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얘기 풀다가 한 문장 쓰는 거야, 기고문

by 문좀열어주세요


기자: 혹시 목요일까지 기고문 보내주실 수 있어요?

나: 됩니다. 삼일 남았네요. 주제는 상관없죠?

간혹 신문사에서 급하게 기고를 요청한다. 배정했던 다른 기고가 마감을 지키지 못한, 펑크 난 상황이다. 대부분 응한다. 철도 이슈는 늘 있고, 돈 들이지 않고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다. 기고는 말하고 싶은 주제를 신문이나 잡지 등에 자유로운 형식으로 게재하는 글이다. 빠르게 준비할 수 있다.


한번 계획이 틀어져 부탁하는 것이기에 마감일을 꼭 지켜야 한다. 반나절이라도 여유 있게 먼저 주는 게 좋은데, 초안이나 얼개라도 공유해 안심시키고 있다. 어려울 때 도와 신뢰도 쌓을 수 있다.


홍보실에서 신문사에 먼저 제안할 수도 있다. 주제가 트렌드와 맞아야 한다. 산업재해에 관심이 쏠릴 때는 안전대책, K-문화 붐이 일 때는 세계시장 진출사례, 부품 국산화에 정책 방향이 서 있다면 국내 중소기업 지원, AI 육성이 화두일 때는 이를 각 분야에 접목하는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


신문사와 2~3주 전에 협의를 마치고 기고를 보내면 게재 2~3일 전에 알려준다. 담당 기자가 직접 원고를 챙기기도 하고, 독자 서비스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처리하기도 한다. 주요 신문사는 주문이 까다롭다. 기대 수준에 맞추기 위해 반복해서 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신문사는 한 달 전에 원고를 마감하고, 적절한 시기를 조율하면서 게재한다.


신문 지면 기고문은 온라인 뉴스보다는 공신력이 크다. 전문적인 내용도 다룰 수 있다. 보도자료나 기획기사보다 자유롭게 입장을 알릴 수 있다. 기고자를 섭외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작성하는데 기관장 입을 빌릴 수도 있다. 누가 어떤 주제로 쓰든 독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편향된 내용은 공감받을 수 없다. 공익적 주제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야 한다. 기승전결로 서술하면 구성을 짜기 편하다. ‘기’에서 화두를 던지고 ‘승’은 발전시킨다. ‘전’이 흐름을 전환해 내용을 고조시키면 ‘결’에서 마무리 짓는다.


보통 기고는 오피니언 지면에 4~5개 정도 칼럼, 사설과 함께 실린다. 사진이나 도표도 없이 문자만 있는 건조한 페이지에서 독자 시선을 끌기는 쉽지 않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주장을 섞어야 한다.


신문사에서 분량을 정해준다. 보통 200자 원고지 8~9매 정도를 요청한다. 글자수로는 1600~1800자 정도. 글자수는 한글파일 ‘문서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면에 배치하거나 교정 교열하면서 내용이 수정·삭제되기도 한다. 중요한 단락이나 문장은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강조해야 한다.


기사와 다르게 기고는 요청하면 가판을 미리 보내준다. 글쓴이의 주장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인데, 수정하면서 핵심 주장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단락 순서가 바뀌지는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페이지를 배치하면서 단락이 뒤엉킨 경우가 있었다.


2021년 초 ‘KTX-이음’이라는 새로운 고속열차를 소개하는 기고문을 정리하게 되었다. 정부 정책과 발맞춘 기관장 생각을 담아야 했다. 꼭 써야 할 주문은 1. 대통령이 참석한 개통식 2.‘이음’이라는 이름 3. 친환경성과 에너지효율 4.국토균형발전 등이었다.


가장 중요한 1번부터 2번, 4번, 3번 순으로 기술적 장점과 국민적 혜택을 나열해 작성했다. “도로와 철도가 경쟁하는 오랜 구도 속에 KTX-이음의 등장으로 대중교통의 판이 철도로 기운다”는 콘셉트였다.


1. ‘대통령이 직접 개통식에 참석해 KTX-이음의 기적을 울렸다. 그린 뉴딜의 기수, 철도의 시대를 선포했다.

2. KTX-이음, 수도권과 강원‧충북‧경북지역을 ‘잇고’ 지역 상생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3. 소나무 6그루를 심는 이산화탄소 감축효과, 전력 소비량도 기존 KTX보다 21% 감소하는 KTX-이음, 미래도 잇는다.

4. 국토 균형발전을 놓고 도로와 벌이던 각축전이 KTX-이음으로 철도로 기운다.


이런 내용의 2,000자 분량 초안을 작성하고 뿌듯하게 홍보실장에게 보고하자 한숨을 푹 쉬었다. “박 차장님, 신문 한 부 갖고 오십쇼” 신문을 건네자 경제 섹션은 책상 끝으로 밀어놓고 종합 섹션 뒷장을 한 장 넘기고 지면을 펼쳤다. 눈에 들어온 기고 첫 문장을 손가락으로 짚으셨다. 소리 내 읽어보라고 하셨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맥아더는 군신(軍神)이 되었다.” “그만” “에도 시대 일본은 폐쇄 사회였다.” “그만” “”사방 벽도 바닥도 천장도 희게 빛나는 곳. ""그만" “헬조선의 원조 조선왕조의 오백 년 역사에서...” (21년 1월 28일 자 조선일보 사설, 순서대로 남정욱 작가, 한국은행 차현진, 이태훈 기자, 이주희 교수)


“알았나? 기고는 딴 이야기 풀다 한 문장 쓰는기다.” “끝까지 철도 철도 철도, 좋다 좋다 좋다 하면 그걸 누가 좋다고 하겠노?“ ”마! 바라, 앞에서 궁금하잖아, 뒤에 할 말 하면 된다. 사장 한 말 있잖아. 소나무 심는 효과가 친환경이면 그 있잖아. 혼자 나무 가득 심은 사람, 그걸 써야지"


‘주제를 먼저 아니었어?’


