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6 : 국경을 두 번 넘는 말들

통역, 기계, 자본 그리고 와인 사이의 하루

by 김지영

독일인 2명, 스페인 1명, 포르투갈 5명, 한국인 7명.
굳이 구분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 회의는 한국과 유럽 사이에 놓인 회의다.




공정 투어와 자료 점검 회의는 저녁 8시까지 이어졌다.
통역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느라 머리에 기름이 돈다.
생각이 과열되면 사람은 표정부터 번들거린다. 내 표정이 딱 그랬다.


비즈니스 문화도 언어도 달랐다.
다른데도 우리는 영어 하나로 소통한다.


한국인은 한국어를 영어로 변환하느라 바쁘고,
유럽인은 한국인이 내뱉은 영어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문장 하나가 국경을 두 번 넘는 순간, 뜻은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문제는 그 옷이 꼭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오해와 곡해가 난무한다.
이걸 줄이는 방법은 하나다.
중간에서 통역하는 사람이 단어를 옮기는 사람에 머물면 안 된다.


번역기는 직무 특수 단어와 맥락을 자주 놓친다.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으로 번역되는데, 읽어보면 어색하고 위험하다.
그럴듯함이 제일 위험하다. 틀린 줄 모르고 넘어가니까.


통역을 맡은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만 옮기지 않는다.
의도와 강조점을 잡아내기 위해 역으로 질문을 해야 한다.
말하는 사람도 "알겠지"를 버리고, 풀어서 말해야 한다.
대화가 길어지는 게 손해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해를 줄이는 게 제일 싸다.




독일에서 온 우리 회사 독일 연구소 PM은 일 욕심이 많다.
한국어가 나올 걸 대비해 스마트폰 실시간 번역을 켜 두었다.
이 순간마저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은 한국인끼리 하는 말을 알고 싶어서 일거다.


참여자의 목소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 태도는 배울 만하다.
회의는 결국 정보 수집이 아니라 생존 감각이다.




이곳 다국적 비즈니스 회의는,
국가 정상 회의 통역처럼 깔끔하게 진행되진 않는다.
비즈니스에서 언어는 생존이고, 전투다.


가끔 정상회담 장면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모두발언이나 형식적인 대화는 통역이 깔끔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비공개회의, 실무가 붙는 자리에서도 통역이 늘 매끈할까?


정상들도 결국 국가를 상대로 '거대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다.
규모와 파급력만 다를 뿐, 오해와 곡해가 사라질 이유는 없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도 오해가 생기는 마당에,
다른 역사와 다른 리듬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이 쉬울 리 없다.




전기차에 적용되는 우리 회사 포르투갈 공장의 제품과 공정 프로세스를 견학했다.
막대한 투자비와 인력이 들어가고 있었다.


자동화 라인을 보고 있으면 멍해진다.
불멍이 아니라 기계멍이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기계는 언제 수명을 다할까.
죽기 전까지 어떻게든 고쳐서 오래 쓸 것이다.
기계는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다.
수요가 있는 한 계속 돌아가야 가치가 생긴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멈추면 가치가 사라지는 것'에 거액을 건다.


자본은 반드시 쉬지 않고 효율적으로 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관계자들은 묻는다.
왜 멈췄냐, 왜 덜 만들었냐, 왜 늦었냐.
생산은 숫자고, 숫자는 변명 없이 맞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막대한 자본으로 재미를 본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들이,
이제 개발 중인 나라들을 향해 탄소 저감에 동참하자고 외친다.


듣는 쪽에서는 종종 이렇게 들릴 때가 있다.
"너희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건 모르겠고, 우리 방식대로 살자."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은 제조업으로 국가 기반 산업을 다지는 중이다.
후발주자지만 저렴한 노동력과 원가로 전 세계 생산기지가 되어 간다.
아니, 중국은 이미 끝나간다.


환경 구호가 어떤 순간에는 아름다운 이상이 아니라,
잘 사는 사람들의 규칙처럼 들리기도 한다.
기계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구를 살리자는 말이, 왜 어떤 현장에서는 압박으로 들릴까.




기계멍을 마치고 늦은 밤 호텔로 복귀했다.
동행인들과 도우루강 앞 레스토랑에서 회포를 풀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먹고 마시자.


포트와인 2병과 클래식한 레드 와인 1병.
5명이서 총 3병을 비웠다.
많다고 말하긴 애매한데, 적다고 말하긴 딱 좋다.


달달한 포트 와인은 국내 마트에서 샀던 스위트 와인과 차원이 달랐다.
왜 포르투갈이 포트와인의 원조인지 알 것 같았다.


바칼라우(대구살), 뽈뽀(문어구이)와 페어링을
시도했지만 포트와인은 음식과 맞지 않았다.
오히려 산도가 있는 클래식 레드가 어울린다.
다음 날 와이너리 해설사도 포트와인은 디저트와 더 맞는다고 했다.
내 입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게 오늘의 작은 위로다.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시는 오늘 밤은 미각의 허영을 용인한다.
이런 내가 좀 웃기기도 하지만, 취기가 올라오는 감각은 확실히 다르다.
소주보다는 위스키 쪽에 가깝다.


소주는, 얼마 전 흑백요리사 2 우승자 최강록이 말한 것처럼
"하루의 고단함을 녹이는 노동주"에 가깝다.
그 표현은 이상하게 정확하다.
소주는 위로가 빠르고, 대신 다음 날이 확실하다.
말 안 해도 한국인은 알 것이다.


포트와인은 과일주처럼 술 같지 않게 달콤해서
나도 모르게 많이 마시게 된다.
'시나브로' 알딸딸 해진다.




휴대폰에는 어느새 해외로밍 캐치콜이 떠 있었지만, 하나하나 대응할 기력이 없었다.
편안한 호텔 침대와 하나가 되어 스르르 잠들었다.


이렇게 포르투갈의 마지막 밤이 지난다.
내일은 호텔 바로 옆 '카템' 와이너리를 가기로 약속해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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