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위한 홍보

수줍은 사장에게 보낸 퇴임 편지

by 문좀열어주세요


홍보실에서 가장 힘든 경우는 겸손한 기관장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직을 내세우려 하면 PI가 필요 없어진다. 2012년부터 코레일 사장이었던 정창영 사장은 동정 보도자료, 인터뷰를 거의 안 했다. 감사원 사무총장으로서 업무에 합리적이고 실용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홍보에 무관심해 애를 먹었다. 결국 1년 4개월 만에 나가셨다.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고 가시적 성과를 보인 사장이라고 평가한다. 당시 제대로 홍보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한 사람을 위한 홍보를 했다. 2013년 퇴임하는 그에게 쥐어준 편지이다.


정창영 사장님께

가시는 사장님을 상상하니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떠나는 아쉬움보다 계셨던 족적이 큽니다.

떠나는 모습이 쉽게 떠오릅니다.

항상 같은 걸음이셨습니다. 한결같기에 마지막 뒷모습도 처음 같겠죠.


큰 풍채에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사장님을 처음 뵈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취임식 날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날도 주름 잡힌 바지였습니다. 걸음의 흔적이 벤 낡은 구두 뒤축은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일꾼의 풍모’였습니다.


따뜻한 기운을 채우시는 분이라는 건 처음 직원들과 악수를 하실 때부터 느꼈습니다. 겸연쩍어하는 듯 상대보다 더 낮게 허리를 굽히시고 정중히 손을 잡아주시는 사장님. 깊은 인상은 현충원에서도 이원성역(순직한 철도인의 위패를 모시는 곳)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사장님은 눈을 감으셔서 모르시겠죠. 묵념할 때 다른 사람보다 머리 반만큼, 남들 두 배만큼 허리를 굽힙니다.

굳게 내린, 떨리는 눈꺼풀의 진솔함을 뵈면 현충원의 적막함 속 선율보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진정성은 이후 행보에서도 보였습니다.


취임 후 바로 철도 공상회와 철우회를 방문하시고 철도를 위해 애쓰신 선배님들께 인사를 드리시는 사장님 행보에서 ‘올라서야 할 자리를 먼저 찾기’보다 ‘모셔야 할 분들을 먼저 찾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성은 겸손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나는 합리적이다. 그러니 내 의견만 따라라. 너희는 틀렸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나도 틀릴 수 있다. 그러니 너희 의견도 듣고, 전문가 도움을 받자. 더 나은 선을 지향하자” 그렇게 결정하기에 다들 사장님을 합리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노조에서도 사장님께 협력한 이유입니다.


만 명이 넘는 노조원 징계 이후 다시는 상호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계시는 동안 노사관계는 전에 없이 회복되었습니다. 안산선 유지보수 업무에 노조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휴먼에러 연구위원회에 노조원 집행부를 참여시켰으며 만사 제치고 ○○○ 기관사의 영결식장을 찾으셨습니다.


비단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넘는 진정성이 결국 통하는 걸 보았습니다. 사실 ‘진정성’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진정성이 있고 없고는 너무 주관적이기에 그 기준으로 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 합니다. 하지만 사장님을 뵈면서 ‘때 묻은 진정성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용산 문제가 언론에서 답보 상태로 보도될 때도 그 전기를 마련하신 것은 사장님 진정성이었습니다. 겉도는 내용으로 언론에 사실 설명하기에 급급하고 숫자에 갇혀 제대로 된 대응이 미진할 때였습니다. 예정에도 없이 인터뷰에서 용산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셨죠. 민감한 문제였고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보다 위험을 피하려는 입장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사장님께서는 솔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간 이후에 코레일의 공식 입장이 정리되고 여론에도 우리 기조가 세워졌습니다.


KTX-산천 안전 기원제를 올리실 때의 사장님의 진솔함도 잊을 수 없습니다. KTX가 정차역을 지나치고 잦은 운행장애로 고초를 겪을 때였습니다. 이른 새벽에 멀리 고양까지 가셔서 의복을 정제하셨죠. 이른 시간임에도 그렇게 단정히 정돈된 머리는 이후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시종 엄숙한 모습에 모든 직원도 기척없이 숙연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제 마지막이었습니다. “끝까지 타오르는 재가 하늘로 올라가야 염원이 받아진다”는 진행자의 말에 뜨거운 불꽃을 손바닥에서 최대한 늦게까지 품고, 태우시며 재를 하늘로 올리시던 사장님. 신성함은 종교와 신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현장 방문하실 때 사장님이 빼놓지 않고 들르시던 곳이 직원들 숙사였습니다. 직접 침대에 앉아보시고 불편하지는 않은지 춥거나 덥지는 않은지 화장실은 깨끗한지를 둘러보셨습니다. 행여나 업무에 피곤한 직원들이 본인 빨래로 번거롭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신경 쓰셨던 사장님. 마지막까지도 직원들 후생복지를 신경 쓰시더군요. 비단 근무하는 직원뿐 아니라 퇴직한 직원들에게까지 일자리를 배려하시는 모습에서는 사람에 대한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년 반도 채 안된 짧은 기간 동안 그 걸음만큼이나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ITX-청춘의 요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셔서 춘천을 비롯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시고, 우리 공사의 수요예측과 운임 결정에 새로운 방향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휴먼에러 연구위원회를 발족하셔서 사고의 책임을 묻기보다 사고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파헤치시고 결국 운행장애를 대폭 줄이셨습니다.


