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용 CCTV영상의 파급효과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

by 문좀열어주세요

2023년 6월 8일 오전 8시 20분께 수도권전철 수인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에스컬레이터에서 사고가 났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소위 말하는 '역주행'이었다. 9m의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하행 쪽으로 풀리면서 이용객 14명이 다쳤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수인분당선이었지만 출근 시간대라서 평소보다 많은 이용객이 에스컬레이터에 서있었다.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는 2018 대전역, 2017년 안산역 등 철도시설에서 반복되는 문제이다. 지하철 역사와 대형 쇼핑몰 등 실내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보다는 실외에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잦다. 눈과 비 등 습기에 노출이 많고 자갈이나 흙 같은 이물질도 기기 틈새에 자주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코레일은 전국 700여 개 역에서 3천 개에 육박한 에스컬레이터를 관리하고 있어 어딘가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기 점검과 상시 유지보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고는 예방이 우선이고, 불의의 사고 시에는 인명 피해가 없어야 한다. 이날 사고도 후속 조치는 신속했다. 곧바로 119가 출동해 구조활동을 펼쳤다. 큰 중상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띄진 않았지만 꼼꼼한 확인을 위해 구조대에서는 CCTV 영상을 확인했다.


당시 사고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또다른 사고는 CCTV 영상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에서는 상황 파악과 인명 구조를 위해 역무실에서 녹화된 CCTV 영상을 시청하면서 휴대폰으로 촬영해갔다. 상행 에스컬레이터 하단을 비추고 있는 영상이었는데 화면에는 갑자기 하행 방향으로 사람들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위에서 밀려 내려오는 사람들에 밀려, 아래쪽 사람들도 넘어진다. ‘공포의 역주행’이라는 뉴스 영상 제목이 붙은 이유이다. 주요 지상파 방송 뉴스와 종편에서도 사고 장면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관심이 커지자 후속으로 취재 오는 기자들도 많아졌다. 사진기자, 방송기자, 아침 시사방송 쪽에서도 문의가 들어왔다.


현장을 연결한 보도전문 채널들도 있었다. 사진 기자들도 현장을 구석구석 촬영해 기사를 많이 양산해냈다. 현장 감식하는 경찰들과 조사요원 등의 사진도 통신사 사진을 통해 백여 건 넘게 보도되었다.


영상을 확보한 매체는 '부상자'와 '구조대'의 인터뷰를 섞어서 다양한 뉴스를 만들었다. 영상을 틀어놓고 분석하는 심층보도가 이어지고 SNS에 짧은 영상이 돌아다녔다. 역대 에스컬레이터 사고 현황도 분석되고 반복되는 사고에 대한 경각심, 안일한 대응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사고 직후 철도특별사법경찰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승강기안전공단 등에서 20여 명이 조사에 나섰다.


수내역은 코레일에서 운영하지만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관리는 외부 유지보수업체에서 맡고 있다. 매달 정기 점검하는데 직전 점검에서는 ‘양호’ 판정을 내렸고, 검사 기관에서는 합격 통보를 내렸다. 나중에 모터와 감속기의 연결구가 마모되어 구동장치가 풀린 것이 사고 원인으로 드러났다.


철도시설물 등에 설치된 CCTV 영상은 방송을 비롯해 외부에 제공할 수 없다. 개인정보보호법에도 저촉된다. 철도안전법상 '범죄 수사'나 '재판' 등의 목적으로만 관련 기관에만 제공할 수 있고, 그 외에는 본인이 정보공개(영상)를 요청할 때 만 본인 이외 인물을 구분할 수 없게 모자이크 처리한 이후 본인에게만 제공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영상 처리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확보한 본인 영상을 언론에 제공해서 생기는 문제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이런 이유로 열차와 기차역에서 응급환자를 살리거나 범죄 가해자를 검거하는 영상도 언론에 제공하지 못한다. 실제로 2023년 덕소역에서 어묵을 먹다 목에 걸려 쓰러진 80대 응급환자를 부역장이 흉부를 압박해 기도를 확보하는 ‘하임리히법’으로 구한 사례가 있어 지상파방송에서 영상을 요청했으나 제공하지 않았다. 빈번한 경우이다.


사고의 처리와 책임과는 별개로 홍보실에서는 영상 유출에 대한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구조 목적으로 촬영한 영상을 그대로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철도안전법도 문제지만 사고 영상은 피해자 입장에서 고려할 필요도 있다.


홍보실에서 영상을 제공한 것으로 알고 원본 영상을 요청하는 방송사도 많았다. 특정 매체에만 제공한 것으로 오해해 항의하기도 했다. 이제부터 소방에 영상을 달라고 하면 되냐는 의견도 있었다. 해당 소방서에 문제를 제기했다. 실수를 인정하는 회신도 있었다.


하지만 소방에 문제 제기하는 내용이 그대로 언론에 노출되었다. 사고를 일으킨 측에서 적반하장으로 구조대에 항의를 한 모양새였다. 코레일이 영상 유출의 책임을 묻고 있다는 기사가 이어졌다. '에스컬레이터 사고 CCTV 영상 어떻게 유출됐나...코레일 법률 검토" '코레일 '수내역 사고 CCTV 유출 경위 조사'에 누리꾼 비난 쇄도..." 등등 코레일에 대한 2차 비난이 댓글로 이어졌다. 관계기관에서 제공한 것인지 어떤지는 추가로 캐물을 수는 없었다.


코레일에서는 공식적인 해명을 내놓았다. ”사고 원인 조사가 급선무이고, 재발바지 대책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영상유출은 추후에 경위를 파악하고 등등.. "의 내용이었다.


그해 12월 4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도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전 8시 42분경 발생한 사고로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고, 사고의 원인도 구동기 내 기어의 마모로 비슷했다. 오히려 수인분당선 수내역보다는 이용객이 많은 3호선 지하철역 도심 중심부와 더 가까운 곳이었다. 광화문, 종로 등 인근의 언론사에서도 취재하기에 가까운 위치였다.


119 구조대에 신고도 들어오고 출동도 했지만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해당 영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뉴스 양도 10배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수내역 뉴스가 많았다.


영상만 확보되면 2분짜리 뉴스는 뚝딱 만들어진다.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에서 4미터 높이 파도가 관광객을 덮쳐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구 반대편 해상 사고는 ‘거대한 파도가 사람을 덮치는 영상’과 함께 국내 뉴스로 보도되었다. ”괴물 파도에 휩쓸려 3명 사망“이라는 제목을 달고, 목격자와 희생자의 지인, 구급 요원의 인터뷰 3개가 덧붙여졌다.


현지 특파원의 멘트로 ‘선재적 경보와 현장 통제 미흡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뉴스는 완성되었다. 시선을 끄는 영상을 앞세워 유튜브 클릭수는 수만 회를 기록하고 여러 매체에서 같은 뉴스가 방송되었다.

최근 사고가 발생하면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방송매체와 사고 당사자도 CCTV 영상 먼저 요청한다. 당시 상황을 파악하고, 경찰에 고소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경우 관련법을 잘 확인해봐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협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는 본인 이외 다른 사람이 찍힌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물며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영상을 제3자에게 제공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19조를 위반한 것이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확보하는 것이 아닌 수사기관이 직접 CCTV 영상을 확보하게 해야 한다.


코레일에서 발생한 사고의 경우에도 필요시 수사기관을 통해서 영상을 확보하고 조사하도록 해야한다. 수사기관에서 정식으로 영상정보공개 요청을 하면 이를 제공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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