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구성이라도 색다르게
우리나라 기관에서 쓰는 연설문은 대부분 인사말이다. 외국 졸업식 축사 같은 자유로운 형식이 아니라면 축사도 인사말로 볼 수 있다.
행사 시작은 인사말이다. 유력 인사를 초대하는 이유는 인사말과 축사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참석자 중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은 인사말만 하고 나간다. 인사말을 하는 사람에 따라 행사의 격과 성격이 정해진다. 축사자가 3부 요인이면 국가적 행사다. 유력 언론사 행사도 장관을 모시려 애쓰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영상 축하 메시지라도 틀어놓으려 한다.
짧은 인사말 속에 행사 취지와 기관 역할이 담겨있다. 참석 기관 간 상하 및 역학 관계도 드러난다. 돈을 쓴 기관과 숟가락 얹으려는 기관이 보인다.
행사를 살리는 인사말은 격식을 갖추고, 행사 목적과 성격에 맞아야 한다. 상대 기관에 관심을 보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표현이 필요하다.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써야 한다.
인사말은 정해진 구성이 있다. 해야 할 내용이 있다. AI에게 최적화된 글쓰기 분야라고 하는 이유이다. 실제 한 정치인은 AI로 인사말을 작성한다고 전해진다.
인사말 구성
인사 : 본인 소개와 인사, 참석자와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에게 감사 인사
본론 : 행사 취지 설명, 의미, 기대 효과, 바라는 점, 마음가짐과 각오
마무리 : 다시 한번 감사 뜻 전하기, 건강 기원 등
인사에서는 당시 상황에 맞는 말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참석자를 호명할 때는 정확한 호칭을 써야 한다. 높은 위치부터 순서도 신경 써야 한다. 틀리면 절대 안 되는 부분으로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본론에서는 상대 기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설립 배경, 최근 이슈, 강조하고 있는 점, 슬로건 등 상대에 대한 사항을 행사와 연결하고, 우리 기관과의 연관성을 찾으면 인사말에 녹여내기 쉽다. 취지, 의미, 기대 효과 등은 기관 간 내용이 비슷하게 된다. 우리만 할 수 있는 독창적 내용을 찾아내자.
길면 안 된다. 여러 기관장이 모인 자리여서 위계가 있기에 길게 말하면 실례다. 비슷한 내용은 되도록 삼가고, 차별화해야 한다.
작성된 인사말을 그대로 읽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는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핵심 키워드, 문장 등이 기억에 남아야 한다. 인상 깊은 부분은 강조하면서 쉽게 적어야 한다. 입말로 써야 한다. 발음이 쉬워야 한다. 지나친 단문이나 문장 형식을 정확히 고려한 것보다는 줄바꿈, 쉼표 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문장을 적을 수 있다.
단상 위에 인사말을 올렸을 때 볼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 A4 한 장에 10~15줄 정도 나오는 크기로 인쇄해야 한다.
인사말은 예로 설명해보려 한다. 애써 준비했지만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기관장은 다른 말을 했거나 간단히 한두 장씩 넘기면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인사말을 갈음했다.
2020년 2월 국세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인사말이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먼저 국가 운영에 근본인, 재원을 꾸리시느라 한 참 바쁜 시간임에도 참석해주신
○○○국세청장님, △△△본부장님 그리고 오늘의 뜻깊은 협약식을 준비해주신
모든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범납세자에게 열차 이용의 특별한 혜택으로,
공공철도로서 소중한 책임을 다하는 자리를 갖게 되어 기쁩니다.
‘모범납세자 제도’는 국세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오스카상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의 주연 송강호 배우도
이미 2004년에 ‘모범납세자’로 선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김연아 선수, 영화배우 김혜수 님과 조인성 등 기라성 같은 유명인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국민들도 ‘모범납세자’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모범납세자’가 성공과 성실, 소위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의 깨끗하고 투명한 조세정책’의 맑은 거울과도 같은 모범납세자 제도에
우리 코레일이 힘을 보태게 되어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협약으로 코레일은 모범납세자에게 열차운임 할인을 제공해 드리고
국세청에서는 저희 공사의 세무업무 전반에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부가가치세 등 2,470억 원에 이르는 세금을 납부한 만큼
코레일과 국세청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가장 큰 거래처이면서 한편으로는 재무감독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쪼록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세무회계의 투명성과 업무의 효율성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세무업무는 ‘경영의 꽃’이면서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을 저희도 뼈아프게 겪었습니다.
이제 국세청과 손잡고 건전한 기업활동의 성과와 의무를 사회와 함께 나누는데 앞장서 노력하겠습니다.
첫걸음임에도 불구하고 국세청과 함께 한다는 마음에 벌써부터 든든합니다.
