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해가 여름날의 해로 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날이 좋아서인지 점점 손님이 많아졌다. 오픈하던 그 해만큼은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고 매출은 꾸준했다. 한 달 전부터 우리는 점심 장사만 하기로 했다. 하루 13시간 식당에 갇혀 사는 삶은 쉽지 않았다. 오후 5시.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오랜만에 창문을 열어 본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바람. 이런 바람을 느껴 본 지가 얼마만인지.
“우리 이제 그만 할까?”
조용히 운전만 하던 남편이 말문을 연다.
“그래, 그러자.”
나는 불과 기름으로 상처만 가득한 남편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 날이 식당 운영 마지막 날이었다.
식당을 인수하고자 하는 분이 왔을 때, 놀랍기도 했지만 기회로도 여겨졌다. 식당은 매출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힘든 곳이다. 물론 매출이 좋은 게 덜 힘들지만 우리처럼 사람을 쓰지 않고 직접 요리하고 서빙하는 곳은 항상 힘들다. 내 사업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쉬는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식당은 문 닫으면 매출이 0이다.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는 식당은 비수기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돈에 대해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벌 때 벌어야 하기 때문에 문 닫는 일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명절 당일 하루, 그것이 휴일의 전부였고 그 휴일은 잠으로 채우기 바빴다. 이는 곧 우울함으로 이어졌다. 손님들과의 작은 트러블들은 점차 작은 것으로 머물지 않았다. 한 번 받은 스트레스는 적당한 탈출구를 찾지 못해 매일매일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 손님 편의를 위해 당연하게 희생되었던 우리의 시간들. 이것들이 더 이상 보람이 아닌 고통이 되었을 때, 하루를 시작할 때 기대감이 아닌 우울함이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식당을 떠나기로 했다.
한 번 결정하니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계약서를 쓰고 이것저것 인수하는 과정이 다 끝나던 날 괜스레 눈물이 났다. 열심히 했던 그 순간들, 주변의 반대와 우려를 딛고 일어선 결과들. 그리고 나의 소중한 손님들. 눈물이 나 제대로 인사도 못 한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이런 서운함과 홀가분함이 뒤섞인 감정도 잠시, 현실에 부딪혔다. 근데 우리 이제 뭐 하고 살지?
식당 경력 2년은 경력 단절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하던 사업을 접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실패로 여겨졌고, 실패는 절대 경력사항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할 수는 없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한 선택인데 경제적 안정감을 위해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럴 바에는 식당을 계속하는 것이 나았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져서 무서웠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식당을 그만둔 거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날 우리는 바로 짐을 싸고 도쿄로 여행을 갔다. 2년 전 식당 준비를 위해 도쿄를 방문했던 기억이 났다. 출장이었기에 관광은 전혀 하지 못해 아쉬웠었다. 다시 한번 시작해야 하는 지금, 2년 전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던 곳에서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온 도쿄는 여유로웠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이야기만 했다. 24시간 붙어 있던 2년이었지만, 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를 한 적은 별로 없었다. 서로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서로가 얼마나 힘든지 물을 수도 없었다. 털어놓기 시작하면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피상적인 대화로 서로를 모른 척했었다. 그렇게 덮어두다 보니 정말 나쁜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직장생활 때의 힘들었던 순간도 공유했다. 그동안 버텨왔던 서로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여행도 가고 싶고, 요가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외국어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미술공부도 해보고 싶었다. 남에게 해주는 음식 말고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시작하니 끝도 없었다. 9년간 꾹꾹 참아 왔던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직업은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며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여기에 수반되는 고통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그저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일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꿈은 꿈일 뿐, 꿈이 아닌 우리가 잘하는 일을 찾으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잘하는 일만 끊임없이 찾으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꿈을 묻는 것인가? 배움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사회는 우리에게 꿈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이는 얼마 안 되는 경험을 토대로 새하얀 도화지에 다양한 꿈을 그린다. 그 꿈은 이루기 어려울수록 칭찬받고 아이의 야망에 탄복한다. 그러나 아이가 점점 성장할수록 너의 꿈은 헛된 것이며 너는 원하는 것이 아닌 잘하는 것을 하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도 간신히 찾았는데 이제는 잘하는 것까지 찾으라니. 문제는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찾는 것은 훨씬 힘든 일이며 좋아하는 것이 그나마 잘하는 것에 속하는데 그것은 해보지 않고서는 내가 그걸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한 시도에 시간제한을 걸어두고 그것을 넘겼을 때에 실패자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다시 ‘잘하는 줄로 착각하던 자리’로 돌아가 타이머를 누르고 살아가라 말한다.
우리는 그 타이머를 잠시 후에 누르려고 한다. 우리는 아직 어릴 적 ‘좋아하는 것’에 미련이 남았다. 적어도 다음 하는 일이 전처럼 고통의 연속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조금이나마 있어 아침에 눈 떴을 때 ‘그래도 한 번 일어나 볼까’라는 기대감으로 시작하고, 일이 끝났을 때 약간의 보람을 느끼고 싶다.
이런 삶의 적극성이 참을성 없음으로 치부되어 비난받지 않고 꿈을 찾기 위한 도전이라는 용기로 받아들여지고 싶다. 그래서 이다음 하는 일은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닌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
우리는 1년만 쉬어가기로 했다. 다시 한번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도쿄의 어느 한 카페에 앉아 조용히 하고 싶은 일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책 읽기, 요가하기, 수영하기, 그림 그리기, 밴을 몰고 여행하기, 우쿨렐레 배우기, 양자역학 공부하기 등등, 하고 싶은 것 천지였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것이고 그 시간을 잘 활용하면 이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안도 생각이 날
것이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적어도 하고 싶은 일로 1년을 채운 배터리는 다음 일이 무엇이든 그것을 시작할 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밑천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안식년은 성직자나 학자들이 7년에 한 번씩 쉬는 해를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1년을 쉬면서 다음 라운드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준비가 되면 주저 없이 타이머를 누를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