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짓 홍보(2/2), 애초에 내 책임

인연은 찾을수록 멀어진다

by 문좀열어주세요

응급환자를 심폐소생술로 구한 사건은 다행히 보도되지 않았다. 알리지 않아 부정적 여론을 차단했다. KTX가 출발하는 기차역에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한 미담을 보도자료 내달라는 요청이 급히 들어왔다. 대규모 역이고 역무원의 역할도 커서 꼭 알리고 싶다고 했다.

앞뒤 정황을 보니 보도자료를 낼 건은 아니었다. 애초에 책임은 우리에게 있었다. 출발 직전 KTX가 고장 나 다른 KTX로 교체했다. 열차를 바꿔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고 이동해야 했다. 멀리 떨어진 칸에 있는 이용객은 백여 m를 움직여야 했다. 맨 앞쪽 칸에 있던 이용객은 혹시나 출발시간을 놓칠까 뛰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이 호흡장애를 일으켰다. 열차를 못 탈까 서두르다 난 사고였다. 목적지가 응급실로 바뀐 것을 사과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 사고를 미담으로 생각하다니 가당치도 않을 일이다.


기자가 상습적으로 허탕 치는 취재도 있다. 종합편성채널 등 뉴스팀에서 1년에도 서너 번은 요청하는 아이템이다. 데스크가 지시하거나 누군가 제보하기도 한다. 열차 부정승차 단속 동행취재다.


열차에 같이 탑승해 승무원이 단속하는 장면을 취재하겠다는 요청이다. 무조건 정중하게 거절한다. 승객 민원, 초상권, 운임 경계 구역 등 열차 내에서 촬영하지 못하는 일반상황을 설명하지만 무엇보다 취재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알려준다. 원하는 그림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90% 이상이기 때문이다.

한해 열차 부정승차는 28만여 건이다. 부가운임만도 70억 원을 넘는다. 국정감사 때나 관련 제도가 바뀔 때, 명절을 앞두고도 항상 보도된다. ‘최근 5년 몇백만 건’, ‘지난해 비해 00% 증가’, ‘해마다 늘어’, ‘단속 무용지물’, 때로는 ‘가장 많은 부가운임 1,800만 원’, ‘수도권전철 50만여 건’ 등 통계를 분석하거나 변주를 준 기사가 나온다.


28만 건이 큰 수로 보이나 1년 동안 열차도 20만 회 훌쩍 넘게 운행한다. 크게 잡아야 열차 1대당 1.2건 정도 부정승차가 발생한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열차를 타고 가야 한 명 내지는 많아야 한 명 더 나오는 셈이다.


(실제 가장 많은 구간, 주말 붐비는 시간대, 일부 승무원은 몇십 건을 적발하기도 하지만 전체 통계로 보면 1.2건이다.)


심지어 기자는 부산역까지 가지도 못한다. 왕복 6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동행취재 할 수 있는 구간은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1시간 정도이다. 1시간 동안 1명이라도 적발될 확률은 1/3 정도이다.

여기에 서울역까지 오는 시간, 한번 승차하면 내릴 수도 없는 점, 다시 올라오는 시간 등을 고려해도 부정승차자 0.3명을 촬영하기 위해 3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부정승차자를 위해 카메라는 계속 촬영해야 한다. 그렇게 1명이 나오더라도 대부분 스스로 찾아와 열차에서 발권하겠다고 요청하는 경우다. 승차권을 잘못 구매하거나 급하게 타느라 구매하지 못했다고 자진신고한다. 28만 건의 대부분이 그렇다.


2020년 한 뉴스팀은 운이 좋게 차내에서 발권한 사람을 포착했으나 카메라 앵글이 틀어져 도저히 뉴스에 쓸 수가 없었다. 마이크를 달고 다시 요청할 수도, 재연할 수도 없었다. 넌지시 비슷한 장면을 다시 연출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결국 장소를 옮겨 수도권전철 게이트를 뛰어넘는 사람이라도 찾으려고 기다렸다.

28만 건, 70억 원이라는 압도적 숫자, 연일 매진으로 승차권을 못 구하는데 누군가는 부정승차하는 생활밀착형 소재이다. 흥미 있는 뉴스 아이템이지만 촬영하기는 쉽지 않다. 연간 통계로 설명하고 영상은 열차가 운행하거나 승객이 타고 내리는 자료화면이 쓰여야 한다.


늦은 시간 무임승차 후 승무원에게 난동을 피우는 사람은 같은 열차에 우연히 탑승한 이용객만 촬영할 수 있다. 그렇게 제보된 영상이 뉴스로 나온다. 주말 춘천행 ITX-청춘 열차에서 술파티를 벌이는 사람, 1호선 지하철 빌런이나 유실물을 빙자한 캐리어 같은 폐기물도 확률의 수렁 속에서 한 번의 취재로는 발견하기가 힘들다.


인연은 찾을수록 더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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