군을 비롯한 기관과의 협력과 영업 마인드의 선례를 보이셨습니다. 특별승진과 예산성과급을 정례화시켜 정당한 보상을 통해 직원들의 사기를 세웠습니다. 환승도우미를 통해 노숙인 문제와 이에 대한 공기업으로서의 책무를 지면서도 고객서비스로 접근하셨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신기루를 좇는 용산사업에 살을 베고 뼈를 깎는 단호한 결단으로 벼랑 끝에서 용산문제에 종지부를 찍으셨습니다. 서울역 중소기업명품마루, 대전역 성심당 등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영업 전략과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델을 동시에 제시하셨습니다. 여수엑스포, 동계스페셜올림픽 등을 지원하셔서 국가적 행사와 발맞춰 상생하는 방향을 보여주셨습니다. 중부내륙권관광열차를 통해 소외된 지역에 관광으로 새 숨을 불어넣으시고 더 나아가 4개 권역으로 확대하시려는 포부는 향후 우리 공사의 5년간 최대의 현안이 될 것입니다.


국외 사업에 눈을 돌리신 모습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구당 선생님을 모셔 직원들의 건강까지 챙기시는 것은 그 어떤 조직의 수장에게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일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만도 이렇게 많습니다. 기술분야를 비롯한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면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항상 모든 일에 덕을 직원들에게 돌렸습니다.


사장님께서 하신 일들 면면을 보면 더 많이 알수록 더 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환승 도우미 서비스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노숙인에 대한 편견 없이 한 사람으로서 일을 맡긴 사장님. 단순 업무가 아닌 주체적인 일을 주셨고, 그들은 환승 도우미로서 역할을 다했습니다. 노숙인 일자리의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도 사장님의 진정성,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엿봅니다. 비단 위의 경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업무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직문화에서 사장님이 심어주신 가장 큰 성과는 ‘활력’입니다. 이루신 성과에 비해 평범한 말 같지만 가장 포괄적으로 설명입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조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권태’였습니다. 분명 다들 부지런합니다. 나태하지 않습니다. 밤새 일하고 휴일에도 출근하곤 하지만 이것은 일상 업무와 그 연장선 그리고 눈치 보는 관행으로 굳어있었습니다.


이를 알아보신 사장님께서는 각 조직별, 개인별로 역동성을 띄도록 직접 아이디어를 내시고, 모범 사례를 전파하셨으며, 또 시스템화했습니다. 이전까지 ‘징벌적 체벌’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하였다면 사장님께서는 ‘성과적 보상’체계를 통해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단시간 내에 성과가 보이지는 않겠지만 근미래에는 성과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소외된 직원들이 없도록 신경 쓰는 세심함을 보이셨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은 스포츠에서 곧잘 벌어집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피나는 노력과 간절한 염원으로 이뤄지는 걸 봅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한 일 월드컵 4강, 몬주익의 마라톤 금메달 등과 같은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우리 코레일에도 일어났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작년 리그 막바지에 연전연승을 하며 코레일 축구단이 최종 우승했으며, 올해 사장님께서 계신 공식적인 대외 행사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사장님의 마음과 직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어 축구단에게 전달되고 그렇게 함께 이뤄낸 듯해서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더 오래 계셔서 더 많은 기적이 우리에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항상 눈앞의 작은 득실보다 더 멀리 보시고 진정성 있는 결정을 내리신 사장님이시기에 아쉬움을 거두려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음 올리고 싶은 일들이 많지만, 모두를 대표하는 글이 되기를 바라며 저만이 아는 고마운 마음들은 평생 깊이 품고 이만 줄이려고 합니다.

떠나시는 분께 드리는 최고의 인사말은

떠나는 아쉬움을 드러내는 것보다

앞날을 막연히 축복해 드리는 것보다

그간의 일들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고 널리 알리며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으로 사장님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기적과 같은 코레일 축구단 내셔널리그 우승


작가의 이전글작은 것들의 신(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