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투쟁이냐 태업이냐
용어를 사이에 둔 기싸움은 코레일 사측과 노동조합과의 관계에도 드러난다. 단체협상 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쟁의행위는 다양하다. 그중 규정을 지키겠다며 열차를 지연시키는 ‘준법투쟁’을 하는데 사측에서는 이를 ‘태업’이라고 한다.
노조는 안전수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승하차 승객을 철저하게 확인하는 등 사측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히 지키기 때문에 ‘준법’ 투쟁이라고 주장한다. 사측은 안전수칙을 과하게 지키면서 열차 지연을 유발하고 승객 불편을 야기하기 때문에 ‘태업’이라고 이름 붙인다.
준법투쟁이냐 태업이냐에 따라 같은 단체행동이라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게 정해진다. 명칭에 따라 쟁의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되고 정당한 노동행위 여부도 판단할 수 있다고 노무사는 말한다.
준법투쟁인지 태업인지를 두고 언론매체를 사이에 둔 프레임 싸움이 벌어진다. 언론매체가 직접 뛰어들기도 한다. 대기업과 경영인 등 사측을 대변하는 경제지에서는 여지없이 태업이라고 쓰는 반면 친노동계인 진보 매체에서는 준법투쟁이라고 보도한다.
한 기관장은 ‘경고파업’이란 명칭에 거부감을 보였다. 파업에 앞서 노조가 기세를 보여주기 위해 하루 정도 진행하는 전초전 형식의 파업이 경고파업인데 이를 ‘빙법태업’이라고 부르라고 지시했다. ‘이름’으로 노조가 프레임을 선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빙법태업, 억지파업으로 이름표를 붙이라는 것이다.
에스컬레이터가 뒤로 밀리는 경우도 ‘역주행’이 아니라 ‘후진’, 열차가 위치를 조정하기 위해 뒤로 움직이는 것도 ‘역주행’이 아니라 ‘후진’이라는 것. 기사라도 나올 판엔 언론에 당장 연락해 제목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어쩔 수 없이 정중하게 부탁해 보지만 언론매체에 용어를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억지’였다.
그는 이임식에서 경영에 발목을 잡는 구태라고 노동조합을 비난하며 자리를 내려놓는다. 이후 당시 여당 텃밭에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강북 쪽으로 자리를 옮겨 정치에 도전했다.
철도에 대한 파업 프레임은 굳건하다. 상습파업, 고질적 파업, 반복되는 노사 갈등, 해묵은 현안, 또 파업, 또 멈춘 철도 등등. 매년 빠지지 않는 연례행사처럼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고 대중은 인식한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파업을 하지 않은 한 해가 더 많았다. 2005년 공기업으로 전환된 코레일은 2025년까지 20여 년간 파업이 일어난 해는 8번 있었다.(‘06년, ’09년, ‘13년, ’14년, ‘16년, ’19년, ‘23년, ’24년) 2년 연속 파업한 것도 두 번밖에 없었다. 시민 불편과 산업계 파장을 고려하면 그마저도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매년 한다는 인식은 오해이다.
공공기관, 그것도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기관의 파업을 바라보는 인식은 부정적으로 고착되어 있다. 파업의 악순환, 반복되는 노사 갈등, 해묵은 현안, 출근길 대혼란, 국민 볼모 파업, 서민 발목잡기, 이동권 침해, 전 국민 인질, 기득권노조, 귀족노조, 밥그릇 지키기, 특권 챙기기, 명분 없는 파업, 시민 담보 파업, 안전 방관한 파업, 강경 투쟁, 시민은 냉랭, 파업의 피로감, 국민 불편 외면한 파업, 출근길 막는 노조, 볼모, 대란 등등
정당한 노동권으로써 주체, 목적, 절차, 수단, 방법 등 적법한 과정을 거친 파업이라고 해도 부정적 프레임이 덧씌워진 이상 대중의 동정을 얻기 힘들다. 노조 입장에서는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교섭 범위를 벗어난 요구를 끼워넣기도 한다. 정치적, 사회적 대의를 좇아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주장을 한쪽에 담는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사태 직후 돌입한 파업에서 정권 퇴진을 내세운 경우이다.
도시철도와 지하철을 운영하는 일부 철도기관은 파업 프레임을 교섭에 활용하기도 한다. 파업 예고 전날까지 강행 의지를 보이다가 자정이 넘어서면 극적인 타결을 받아낸다. 교통대란을 염려한 언론과 대중의 압박이 교섭력을 높인다. 서울교통공사 파업 전날, 돌입 가능성을 묻는 기자에게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아마 파업 안 하고 새벽에 타결됐다고 공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