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를 다한 철도를 위한 행사
옛 경춘선, 마지막을 기억하는 행사
(작년 12월에 썼던 짧은 글에 추가했습니다.)
홍보 업무를 하다 보면 철도 마니아, 소위 ‘철도 덕후’에게 깊은 영감을 받는다. 스스로 철덕이라 말하는 그들은 철도 정보에 더 민감하고 철도 상식에 더 정통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철도 애정이 각별하다. 스스로는 철덕을 부인하기도 한다.
네 자리로 차량번호(호차)를 보고 디젤, 전기를 구분하고, 도입 연도, 견인력, 크기, 모양 등을 꿰찬다. 전국 철도 노선을 줄줄이 외고, 사라지고 수십 년이 되어 땅에 묻힌 철길도 보러 다닌다. 디젤기관차가 KTX-산천을 끌고 강릉역으로 운행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하루 전부터 자리를 지킨다.
철도 마니아에게서 종운식을 처음 들었다. 새로운 노선 개통식은 코레일에서 진행하지 못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철도는 건설을 맡은 국가철도공단과 운영을 맡은 코레일이 분리되어 있다. 노선을 준공하는 주체는 국가철도공단이기에 개통식도 주관한다. 코레일은 참석해 세리머니 버튼을 같이 누른다.
개통식에는 해당 지역의 유력인사가 앞다퉈 참석한다. 도지사, 시장, 군수, 국회의원 등등이 앞자리를 채우고 의전 서열에 따라 무대에 올라 축사, 기념사 등등 한 마디씩 남긴다. 강릉선 KTX, KTX-청룡 등 국가적인 개통행사에는 대통령이 자리를 빛낸다. 대통령이 참석하면 행사 주관도 대통령실(경호처)로 넘어간다. 담당 부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면에 생애를 다한 열차와 철길을 위한 행사는 없다. 최근 십여 년 넘게 코레일에서도 공식적으로 준비하지 않았다. MT의 낭만을 품었던 옛 경춘선이 새 경춘선에게 자리를 넘겨줬을 때 개통식은 성대하게 열렸지만 종운식은 아무도 찾지 않았다. 구청장, 시의원은 관심 없다. 철도 마니아들만이 챙기는데, 국내에서는 수인선 협궤열차와 새마을호 장대형 객차의 종운식 정도가 여러 언론매체에 보도될 정도로 크게 치러졌다.
발길이 편하게 한낮에 열리는 개통식과 달리 종운식은 막차가 도착하는 야심한 밤에 열린다. 마지막 운행이라고 알리는 표식을 기관차 앞에 붙이고, 도착역에 들어오면 기관사와 여객전무(승무원)에게 꽃다발을 걸어주고 기념 촬영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수십여 명의 마니아가 플랫폼을 가득 채운다.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 열차를 기념해 봐야 이득이 될 리 없다. 순전히 낭만으로 열차를 철길 위에서 떠나보내면서 추억을 갈무리한다.
<종운식 행선판 사건>
일부는 마지막 열차의 행선판을 몰래 떼어내기도 한다. 행선판은 객차 옆면에 부착해 출발역과 도착역, 열차명을 표시한 안내판이다. KTX를 비롯한 현재 열차들은 디지털로 표시되지만 과거에는 직사각형 판으로 끼워 넣고 뺄 수 있었다. ‘무궁화호 | 청량리~남춘천’ 식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옛 경춘선의 마지막 운행 날 운행한 무궁화호에 부착된 80여 개 행선판 중에 20여 개 남짓만 남고 60여 개는 누군가 빼갔다. 71년간 운행한 경춘선 무궁화호를 행선판으로 기억하고 싶었나 보다. 물론 행선판을 가져가는 건 불법이다. 코레일의 자산으로 철도박물관에 소장하거나 수장고 등에 보관해야 하는데 그 많은 행선판의 행방은 알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