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에도 상처받는 이가 있다

미처 몰랐던 피해자의 감수성

by 문좀열어주세요

수도권전철에서 성추행범을 붙잡은 기관사 기사가 올라왔다. 출근길에 기관사가 여성을 구하고 용의자를 경찰에 인계했다.


2024년 8월 22일 오전 8시 20분 경의중앙선 대곡역에서 20대 남성이 한 여성을 뒤따라와 성추행했다. 깜짝 놀란 여성과 문제의 남성이 실랑이를 벌였다. 출근길이던 남성 기관사가 이를 목격한다. 기관사가 다가가자 남성은 도망가고 주변 사람의 도움까지 더해 붙잡혔다. 출동한 경찰에게 용의자는 인계됐다.


언론보도 전에 해당 일간지 기자는 사실확인을 요청했고, 남성 기관사의 증언을 확보해 전달했다. 기자도 어떻게 알았는지 남성 기관사에게 직접 연락해 경과를 파악했다. 경찰서에도 전화해 사건의 경위를 조사했다.


취재를 마치고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기사가 올라왔다. 사실만 덤덤하게 기술한 스트레이트성 기사였다. 기사를 따라 쓴 다른 매체의 온라인 기사가 몇 건 더 올라왔다. 피해자와 용의자의 신원, CCTV 영상이 있는지? 구체적인 피해를 묻는 기자도 있었다. ‘낮부터 공공장소에 저런 파렴치범이 있냐’는 댓글이 붙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피해 여성이었다. 기사를 내려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기자의 소관이었다.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고, 사건 이후로는 뒤따라오는 발자국 소리에도 깜짝 놀란다”라고... 기자에게 설명은 해보겠는데, 기사 삭제 여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답을 했다. 전화를 끊고 바로 기자에게 부탁했다. 기자는 피해자와 직접 통화하겠다고 말했다.


기사로 인한 2차 피해는 어렴풋이 넘겨짚을 수만 있었다. 취재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고, 취재 마무리 단계에서 뒤늦게 알려줬다. 피해자가 문제 삼아도 딱히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기사가 지워졌다. 기사에 나온 두 가지 사실로 추론을 하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 인계한 시민의 증언에 따르면 용의자는 발달장애인이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최초 언론에 제보한 사람이 코레일 직원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사건 현장에는 없었고 풍문으로 듣고 제보했다고 한다.


기사는 수정도 그렇지만 삭제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쓰는 것보다 더 힘들다. 데스크에 보고하는 것도 쉽지 않고, 별도로 사유를 남겨야 한다고 한다. 그 힘든 일을 기자가 기꺼이 해줬다.


상처받을 사람이 있다는 판단은 아무도 못했다. 붙잡은 사람, 목격한 사람, 경찰에 인계한 사람, 제보한 사람, 소속 책임자 등 사건과 관련된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만 여성이었다. 다행히 기자도 여성이었다.


과거에는 열차나 기차역에서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거나 범죄 용의자를 검거하면 미담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곤 했다. 인물 기사는 늘 언론과 대중의 관심사다. ‘생명을 구한 승무원’, ‘열차에서 환자가 있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출동해 응급조치한 의사’, ‘늦은 밤 기차역에서 치안을 붙잡은 군인’, ‘길을 잃은 아이를 부모에게 찾아준 역무원’, ‘신고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119 구조대’가 주인공이었다.


‘KTX에서 갑자기 쓰러진 환자’, ‘막차를 타는 길에 기차역에서 치한을 마주친 승객’ ‘서로를 애타게 찾는 어머니와 어린아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도움을 준 입장에서 영웅의 이야기로 홍보를 해왔다.


