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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누군가 길을 물어본다면

핸드폰 없이 길 찾기

by 탱탱볼



오늘 나는 리움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해 지하철 역에 서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밀리의 서재로 오디오북을 듣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았다.


어느 할아버지가 길을 물었다.

"장한평역에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타는 게 맞아요?"

평소라면 모르면 모른다 답하고 내 일에 집중할 텐데 작년에 천국에 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나 지나칠 수가 없었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 보니 한번 갈아타야 했다.


그때 앞 쪽에 계시던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와 우선 올라가 반대쪽에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라고 말했다. 너무 모호한 안내 같아 내가 전철이 낫지 않겠냐 말했지만 아저씨는 할아버지를 올려 보냈다.


내 옆에 있던 또 다른 할아버지가 이방향으로 전철을 타는데 맞는 거 같다고 혼잣말을 하셨고

길을 물어봤던 할아버지도 몇 계단 올라가서는 이쪽이 맞는 거 같다고 뒤돌아 보셨다.


다가가서 이쪽이 맞고 군자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라고 말씀드리고 빠른 환승이 가능한 칸을 알려드렸다.






몇 년 전 내게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여름이었고 국비지원 때문에 꼭 당일 약속된 시간에 상담을 받으러 가야 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전원이 꺼졌다. 충전할 보조배터리도 충전기도 시간도 없었다.


간신히 꺼지기 직전 갈아 탈 역들만 가방에 들어있던 전단지에 적었는데 찾아가는 길이 여간 고난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길을 잘 찾는 편이라 네이버지도만 있으면 초행길도 문제없이 잘 다닌다. 그런데 핸드폰이 되질 않으니 길치보다도 더 한 것이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식은땀 나는 일이었다.






20대 중반이었던 나도 그런데 할아버지가 핸드폰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갑자기 번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를 위해 또 다른 길을 묻는 할아버지를 위해 가방에 항상 메모지와 펜 한 자루를 넣어 다니면 어떨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모른척하지 않아서 잔잔하게 뿌듯한 날이었다.

내가 나를 칭찬해 주기!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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