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빛의 제국]
누군가의 기억 속에 들어가는 일에는 냄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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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TEX 임상센터의 복도는 항상 같은 냄새가 났다. 소독제와 커피와, 그 아래 깔린 미세한 오존. 메모리 브릿지 장비가 가동될 때 공기 중에 남기는 잔향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 느꼈지만 나는 매일 아침 이 복도를 걸으면서 그 냄새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알았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 나는 오존 냄새에 집중력이 켜졌다.
자기 자신을 개에 비유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사실이니까.
Palo Alto의 CORTEX 본사는 University Avenue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원래 반도체 회사의 연구소였던 3층짜리 건물을 개조한 것인데, 데이비온이 리모델링을 주도해서 1층은 투자자와 미디어를 위한 쇼룸이 되었고, 진짜 연구는 2층과 지하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1층에 거의 가지 않았다. 거기는 데이비온의 영역이었다. University Avenue 끝의 SenseUp 광고판 아래에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그를 풍경의 일부로 처리했다. 나의 아침은 지하에서 시작되었다.
임상실 B-3. 오전 7시 40분.
이른 시간인데도 팀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오늘의 피험자는 마거릿 첸, 일흔한 살, 조기 발현 알츠하이머 3기. 진단 후 6년. 메모리 브릿지 임상 4차 세션.
나는 마거릿의 차트를 태블릿에서 훑으면서 임상실에 들어갔다. 해마 위축률 연간 4.2퍼센트. 좌측 내후각피질의 기능 저하가 두드러짐. 지난 세션에서 복원에 성공한 기억: 딸의 다섯 번째 생일 파티. 복원 유지 기간: 11일 후 재퇴색. 하지만 퇴색 속도가 자연 망각보다 30퍼센트 느림. 의미 있는 수치.
"좋은 아침이에요, 마거릿."
침대에 앉아 있는 마거릿은 창을 보고 있었다. 지하인데도 인공 채광 시스템이 캘리포니아의 아침 햇살을 흉내 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았다. 잠시 0.7초 정도 인지의 공백이 있었고, 그다음에 미소가 왔다.
"닥터 태드. 오늘도 일찍이시네."
마거릿은 나를 기억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난주 화요일에는 내가 누구인지 물었고, 목요일에는 아들로 착각했다.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나는 이것을 일지에 기록했다. 인지 변동성, 주간 패턴 추적 중.
"오늘 세션은 조금 다를 겁니다. 지난번에 복원한 기억(에밀리의 생일 파티)을 강화하는 대신,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새로운 영역이라니요?"
"남편분과의 기억입니다."
마거릿의 표정이 변했다. 미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아래로 무언가 다른 것이 올라왔다. 불안. 혹은 기대. 혹은 두려움. 나는 그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읽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솔직히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 그 표정은 데이터였다. 감정적 반응의 강도를 측정하면 복원 대상 기억에 대한 정서적 부하(emotional load)를 추정할 수 있었고, 그것은 메모리 브릿지의 자극 파라미터를 조정하는 데 필요한 변수였다.
필요한 변수.
사람의 표정은 변수였다. 그때의 나에게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기술 브리핑을 시작했다. 메모리 브릿지의 원리는 내가 수백 번 설명한 것이지만 이렇다. 인간의 기억은 하나의 장소에 저장되지 않는다. 시각, 청각, 후각, 감정, 맥락 정보가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 분산되어 있고, '기억한다'는 행위는 이 분산된 조각들을 실시간으로 재조립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는 이 조각들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 이것이 핵심인데 - 조각들 사이의 연결을 끊는다. 조각은 아직 거기 있다. 다만 찾아갈 길이 사라진 것이다.
메모리 브릿지는 그 길을 다시 놓는다.