최근에는 환자나 피해자의 초상권 등 인권과 개인 프라이버시도 고려 대상이다. 질병의 종류나 치료 과정, 열차를 이용한 동선과 목적을 비롯해 본인의 신분 자체가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미디어가 광범위해 본인 의도와는 다르게 온라인상에 떠도는 기사로 상처받기도 한다. 인적 네트워크도 광범위해 뜻하지 않게 미디어에 노출된 사실을 전달받는다. 또한 특정인을 영웅적으로 미화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부작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24년 KTX가 김천구미역을 통과하고 동대구역을 앞두고 있을 때 응급환자가 발생했다. 다른 승객이 이를 발견하고 비상버튼을 눌러 승무원을 불렀다. 비상콜에 신속히 반응한 승무원과 열차 팀장이 곧바로 방송으로 의료진을 찾았다. 운이 좋게 의사 한 명과 간호사 두 분이 열차에 타고 있었다.


가까이 있던 간호사가 먼저 와 환자를 눕혀 기도를 확보하고 편히 눕히는 사이 의사가 도착했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응급조치를 했다. 이어 도착한 다른 간호사와 함께 환자를 돌보고 구조대에 인계할 수 있게 조치했다.

그 사이 열차팀장은 열차운행을 총괄하는 철도교통관제센터에 보고해 KTX가 차질 없이 역에 도착할 수 있게 처리했다. 동대구역에서는 119 구조대를 수배해 KTX가 도착하자마자 환자를 옮길 수 있게 하고, 가장 빠른 동선도 확보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절차가 훈련처럼 맞물렸고, 응급환자는 무사히 치료를 받고 귀가할 수 있었다.


칭찬 VOC로 해당 사건이 접수되었다. 생명을 구한 간호사들과 의사에게 코레일 사장이 감사패라도 전달하라는 내용이었다.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승객 제안이었다. 대가도 없는데 사명감으로 의료행위를 제공한 분들을 챙겨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코레일 직원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특정 일간지에 언론 홍보하라는 조언과 함께 본인도 직접 제보했다.


언론사에서 연락이 왔다.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기자였다.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해 일주일 전 기사로 썼었다. 의료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의사도 다뤘던 기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가로 의료계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밤새 응급실 뺑뺑이로 숨지는 환자가 생기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지키는 나홀로 의사가 생길 때였다.


감사패를 전달하기 위해 확보한 신원을 전달받아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의사분은 지역 의료 관련 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걱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의료분쟁이 극한에 치달은 상황에서 단순한 미담으로 다뤄지지 않고, 의도를 갖고 포장될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두 번째는 단체를 대표하는 만큼 홍보 목적이 부각될까 싶은 염려였다. 모두 기우였다.


의사는 거절했다.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흰 가운을 입은 이상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는 당연한 사명이죠’라는 멋진 말이 아니었다. 진료 중이라며 통화도 쉽지 않았다. 병원 간호사에게 메모를 남기고 연락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고, 세 번째에야 어렵게 통화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에 뭔 인터뷰를 하냐’고 잘라 말했다.


의료분쟁이 화두인 만큼 취재기자는 의욕이 있었다. 많은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응급환자와도 연락이 닿았다. 그는 언론에 보도될 수 없게 해달라고 했다. 신원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도 소용없었다. 기사에 나온 환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본인은 안다고 말했다. 지인도 알 거라고 덧붙였다. 지병을 알리고 싶지 않고, 그날 쓰러진 고통도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분의 뜻을 전달하자 기자도 이해했다.


일본 영화 라쇼몽처럼 시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객관적인 기사라도 시점이 언제나 객관적이지는 않다. 생명을 구한 영웅담도 누군가에게는 죽을 고비를 넘긴 아찔한 기억이다. 예전처럼 당신의 생명을 구해줬으니 언론 앞에 서달라고 권유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 서로를 돕는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입에 발린 말은 통하지 않는다.


디지털시대에 개인정보에 대한 감수성은 예민해졌다. 포털 사이트에 한 번 올라간 기사는 블로그, SNS, 유튜브를 떠다니면서 영구 박제화될 수도 있다. 과거의 사소한 일, 누군가와 얽힌 사연이 재소환되기도 한다.

담당부서의 동의로 보도자료에 실렸던 사진이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해 신원을 알 수 없었다. 언론에 보도되고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진기사를 삭제하라고 국민신문고에 수차례 요구하는 사람이 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모두 지우는데 여섯 달이 넘게 걸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사자만 아는 사연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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