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13
학창 시절 이후에도 자전거는 종종 타곤 했다.
대학시절 지인에게 한 학기만 빌려서 타고 다닌다던가, 외국에서 같이 사는 친구들과 자전거 한 대를 서로 공유한다던가, 서울시 특산물인 따릉이를 타고 다닌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간헐적으로 자전거 라이프를 연명했다. 하지만 내 소유의 자전거는 없었다.
그러던 내가 최근에서야 중고 자전거 한 대를 장만했다. 가느다란 바퀴의 날씬한 체형의 로드바이크였다. 이름은 엘리스라고 지어줬다. 한강에서 시운전을 해보니 놀라울 정도로 속도가 엄청났다. 슈퍼카를 타면 자연스럽게 풀액셀을 밟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폭풍 페달질을 해봤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로드바이크를 처음 타봤다는 말은 곧 로드바이크를 다루는 방법도 처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 MTB를 타던 습관이 문제였다. 자전거를 타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 이것도 약간은 정신 나간 짓이었다는 것을 최근 대화를 통해 알았다 - 뒷바퀴가 터져버리는 사고가 벌어졌다. 문제는 한강을 따라 한참을 달리고 있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집까지는 무려 9km 거리였다.
그때의 날씨는 조금 더운 듯했지만 곧 있으면 해가 저물 때라 다행이었다. 그 먼 거리를 뒷바퀴가 터져버린 자전거를 질질 끌고 걸어서 겨우 돌아왔다. 이 녀석, 아직 길들이지 못한 야생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건도 있었다. 부산에 일정이 생겨 1주일 정도 다녀왔던 날이었다. 돌아와 보니 자전거가 사라진 것이다. 자물쇠가 굳건히 잠겨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째로 사라졌다.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외쳤다.
당장 가장 가까운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접수를 했다. 어린시절 처음 자전거를 잃어버렸을 때 보다 한국은 장족의 발전을 일궈냈다. 이곳저곳에 CCTV를 잘 설치해 놓고, 여러 가지 탐문수사도 벌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잡범의 검거율이 얼마나 높은지는 잘 몰랐지만 난 대한민국의 치안 수준을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다지 눈에 띄는 진척은 없었다. 문자로 사건의 수사진행상황을 알려주긴 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내가 사는 집 입구 쪽은 CCTV가 없어서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상황설명을 듣고 보니 이미 희망의 마음은 멀찌감치 떠나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잃어버렸던 자전거가 그 자리 그대로 자물쇠에 여전히 묶인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놓여있는 게 아닌가. 자전거를 보자 반가움보다 황당함이 먼저 앞섰다. 이리저리 살펴보자 곳곳에 작은 상처들과 자물쇠를 절단하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마도 통째로 가져가서 작업(?)을 하려다가 실패한 모양이다. 어쨌든 살아 돌아와 줘서 다행이다.
카페에서는 지갑에, 핸드폰, 노트북까지 놓고 다녀도 정작 탐내는 건 자리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수십 년째 자전거 약탈만은 계속되는 건지 여전히 내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