뇌의 신경 패턴을 정밀하게 매핑하고, 끊어진 시냅스 경로를 BCI를 통해 우회하여, 고립된 기억 조각들 사이에 임시 다리를 놓는 것. 다리이기 때문에 영구적이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끊어진다. 하지만 다리를 반복적으로 놓으면 뇌의 가소성이 작동하면서 일부 경로가 강화된다. 완치는 아니다. 퇴행을 늦추는 것이다. 하지만 그 '늦춤'이 누군가에게는 딸의 얼굴을 한 달 더 기억하는 것이고, 남편의 이름을 석 달 더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기술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기술을 만든 이유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준비되셨어요, 마거릿?"
마거릿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진이 BCI 헤드셋을 그녀의 머리에 씌웠다. 가벼운 티타늄 프레임에 256채널 전극이 박힌 장비.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작업에는 수술이 필요했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전극을 직접 삽입해야 했다. 지금은 비침습 방식으로 가능하다. 이것도 내가 해결한 것이다. 두개골 너머에서 개별 뉴런 수준의 신호를 읽어내는 초고해상도 센서. 나는 그것에 대한 특허를 열일곱 개 가지고 있었다.
열일곱 개. 열여덟 번째는 심사 중이었다. 특허 개수를 세는 것이 습관인 사람에게는 열일곱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숫자를 세는 것도 감정을 막는 한 형태일 수도 있다. 업적을 나열하면 자기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는 증거가 되니까. 하지만 그때는 그냥 사실이었다. 나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였고, 그것은 측정 가능한 사실이었다.
모니터에 마거릿의 뇌 활성 맵이 떠올랐다. 색으로 구분된 영역들. 파란색은 비활성, 노란색은 저활성, 빨간색은 고활성. 그녀의 해마는 대부분 파란색이었다. 파란 바다 위에 노란 섬들이 드문드문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파란색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의 뇌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하지만 그 생각은 0.3초 만에 차단했다. 의식적으로. 어머니의 뇌 -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해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대신 생각을 끊었다.
"타겟 영역 활성화합니다."
내가 말했다. 기술진이 파라미터를 입력했다. 메모리 브릿지가 가동되면서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 오존 냄새. 장비가 마거릿의 뇌에 정밀한 전기 자극을 보내기 시작했다. 끊어진 시냅스 경로를 우회하여, 해마 깊숙이 고립되어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깨우는 것.
모니터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파란 영역 한가운데서 아주 작은 노란 점이 생겼다. 커지기 시작했다. 노란색이 주황색으로 변했다. 기억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마거릿의 눈이 감겼다.
나는 모니터를 보았다. 활성화 패턴이 예측 모델과 87퍼센트 일치. 나쁘지 않다. 남편과 관련된 기억 클러스터가 깨어나고 있었다. 시각피질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청각피질. 목소리. 그다음 편도체. 감정.
순서가 중요했다. 시각 → 청각 → 감정. 이것은 이 기억이 시각적 계기로 형성되었음을 뜻했다.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에서 시작된 기억.
마거릿의 입술이 움직였다.
"제임스."
그녀의 남편 이름이었다. 제임스 첸. 8년 전에 사망. 마거릿은 지난 2년간 남편의 이름을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임상실이 조용해졌다. 기술진 중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활성화 영역이 확장되고 있었다. 해마에서 전두엽으로. 맥락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 이름과 연결된 장소, 사건, 감정, 계절, 냄새 - 그 모든 것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기억이 된다.
"정원이 있었어요."
마거릿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목소리가 달랐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보고 있는.
"레몬 나무가 있었어요. 제임스가 심은... 제임스가 심었어요. 우리가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뒷마당에. 아주 작은 묘목이었는데."
모니터의 활성화 맵이 폭발하듯 확장됐다. 후각피질까지 활성화되었다. 그녀는 레몬 냄새를 맡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레몬 나무의 냄새를.
"열매가 열리면 제임스가 항상... 직접 따서... 레모네이드를..."
문장이 끊겼다. 마거릿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데이터를 기록했다. 활성화 피크 도달 시간: 4분 32초. 감정 반응 동반 여부: 양성. 기억 복원 깊이: 에피소드 수준. 복원 범위: 시각, 청각, 후각, 정서 4개 양상.
