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7 : 마지막 날과 포트와인

시간을 마시고, 다시 돌아가는 길

by 김지영

나는 철새처럼 비행기로 16시간 떨어진 곳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이제 돌아갈 곳으로 가는 날이다.
와이프와 두 아이가 있는 그곳으로.


오후 4시 비행 편.
아침부터 분주하게 호텔 조식을 먹고
동행인들과 카템 와이너리로 향했다.


역사와 전통이 유구한 곳이다.
외관부터가 마치
“이 동네는 내가 시작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포르투갈에 머무는 동안 포트 와인을 즐겼으니
이제 그 술의 제조 방식과 서사를 보러 간다.




오크통에 담긴 와인은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 여기 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시간이 쌓인다는 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훨씬 쉬워졌다.
역시 역사도, 맛도 아는 만큼 재미있다.
모르고 마실 때는 그저 달콤한 술이지만
이야기를 알고 나니 한 모금마다 맥락이 따라왔다.


맛있는 걸 먹을 땐 늘 가족이 생각난다.
이걸 같이 마시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생각이 먼저 든다.
좋은 건 결국 나누고 싶어진다.


포트 와인은 포르투갈의 역사다.
포르투 어디를 가든 관광객들은 포트 와인을 마신다.
이 도시는 와인을 파는 곳이라기보다
자기 시간을 내어주는 곳에 가깝다.


달달한 맛이 강하지만 단순한 단맛은 아니다.
국내에서 마셔본 많은 와인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설탕 같은 단맛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단맛이었다.

역시나 와인에 설탕은 들어가지 않는다.


와인을 즐기는 방식은 위스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엔젤스 셰어, 레그, 오크통, 숙성.
습도와 온도까지.
기다림을 다루는 법은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위스키는 같은 연도에 숙성된 원액을 블렌딩 하지만
포트 와인은 숙성 연도가 다른 와인들을 섞는다.
그래서 병에 적힌 숫자는 단일 연도가 아니라
평균 숙성 연수다.


또 하나 다른 점.
와인은 흉작과 풍작에 따라
그해의 수확량 자체가 달라진다.
자연이 개입하는 여지가 훨씬 크다.
그래서 매년 같은 맛을 기대하지 않는다.


장소는 미각에 개입한다.
이방인의 입맛에는 웬만하면 다 맛있다.
하지만 이건 그런 관대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명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테이스팅을 했다.
그리고 출구의 와인 숍을 지나야 했다.
어느 관광지든 마지막 코스는 비슷하다.
선물과 기념품.


결국 병 두 개를 집었다.
술을 산 게 아니라
이 시간과 이야기를 들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렌터카를 반납했다.
7일 동안 함께한 BYD 대형 SUV 하이브리드.
육중한 몸집에 비해 가속은 경쾌했지만
전동 컴프레서로 추정되는 진동소음은 거슬렸다.
언덕에서의 엔진 응답도 느렸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처음이라
정확한 평가는 어렵지만
평지 주행은 꽤 만족스러웠다.


반납 전 주유소에 들렀다.
우리나라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먼저 카드 결제를 인식시키고
주유가 끝나면 영수증이 출력되는 방식이다.
며칠 전 들른 곳은 아예 선결제 없이 주유한 뒤
편의점에서 주유기 번호를 말하고 결제했다.
기름 넣고 그냥 가버리면 어쩌려고 이런 시스템일까.
서로를 믿는 걸까.




짐을 부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니 출국 심사다.
심사원이 몇 가지를 묻고 사진을 찍은 뒤
여권에 도장을 찍어줄 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수고했어, 또 오겠지?”
그런 말을 듣는 느낌이었다.




환승을 위해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마셨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 772.
유로인가 싶어 물었더니
튀르키예 화폐라고 한다.
아, 여기는 튀르키예구나.
면적의 대부분은 아시아,
유럽은 3%뿐인 나라.
유럽이면서 아시아인 나라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
내 옆에 서 있던 한국인 네 명을
여기서 다시 마주쳤다.
같은 시간에 오고 같은 시간에 돌아가는 인연.
이상하게 반가웠다.


이스탄불 공항 스타벅스 옆에서
GPTW 마크를 발견했다.
Great Place To Work.
우리 회사도 매년 그 리스트에 오른다.
여기서 이런 표식을 만나니
괜히 동지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마지막 여행기 같은 출장기를 마무리한다.
출장이었지만
잠시 나와는 다른 나로 살았던 시간.
꽤 괜찮은 기억으로 남는다.

작가의 이전글포르투갈 6 : 국경을 두 번 넘는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