 수 있어 코레일은 동절기 예방대책으로 선제적으로 선로 점검을 시행해 왔지만 그럼에도 오늘 사고가 발생했다”고 먼저 답변한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사고원인에 대해서 계속 파악 중이며 앞으로 항공철도조사위원회를 비롯해 국토부와 함께 사고 원인을 조사 분석해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트북을 치던 기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가장 빠르게 보도했던 한 통신사에서는 “탈선 원인 두고 추측 무성...국토부, 코레일은 신중”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또다른 통신사에서 다르게 보도했다.
“기온 급강하로 선로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지만 원인은 조사를 해봐야 한다”라고 오 사장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시점까지는 크게 논란이 일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지역 언론에서는 신속히 사고 속보뉴스가 방송되었다. 자극적인 영상과 함께 17명 부상, “7년 만의 탈선 중대사고” 등등
하지만 오후 보도에서는 기자 질문과 “자세한 원인은 조사를 해봐야 한다”는 사장 답변은 나오지 않고, ‘기온 급강하에 따른 선로 이상이라고 탈선 원인을 밝혔다’는 기사만 도배했다. 현장에 있지도 않은 매체에서 해당 기사를 그대로 인용했다. 일부 매체에서는 철도에 대해 잘 모르는 비전문가 사장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추운 날씨를 탓하는 것처럼 기사를 썼다.
날씨 탓하는 ‘네탓병’, ‘공포철’ 타기 겁난다. 분개하는 시민의 발언도 같이 보도됐다. ‘한파 때문 했다가 망신살’, ‘그럼 시베리아선 매일 탈선?’ 등등 국제적 망신이라는 기사가 뒤따랐다. 실제 발언이 다른 방향으로 부풀어져 여론도 나쁜 방향으로 쏠렸다.
이튿날 사고 현장을 방문한 주무 장관과 취재진 앞에 섰다. 장관이 직접 나서서 수습하려 했다. “사고 원인은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 중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는 회선 연결이 잘못돼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도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어린이신문에도 예고된 인재라는 비판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기자들의 취재에 자세히 설명하다 보니 오히려 오해를 살만한 부분만 보도되었다. 나중에 현장에 있던 기자도 긴 답변이 ‘한파’ 탓으로만 보도되어 아쉽다고 전했다.
홍보실에서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기자 회견장에서 해당 발언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기자에게 바로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관할 기자단 간사를 통해서 공식 입장을 전했다면 파장이 줄었을까...’ 파장이 커질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대응조차 할 생각이 없었다. 사고 수습에 급급해 PI에 대한 주의가 소홀했다.
당시 홍보실 책임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판단했다. 발언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 집중포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더 큰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장과 조직을 모두 살리기 위해 최선의 선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사장에게 직접 건의했다고 전해진다.
사고 원인은 1년 후 밝혀졌다. 선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선로전환기 끝부분이 밀착되지 않고 벌어진 문제가 있었고, 이를 감지해야 하는 신호장치가 잘못 연결되어 엉뚱한 곳이 이상하다고 알렸다는 것이다. 처음 선로를 공사할 때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그동안 드러나지 않다가 이번에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대중은 관심이 없었다. 사고 사흘 만에 사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공식 조사보고서가 발표될 당시에는 또 다른 사장이 지키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을 묻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다. 피해와 복구대책, 보상보다 앞서 가장 궁금한 사항이다. 하지만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 섣부르게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최고 책임자의 입을 빌린다면 그것은 확정적으로 보도되고 파장은 감당하기 힘들 수가 있다.
‘토막 난 말’은 항상 흠결이 있다. 최대한 말을 자제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