훌륭한 결과였다. 지난 세션보다 복원 깊이가 2단계 향상. 이 데이터면 논문 한 편은 더 나온다. 임상 3상 진입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마거릿은 울고 있었다. 8년 전에 죽은 남편이 레몬 나무 아래에서 웃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눈물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때의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 기술이 작동하고 있다는 만족감. 메모리 브릿지가 한 사람의 잃어버린 세계를 되돌려주고 있다는 확인. 나의 연구가 의미 있다는 증거.
하지만 마거릿이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 죽은 사람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선물인지 고통인지, 되살아난 기억이 곧 다시 퇴색할 것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잔인한지, 기억 속의 레몬 나무 냄새가 실재하는 레몬 나무 냄새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시작되려는 순간 차단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이름 붙이기의 매끄러운 작동.
세션이 끝났다. 메모리 브릿지를 서서히 감쇠시키고, 마거릿의 뇌 활성이 기저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눈을 떴다. 눈이 부은 채로 미소 지었다.
"레몬 나무가 보였어요, 닥터 태드."
"네, 마거릿. 아주 좋은 결과였습니다."
"제임스가... 거기 있었어요."
"기억이 복원된 겁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션에서 "
"닥터 태드."
마거릿이 내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웠다. 그녀의 손은 마르고 차가웠고, 손등에 정맥이 파랗게 비쳐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환자와의 신체 접촉은 프로토콜상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거릿이 말했다.
"감사해요."
두 단어였다.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에 무엇이 있었을까. 그때의 나는 읽지 못했다.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감사, 라는 단어를 접수하고, 적절한 응답을 생성하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갔다.
"천만에요, 마거릿. 다음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손을 뺐다. 임상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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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했다. 아침에 내린 것이 식어 있었다. 나는 그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 환자의 차트를 열었다. 윌리엄 파크, 여든둘, 알츠하이머 4기. 예후 불량. 메모리 브릿지의 효과가 3기까지는 유의미하지만 4기에서는 급격히 떨어진다. 시냅스 경로가 끊어진 정도가 아니라 뉴런 자체가 사멸하기 때문이다. 다리를 놓으려 해도 다리를 받쳐줄 땅이 없는 것이다.
윌리엄의 딸이 지난주에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아버지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게 해달라고. 한 번만이라도. 나는 정중하게 답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데이터는 명확했다. 4기에서의 복원 성공률은 12퍼센트. 그것도 파편적 수준에 그친다.
이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 12퍼센트라는 숫자를. 딸에게. "아버지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할 확률은 여덟 번 중 한 번입니다" 라고.
나는 전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데이비온의 팀이 관리하는 영역이었다. 환자 커뮤니케이션, 기대치 관리, 법적 고지. 나는 기술을 만들고, 데이비온은 그 기술이 세상과 만나는 방식을 관리했다. 합리적인 분업이었다.
합리적인 회피이기도 했다.
2층 연구실로 올라갔다. 내 사무실은 연구실 안쪽, 유리벽으로 분리된 공간이었다. 책상 위에 어머니의 사진이 있었다. 하나뿐인 사진. 어머니와 나, 인디애나의 집 앞마당. 내가 여섯 살쯤. 어머니가 나를 안고 있고, 배경에 노을이 있다. 둘뿐이다.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기 전에 떠난 사람이다. 어머니의 얼굴은 내 기억 속에서 이미 많이 퇴색해 있었다. 이 사진이 없으면 윤곽조차 불확실할 것이다.
아이러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기억을 되살리는 기술을 만든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하지만 그 아이러니를 오래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들여다보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나는 일을 해야 했다.
사진에서 눈을 떼고 모니터를 켰다. 오늘 오후의 일정. 2시에 IRIS 프로젝트(아직은 초기 구상 단계인)의 내부 검토 회의. 4시에 아르티스 세이 박사와의 미팅. CORTEX의 수석 연구원. 비시각적 인지(non-visual cognition)의 세계적 권위자. 그리고 선천성 시각장애인.
아르티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나중에.
