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의 지연과 좌초
단군 이래 최대 도심 개발이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49만 5,000㎡ 규모의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를 콤팩트시티로 만드는 계획이다.
용산역부터 철길을 따라 부채꼴 모양 땅에 50조여 원을 투자해 업무·주거·상업시설 등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서울 한복판 한강을 끼고 축구장 70배, 서울광장 40배, 여의도의 2배 부지에 세계적 미니도시가 탄생하게 된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언론매체의 관심사다.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 종합편성에서 경제‧산업부, 건설․부동산부, 서울시청 등 출입처를 망라하고 취재한다. 개발계획이 밝혀지고, 변경되고, 다시 확정되는 순간마다 타깃이다.
2025년 한 해에도 구역지정 고시, 사업시행자 선정, 실시계획 인가신청(고시) 등 생소한 사업 절차가 진행될 때마다 뉴스가 생산됐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뿐만 아니라 관할 용산구청 등에서도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해 11월에는 개발사업 기공식이 열리며 본격 개발을 알렸다. 2011년 10월에 이어 두 번째 기공식이다. 첫 번째 기공식은 사업추진 5년 만에 열렸으며 그 사이 자금유치, 사업시행자 지정 등의 사업 향방도 언론에서 다뤘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최초 2005년 구상단계에서는 용산역세권개발로 불렸다. 이후 사업의 성격이 바뀔 때마다 이름도 바뀌었다. 용산 서울철도차량기지(철도정비창) 개발,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을 거쳐 2025년에는 서울시가 주도해 용산서울코어로 명칭을 발표했다. 사업의 역사와 향후 단계적 토지분양 등을 고려하면 용산개발사업이 가치 중립적이다.
용산개발사업의 땅 주인은 코레일이다. 용산역 일대가 철도 이름을 붙인 학교, 병원, 공장 등의 철도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다. 한 세기 가량 대한민국 철도의 심장부로 철도산업의 최전선을 이끌었다.
1905년 만들어진 용산 철도공장은 부품을 만들고 차량을 유지 보수하는 국내 최대의 종합철도공장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자체를 설계 및 제작했으며 특히, 증기 기관차와 전기기관차가 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철도기지로 쓰였다가 2004년까지는 철도정비창으로 사용되었다. KTX 유지보수를 위해 경기도 고양에 KTX 차량기지가 만들어지면서 주요 기능도 그곳으로 이전되었고 일부는 수색(서울) 차량사업소, 이문차량사업소 등으로 넘겨졌다.
이후 공터인 공간에 국제업무지구 계획이 들어섰다가 1만 가구 주택단지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잠깐이나마 대통령실과 연계한 복합공원 조성 아이디어도 튀어나왔다. 그사이 개발을 기다리며 묵묵히 토지정화작업 등을 거쳤다.
20여 년의 시간 속에도 진척과 중단 또는 후퇴 등을 겪으면서 용산개발사업을 수식하는 기사 제목은 바뀌었다. ‘표류와 좌초’, ‘순풍과 순항’, ‘난항과 안착’, ‘도약과 정체’, ‘본궤도와 제자리’, ‘급물살과 역풍’ 등등. 언론보도는 사업의 풍향계였다.
사업의 출발도 언론 기자회견이었다. 2006년 2월 코레일 이철 전 사장이 기자들 앞에서 "철도공사 부채 4조 5,000억 원은 고속철도로 인한 빚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차원의 철도부채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의 신년 연설에서 힘을 받았다.
그해 8월 용산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대책이 나왔다. 정부 재정지원 없이 용산역세권 개발을 통한 이익으로 코레일의 부채를 해결하는 것이 사업의 목적이었다. 용산개발이 막을 올렸다.
코레일은 그해 말 이사회에서 개발사업 추진계획안을 의결했고 44만㎡ 부지의 개발을 확정하고 사업자 공모를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시(오세훈 1기 시장)가 즉각 반발했다. 시의 도시계획과 근간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시 협의를 진행했다. 오 시장은 한강과 인접한 서부이촌동을 끼워 넣으려 했다. 해를 넘기고 한강르네상스와 용산역세권이 결합된 사업자 공모에 다시 들어갔다.
오 시장의 염원이었던 한강르네상스 사업은 한강 주변을 일괄 개발해 문화 기반과 경관을 개선하는 정책이었다. 노후 주거지 개발이 핵심이었는데, 용산개발사업에 한강에 인접한 서부이촌동을 포함하며 애초와 성격이 바뀌었다. 주민 보상과 민원 등의 문제로 시간도 지체되었다.
언론매체는 ‘약자의 말’, ‘첨예한 대립’, ‘명확한 득실’을 놓치지 않는다. 개발의 이면에는 거주자 보상 문제와 관련해 재개발의 복잡한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일부 주민은 의지와는 다르게 수십 년간 살아온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한강조망권을 확보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득실에 따라서 반발과 찬성 등 갈등이 있었다. 천문학적인 토지보상비, 집값 상승 등 이해관계도 얽혀있었다. 모든 것이 기사거리였다.
2007년 11월에야 사업자로 삼성물산 컨소시엄으로 확정되고 12월 코레일과 삼성물산이 사업협약서에 서명했다. 땅값 12조 원을 포함해 31조여 원을 투입하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이 돛을 올렸다.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PFV)와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AMC) 등 투자와 실무 회사가 설립되며 개발을 본격화했다.
111층 랜드마크 타워와 대형 쇼핑몰, 호텔, 백화점 등을 짓는 마스터플랜이 발표되었다. 코레일에서도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애초에 코레일은 땅을 매각하고 고속철도 부채 탕감이 목적이었으나 장밋빛 청사진이 그려지면 과실에도 손을 뻗치게 되었다.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코레일 자금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지분이 늘어났다. 발을 빼기 늦은 측면도 있었다.
(1차 사업개발이 무산되는 과정과 2026년 2차 사업개발 계획에 대한 내용도 곧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