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글은 고만고만, 사과하는 글은 제각각
사과할 일은 생긴다. 사고는 나고, 비리가 적발되고, 정보는 유출된다. 직원의 실수와 경영진의 부도덕은 드러난다. 잘못을 인정해야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래야 신뢰 회복으로 이어진다.
ESG를 우선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부정적 여론은 치명적이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는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말로 재무적 요소만큼이나 경영 이념을 중시하는 풍토이다. 대중은 ‘바른’ 기업과 기관에 애착을 갖기에, 위기의 순간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사과가 필요하다. 통렬한 자기반성은 밖으로 표현해야 대중이 알 수 있다.
사과문을 쓸 때는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부 직원에게 할 것인지 국민을 대상으로 할지를 정해야 한다. 사과의 방식은 신문 광고인지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것인지, 내부망에 온라인으로 게재할 것인지도 대상에 맞게 결정한다. SNS나 홈페이지 등 올리는 위치에 맞게 분량에도 신경 써야 한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니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첫 문장처럼, 좋은 내용을 알리는 글은 고만고만한 자랑으로 채우면 되지만, 잘못을 반성하는 글은 저마다 악조건이 있다. 냉철한 반성으로 상황에 맞게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책 ‘쿨하게 사과하라’에서 ‘사과는 패자가 아닌 승자의 언어’라고 하며 사과의 요건을 안내하고 있다.
사과문에서 갖춰야 하는 내용은 8가지이다.
1. 진심 어린 사과
2. 위로
3. 책임
4. 반성
5. 조치
6. 원인
7. 재발 방지
8. 대책 마련
하지 말아야 할 표현도 있다.
1. 하지만, (사과합니다. 하지만 ~ )
2. 조건, (만약 ~~했다면, 사과합니다. 어떤 점은 사과합니다.)
3. 회피, 둘러서 말하기
(실수가 있었습니다. ‘실수’도 문제지만 ‘있었다’는 말도 회피로 들림)
너무 빠른 사과도 바람직하지 않다. 급조해 회피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대략적이라도 문제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사과도 할 수 있다. 무턱대고 사과하면 진정성이 없다. 사과 이후에 2차, 3차로 문제가 추가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냉정한 내부 조사와 판단을 거친 후에 공식 사과를 내놓아야 한다. 빠른 수습과 확산 방지를 위해서도 적절한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
아래 글은 2019년도 밀양역에서 코레일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직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성했다. 지시가 있어서 작성한 것이 아니라 혼자 써본 글이어서 공식적 입장은 아니다. 경영진이 사과를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었다. 공개되지는 않았다.
임직원들에게 전하는 글
또다시 동료를 잃는 사고로 임직원 여러분께
너무 큰 상심과 고통을 끼쳤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무엇보다 유가족들과 현장 동료들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입니다.
매번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도,
반복되는 사고로 입는 침통한 상처를
저희 경영진도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자책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겸연쩍지만,
고인과 유가족에게는 끝까지 예우를 갖춰
피해를 보상하고 사후 처리를 지원하겠습니다.
사고가 수습되는 대로 상례작업을 비롯해
현장 작업의 전 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습니다.
관계기관과 협력해
사고 원인의 근본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형식적인 조치로 현장과 동떨어진 대책은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희생이 헛되지 않게
작업자 안전대책을 최우선으로 마련하겠습니다.
직원들에게 꼭 필요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게 귀 기울이겠습니다.
‘안전한 작업환경’과 ‘직원 생명보호’가
허울뿐이지 않도록 전사적 역량을 모으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저희 경영진과 담당자들은
직원 안전을 제일 우선시하며 일해왔습니다.
더 관심을 갖고 부족한 점을
함께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모쪼록 현장에서 겪으셨을 좌절과 불안감을
극복하기를 기원하면서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사과는 사과답게 사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