5시에 데이비온과의 주간 정례 미팅. 아마 또 투자 라운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Series D. 설립 7년째. 우리의 기업가치는 지난 분기에 34억 달러를 찍었고, 데이비온은 50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나에게 숫자는 숫자일 뿐이었지만, 데이비온에게 숫자는 가능성이었다. 더 많은 자금은 더 큰 임상, 더 빠른 FDA 승인, 더 많은 환자를 의미했다.
더 많은 환자.
미팅 전에 데이비온이 커피를 들고 연구실에 올라왔다. 이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미팅 안건이 아닌 이야기를 5분 정도. "어제 Warriors 봤어?" 데이비온이 물었다. "안 봤어. 결과만." "커리가 40점 넣었어. 너 그 사람 생체역학 분석한 거 기억나? 손목 각도 뭐였더라." "17.3도." "그래, 그거. 그 논문 아직도 사람들이 인용해." 나는 웃었다. MIT에서 재미로 쓴 논문이었다. 데이비온이 학술지에 투고하자고 한 것이었다. 이런 것들이 20년이었다. 데이비온은 실험실에만 있던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사람이었다. MIT에서 내 논문을 읽고 찾아와 "같이 하자"고 한 날, 그 말의 의미를 나는 20년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농담, 커피, 쓸데없는 대화. 이런 것들 위에 회사가 서 있었다.
나는 그 단어를 떠올리면서 마거릿의 손이 내 손을 잡았던 감촉을 잠깐 느꼈다. 마르고 차가운 손. 파란 정맥. 0.5초. 그리고 지웠다.
다음 일정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하루가 돌아가고 있었다. 2041년 10월의 어느 화요일. 사고가 나기 3주 전. 나는 매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들의 가장 소중한 순간(결혼식, 아이의 첫걸음, 부모의 웃음)을 디지털로 복원하고 측정하고 기록했다. 수백 명의 기억을 다루면서, 나 자신의 기억은 건드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기억은 사진 한 장에 맡기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고치는 일을 했다. 이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순에도 이름을 붙이면 괜찮아진다. 나는 그것을 "동기 부여"라고 불렀다. 어머니를 잃은 경험이 이 연구의 원동력이라고. 상실이 창조로 승화된 것이라고.
그럴듯하지 않은가. 강연에서도 잘 먹히는 서사였다.
그 서사 아래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그때의 나는 보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었는데.
점심 무렵, 연구실 창으로 Palo Alto의 거리가 보였다. 가을의 캘리포니아. 이 동네의 가로수는 잎이 지는 종류가 아니어서 가을이 와도 풍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늘 같은 초록이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변하지 않는 것. 예측 가능한 것.
창 너머로 BCI 클리닉의 간판이 보였다. SenseUp이라는 체인. 감각 증강 BCI를 월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는 곳. 지난 3년 사이에 이런 클리닉이 마치 스타벅스처럼 번져나갔다. 청각 증강이 가장 대중적이었고, 후각 필터링, 촉각, 미각이 그 뒤를 따랐다. 가격은 기본형이 월 29달러, 프리미엄이 월 199달러. 프리미엄 사용자는 초음파 영역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고, 와인의 일곱 번째 풍미 층을 혀로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시장이 성장하는 것을 데이터로 지켜보았다. 감각 증강 BCI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작년에 1,200억 달러를 넘었다. 인간의 감각이 상품이 된 세계. 더 많이 듣고, 더 세밀하게 느끼고,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된 세계.
CORTEX는 이 시장의 선두에 있었다. 메모리 브릿지가 우리의 대표 기술이었지만, 데이비온이 진짜 노리고 있던 것은 기억 기록 서비스(살아있는 사람의 기억을 디지털로 백업하는 것)의 상용화였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했다. 윤리적으로는 논쟁 중이었다. 법적으로는 회색 지대였다.
나는 기술을 만들었고, 데이비온은 그 기술의 쓰임새를 결정했다. 우리의 분업은 CORTEX가 시작된 MIT 시절부터 그래왔다. 나는 실험실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고, 데이비온은 가능한 것에 가격을 붙였다. 그가 없었으면 CORTEX는 논문 속에만 존재하는 기술이었을 것이다. 그가 없었으면 마거릿은 남편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많은 것을 면제해준다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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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IRIS 내부 검토.
