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4 : 이방인이 되어야 보이는 것들

혼자 걷는 여행이 만든 사유의 틈

by 김지영

일요일이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풀타임 자유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눈 뜨고 생각하자고 했지만,
결국 눈 뜨자마자 운동부터 했다.
밖은 흐리고 비가 내렸다.
여기 있는 내내 날씨는 그랬다.
하지만 겨울이라 관광객이 적어 덜 붐비는 건 좋았다.
불편함과 여유는 늘 같은 주머니에 들어 있다.


호텔 헬스장에 갔다.
운동 기구는 효율적인 설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동선도 애매했고, 머신도 투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쇠맛이 났다.
묵직했고, 자극은 오히려 솔직했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운동은 늘 그렇다.
하기 전엔 귀찮고, 하고 나면 아무 말이 없다.
그래서 그냥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해외에 오면 나는 완벽한 이방인이 된다.
정체성도 같이 풀린다.
포르투갈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이름도, 평판도, 주거지도 없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이고,
그들의 관습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주체는 오로지 나다.
섞이려면 여기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인이다.
다만, 한국인으로만 살지는 않는다.




혼자 여행하면 고독생경함이 교차한다.
처음엔 모든 게 새롭다가,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해진다.
같이 여행하면 즐거움은 커지지만, 사유는 줄어든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처럼 혼자일 때,
나는 여행 중에도 계속 생각을 만들어낸다.
고독이 깊어지기 때문일까.


여행이라는 것은 다르게 산다는 계기를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자가 되고 싶어 한다.
여행에는 늘 ‘잠시’라는 감각이 붙어 있다.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잠시는 오래 남는다.
노스탤지어가 된다.
어디에 갔느냐보다,
그 잠시 동안 나는 누구로 살다 왔는지가 더 재미있다.




호텔에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인다.
피부색, 옷차림, 언어는 다르다.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다니며 장난치는 모습은 똑같다.
뛰고, 웃고, 울고, 지루해하고, 떼를 쓴다.
여자아이들은 머리를 묶는다.
어디서나 같은 패턴이다.
인간은 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걸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문화고 문명이다.


여행은 이국적인 풍경과 타국 사람을 보게 하면서
내 정체성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가를 계속 묻게 한다.
정체성은 좋은 것이지만,
때로는 너무 나를 붙잡아 두는 것은 아닐까 싶다.




포르투갈에 며칠 있으면서 생각이 하나 바뀌었다.
해외에 다닐 때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
빠른 경제 성장, 문화의 확장.
GDP로 비교하면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여기서는,
인생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나라의 경제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되면,
국가의 행복은 정치적 언어가 된다.
개인의 하루와는 거리가 있다.
반면 개인의 행복
시간의 리듬, 공간의 밀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만들어진다.




푸드코트에서 음식을 다 먹고 잠깐 앉아 있었는데,
청소하는 분이 와서 자연스럽게 치워줬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알아서 반납한다.
여기서는 역할이 다르다.
누가 옳고 그르다기보다,
문법이 다르다.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 삶의 태도와 문화가 보인다.




출장은 업무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생각이 빠져나올 틈이 생긴다.
그 틈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잠시 다른 곳에서,
다른 속도로 살아본 사람만이
다시 돌아와 자기 자리를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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