지도 편달 후에 21년 동안 축령산에 편백과 삼나무 280만 그루를 혼자 심은 임종국 선생 사연을 적었다. 이후 기관장 생각이 반영되고 네 차례 첨삭과 퇴고를 거친 후 서울신문에 게재되었다.

KTX-이음, 친환경 시대를 잇다


전남 장성의 축령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숲’이다. 매년 100만 명이 찾는 축령산은 ‘산림왕’ 임종국 선생 한 사람의 작품이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21년 동안 황무지에 28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우리나라에는 제2, 제3의 임종국 선생이 많다. 한국철도 고객들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승용차 대신 기차를 타면 소나무 12.4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다. 친환경 교통수단인 기차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승용차의 1/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교통의 주도권을 놓고 철도와 도로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주도권을 먼저 잡은 것은 철도. 도시의 에너지원을 나무에서 석탄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철도는 국토산림녹화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70년대 산업화를 이끈 건 도로였다. 자동차 공업 육성이라는 국가 정책과 맞물려 도로는 철도를 수십 년간 내리막길로 밀어 넣었다. 2004년 고속철도가 개통되고 나서야 철도는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전국을 2시간 생활권으로 묶은 KTX는 호남과 강릉까지 노선을 넓히며 중원을 장악했다. 2020년은 드디어 철도 예산이 도로 예산을 웃도는 원년이었다. 그러나 주도종철(主道從鐵)에서 ‘주철종도(主鐵從道)’가 이뤄지는 바로 그 순간 철도는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 코로나19 여파로 대중교통 수요가 승용차로 대폭 이동한 것이다.


2021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철도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앙선 복선전철에 투입한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 ‘KTX-이음’이 그 주인공이다.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KTX-이음은 제천까지 1시간 8분, 안동까지 2시간 3분 만에 도착한다. 수도권 접근성을 1시간 이상 단축했다. 수도권과 강원‧충북‧경북지역을 ‘잇고’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상생의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KTX-이음으로 청량리에서 안동까지 이동하면 소나무 6그루를 심는 이산화탄소 감축효과가 있다. 전력소비량도 기존의 KTX보다 21%가량 적다. 좌석 효율이 뛰어나 적은 에너지로 높은 수송력을 갖는다. 공기저항을 줄이는 디자인과 경량화로 에너지효율도 높였다. 최고속도 250km/h에도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아 ‘2050 탄소중립’의 견인차로 손색이 없다.


한국철도는 중앙선을 시작으로 서해선, 경전선, 중부내륙선까지 고속철도의 운행을 넓힐 계획이다. 2024년에는 국토의 절반 이상을 고속철도의 수혜지역으로 만들 것이다. 2029년까지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은 디젤차량 338대를 40대로 줄이고 모든 여객열차를 친환경열차로 교체할 방침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23.5만 톤에서 16.5만 톤으로 감축해 연간 1,06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생긴다.


KTX-이음 개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70조 원을 투자해 철도를 통한 일상의 대전환을 이끌겠다”며 그린뉴딜의 기수로 철도를 지목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이행 첫 해, 탄소중립 실현의 시작을 KTX-이음의 기적 소리와 함께 선포한 것이다.

반드시 가야 할 길이지만 철도로의 수송수단 전환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교통분야의 화석연료 소비량은 여전히 높고 60%에 이르는 승용차의 수송분담률은 떨어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한국철도는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친환경 미래를 준비하려 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열차를 바꾸고 선로를 개량할 것이다. 푸른 대한민국을 바라는 많은 ‘임종국 선생’이 한국철도에 승차하길 희망한다.

이후 밋밋하지 않게 기고를 쓰기 위한 팁을 만들었다.


주제를 한가지 ‘테마’의 '단어'들로 쓰고 '서사' 입히기


테마 : KTX 개통 20주년을 ‘출산과 성장의 테마’로 설정, 단어에 맞는 서사 부여

단어 : 산파, 산고, 탄생, 분만실, 출산, 아이, 아빠, 걸음마(질주로 심화), 산통(두 번째 쓸 때는 산고), 희생, 매정한 아비, 건강하게 성장, 스무 돌 등등


서사 : KTX 탄생과 고난, 성장을 지켜보지 못한 매정한 아버지가 스무 돌을 맞는 KTX에 거는 기대


첫 문장 : “나는 KTX 탄생을 도운 산파였다”



테마 : 새 정부 출범과 철도의 과제를 ‘배의 출항'으로 설정

단어 : 돛, 닻, 급물살, 순풍, 항해, 암초, 난파, 뱃고동, 여정, 파도, 난파선, 항구, 선장, 조타수, 방향키, 선원, 사이렌 등


서사 : 항구를 떠나 출항하는 ○○○호, 긍정적 요인은 ‘순풍’을 달고, 부정적 요인은 ‘암초’를 만난다. 순항을 위해서는 선장의 활약으로 절실하다.


첫 문장 : “이재명 정부가 돛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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