IRIS는 아직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프로젝트였다. 시각 BCI. 이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 청각이나 촉각과 달리 시각은 정보의 양이 압도적이다. 해상도, 색 인지, 깊이감, 움직임 추적, 패턴 인식 -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한다. 기존의 시각 BCI는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시각피질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었는데, 결과는 저해상도 흑백(1970년대 TV 수준)에서 정체해 있었다.
나의 아이디어는 달랐다.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라, 뇌 자체가 이미지를 생성하게 하는 것. 뇌의 시각피질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 뇌가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꿈을 꿀 때 눈이 감겨 있어도 생생한 이미지를 보는 것처럼. 외부 카메라의 데이터를 뇌의 언어로 번역하여, 뇌가 "스스로 보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이론적으로는 아름다웠다.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였다.
회의에서 나는 이 구상을 발표했다. 팀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흥분하는 사람과 회의적인 사람. 하지만 내가 발표할 때 아무도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이 내 논리가 설득력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아르티스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그것은 위계 때문이었다. 설립자이자 CEO이자 천재 과학자에게 "그거 안 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회사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르티스는 그 몇 명 중 하나였다.
4시. 아르티스와의 미팅.
하지만 아르티스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짧게 쓸 수가 없다.
대신 이 하루의 끝을 적겠다.
밤 10시. 집. Palo Alto의 조용한 주택가. 나는 집에 혼자 살았다. 3베드룸 2배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넓은 랜치 스타일의 집. 뒷마당에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전 주인이 심은 것이었는데, 나는 그 나무를 돌보지 않았다. 물을 주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끔 감탄했을 뿐이다.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오늘의 임상 데이터를 정리하려는 것이었는데, 대신 다른 파일을 열었다. 습관적으로. 매일 밤 하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데이터.
어머니는 신경과 의사였다. 인디애나의 작은 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뇌를 들여다보던 사람이었다. PSEN1 유전자 변이. 유전성 조기발현 알츠하이머. 마흔두 살에 자기 자신에게 내린 진단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죽은 뒤에 검사를 받았다. 음성이었다. 어머니의 변이는 내게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진단 이후 자기 뇌의 데이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병원의 EEG 장비를 빌려 퇴근 후 혼자 전극을 붙이고 기억의 스냅샷을 남겼다. 신경과 의사였으니까. 자기 뇌가 무너지는 과정을 알고 있었고, 무너지기 전에 무언가를 남기려 했다. 원시적인 장비. 거친 데이터. 잡음이 80퍼센트. 하지만 어머니는 매주 기록했다.
말기에 어머니가 더 이상 스스로 전극을 붙일 수 없게 되었을 때, 열여섯의 내가 이어받았다. 어머니의 뇌에서 마지막 신경 패턴을 추출했다. 그때는 메모리 브릿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의미 있는 신호가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하지만 나는 그 데이터를 버리지 못했다. 20년 동안. 매일 밤 그 파일을 열고,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신호를 걸러내고, 패턴을 찾았다. 20년 동안 유의미한 결과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잡음은 잡음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기억은 만약 이 데이터 안에 있다 해도 너무 파편적이고 손상되어서 복원이 불가능했다.
알고 있었다. 과학자로서 알고 있었다. 이 데이터에서 어머니를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매일 밤 그 파일을 열었다.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집착? 미련? 슬픔? 나는 부르지 않았다. 이것에만은. 설명하면 괜찮아질 테고, 괜찮아지면 파일을 닫을 수 있을 테고, 파일을 닫으면 어머니와의 마지막 연결이 끊어질 것이었다.
그래서 설명하지 않았다. 매일 밤 파일을 열고,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닫았다.
밤 11시 47분. 노트북을 덮었다. 불을 껐다. 어둠이 왔다. 그때의 어둠은 그냥 어둠이었다. 아침이 오면 사라질, 통제 가능한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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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는 사람이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