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서부이촌동 포함으로 보상과정에서 용역사까지 동원하는 등 사업을 수개월 지체하는 사이 대형 암초가 떠올랐다. 2008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에서 비롯된 세계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도 침체를 맞았다. 용산개발사업에 유입될 돈도 말랐다. 사업 위기였다.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며 용산개발사업은 국내 부동산·금융 시장 경색의 상징처럼 비쳤다. 언론매체는 착공도 못한 111층 용산 랜드마크를 마천루의 저주(The Skyscraper Curse)를 대변하는 세계 초고층 건물과 나란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마천루의 저주는 번영을 기대하고 짓기 시작한 초고층 건물이 완공될 쯤에 경제 위기에 놓인다는 가설이다. 겉으로는 호황을 상징하는 초고층 건물이 경기 사이클 속에서 지어질 때는 경기 불황을 맞는다는 논리다.
미국에서는 1931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지어질 때 경제 공황의 한복판에 놓였고, 1970년대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완공 시기와 서로 겹쳤다.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기에 아랍에미리트의 부르즈 할리파의 옆자리에 용산개발사업이 언급되었다. “가장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순간, 그 경제는 이미 꼭대기에 있다”는 마천루의 저주를 국내에서 롯데월드타워로 넘겨주기 전까지 용산개발사업이 그 자리를 지켰다.
시장 침체 속에도 코레일은 엄살을 피울 수 없었다. 미리 투입한 자금도 있었고, 추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건설사들에게 보증을 요구기도 했다. 사업을 청산할 용기와 결단도 없었다.
제일 먼저 출구를 빠져나간 기관은 사업을 주도해야 할 삼성물산이었다. 2010년 9월 대표 주관사의 지위를 반납하고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이후 지분을 넘겨받은 롯데관광개발이 최대 주주로 발돋움하면서 코레일과 주도권을 두고 싸우는 양상이었다. 사업이 순조로울 때는 드러나지 않는 갈등이 수면 위에 떠올랐다.
코레일에서는 삼성물산의 이탈과 롯데관광개발과의 다툼 과정을 언론에 노출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땅 주인으로서 사업의 진척이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갈등이 사업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자금조달이 힘든 상황에서 투자 가능성까지 떨어트릴 수는 없었다.
반면, 건설사 등에서는 공기업이 참여한 상황에서 전환사채나 토지 보증 등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코레일에서 해법을 찾아주길 바랐다. 코레일은 여건 변화를 반영해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부터 우선 개발하고 나머지는 단계적으로 추진하고자 했으나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민간 출자사들은 일괄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은 사업 정상화의 의지를 보였다. 삼성물산이 이탈하기 직전인 2010년 8월에는 4조 5,000억 원대의 랜드마크 빌딩을 선매입해 토지대금 조달을 해결할 수도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자금조달에 숨통이 트일 수도 있다고 주목했으나 그런 과정 자체도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이 이탈하는 수순에 불과했다.
이후 2년간은 자금조달과 서부이촌동 보상, 랜드마크빌딩 계획 등을 추진하고 급기야 코레일에서 롯데관광개발의 지분 회수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무산되었다.
언론에서는 땅 주인 코레일과 투자사들 사이의 대립으로 보도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개발 이후에도 상가와 건물 등의 분양이 불투명하자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불투명한 사업 전망이 갈등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애초의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금조달 등의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투자사들과 주관사가 되어 계획을 변경하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하려는 코레일의 입장을 같은 비중으로 보도했다.
“양 기관의 갈등 속에 사실상 파산”, “남은 자금은 279억, 12월 부도 전망” 등등의 제목으로 기사가 만들어졌다. 2012년 말의 상황이었다.
이듬해 3월 결국 부도를 맞았다. 자금조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업은 어음에 대한 이자를 내지 못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놓였다. 31조 원 규모 사업에서 지불하지 못한 선이자는 59억이었다.
2026년 현재 진행하고 있는 용산개발사업은 사업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코레일과 서울도시개발공사(SH) 등 공공이 사업을 주도해서 진행한다. 시장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일괄이 아닌 단계적 개발 방식을 취한다. 공공이 먼저 기반 시설을 설치한 이후 토지를 분양하는 방식도 기존과 다르다.
공공이 주도하면서 서울시가 언론 발표를 주도하고 있다. 2006년 인허권 문제로 사업이 수개월 지체되어 금융위기 태풍에도 휩쓸린 경험이 있는 코레일은 서울시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2005년 고속철도 부채 5조 원을 갚기 위해 시작했던 사업은 서울을 넘어 국가적 도시 사업으로 부상했다. 코레일은 어떻게든 개발을 진척시키고자 한다. 사업이 지지부진한 20년 새 코레일 부채는 21조 원으로 늘었다. 이제는 용산철도정비창 부지를 감정가의 두 배로 매각해도 빚을 갚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