모쪼록 양기관이 모범적인 선례를 남겨 더 많은 공공기관이 동참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조세정의가 확산되고 공정사회 실현’에 한걸음 더 다가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국세청장님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당시 화제였던 영화 기생충과 송강호 배우를 연관지어 ‘모범납세자 ’이야기를 꺼내고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또 ‘대한민국의 깨끗하고 투명한 조세정책’ ‘조세정의가 확산되고 공정사회 실현’은 해당 기관에서 강조하는 말(슬로건, 미선, 비전 등)을 찾아서 적절하게 섞었다. 또한, 코레일 회계오류 사건을 모른 척 넘어갈 수 없어 뼈아픈 경험을 짚고 넘어갔다. 국세청에서는 연간 계획으로 한창 바쁜 시기가 2월이라는 것도 고려해 이점도 적었다.
틀에 박힌 내용이 어색하다면, 상황에 맞는 말로 인사를 대신할 수 있다.
코로나19 초기 우리 사회에 경계심이 극도에 달했을 때였다. 방역 최전선에 있는 대한적십자사와의 업무협약 자리에서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가 너무 상투적이라고 생각됐다. 노고를 격려하면서 시작했다.
2020년 3월 대한적십자사와 맺은 업무협약 인사말이다.
먼저, 코로나19 구호활동에 앞장서고 계신 대한적십자사의 모든 임직원분들의 노고에 국민 한 사람으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안부를 묻기도 무색한 상황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특히, 불철주야 바쁘신 와중에도 오늘 귀한 시간 내주신 ○○○ 회장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905년 대한적십자사를 세우며 고종 황제께서 하신 말씀이죠.
“널리 구제하고 고루 사랑하라” 지금 대한적십자사의 구호활동으로 실천하고 계십니다.
전방위적 방역과 위생용품으로 피해지역과 이웃을 돕는 대한적십자사의 활동을
모두가 지켜보고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별 모금활동에 각계각층의 마음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수혈용 혈액부족 SOS 요청에 헌혈 릴레이가 이어지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희 코레일도 감염증 확산방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지난한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종식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애써달라는 조심스러운 부탁과 함께
저희도 소소하지만 정성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협약을 통해 코레일은 전사적인 헌혈 참여로 생명나눔에 힘쓰고
긴급하거나 희귀한 헌혈 운송에 KTX특송을 활용한 혜택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왔던 이산가족 해피트레인 등 남북협력사업과
사랑의 집짓기 인 코레일 빌리지 같은 사회공헌활동도 대한적십자사와 끈끈한 유대 속에
한층 더 잘 다듬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꼭 필요한 도움이 적재적소에 전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인류가 있는 곳에 고통이 있고 고통이 있는 곳에 적십자가 있습니다’
앞으로 대한적십자사 옆에는 저희 코레일이 있겠습니다. 힘을 보태겠습니다.
모쪼록 두 기관이‘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서로 돕자’는 적십자정신을 모범적으로 실천해
더 많은 단체들이 적십자의 박애정신에 동참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시 한번 오늘의 협약을 함께 해주신 ○○○대한적십자사 회장님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안전과 건강을 챙기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임을 고려해 해당 기관의 노고를 먼저 언급했다.
이후‘대한적십자사를 세운 고종 황제의 어록’ 적십자사의 슬로건과 적십자정신을 활용해
우리 역할을 소개했다. 실제 기관장은 너무 낯 뜨거운 내용이라 생각했는지 간단하게 줄여서 말했다.
행사에 앞서 벌어지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언급하며 본문으로 이어갈 수도 있다.
처음 인사말을 쓸 때였다. 경상남도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1주일 넘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기존 인사말은 정형화된 형식을 따랐는데 다르게 쓰고 싶었다.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경남도청이 있는 창원중앙역까지 KTX를 타고 내려오는 과정을 녹여냈다.
KTX가 느리게 달리는 구간인 경전선에서 보이는 풍경을 연상했다. 철길 옆 풍경으로 펼쳐지는 푸른 늪과 전통 문화재를 묘사하면서 말 이어가고 싶었다.
2019년 8월 경남도청과 맺은 업무협약 인사말 앞부분이다.
여기 오는 길에 밀양강을 건너는 KTX 창밖으로 ‘영남루’가 잠시 스칩니다.
낙동강을 지나 봉화산이 보이는 김해시에 들어서면 철길 옆으로 ‘화포천’ 습지가 펼쳐집니다.
천혜 다도해를 끼고 있는 제 고향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새로 깨달았습니다.
또한 경남에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경제성장을 이끈 산업단지도 있습니다.
새삼, 인심 좋은 경남도민의 노력이 더해진 아름다운 풍경이,
경상남도 곳곳을 빛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생태와 문화유산, 첨단 산업기반을 갖춘 경상남도와
친환경 교통수단인 철도는 참으로 찰떡궁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말인 이렇게 시작하고 업무협약 취지를 설명했다.
당시 기관장은 다른 기관장들이 편하게 자유 발언을 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는데 행사 분위기상 훨씬 잘 어울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