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포기라는 오해
가족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웠던 때가 있다.
“회사를 또 옮긴다고? 너는 왜 그렇게 자주 옮겨?”
“너에게 맞는 회사는 없어. 많은 사람들이 그냥 참고 다니는 거야.”
“한 회사에서 진득하니 못 버티는 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던 긴 밤.
나는 실험가인가 모험가인가.
‘발견’ 하지 못하면 빠르게 포기했던 나.
과거 탐험가들처럼 신대륙을 ‘발견’ 하기 위해
밤낮으로 ‘항해’하는 마음이었을까.
‘발견’만 하면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빠르게 다른 항로를 개척하려는 마음과 정신을,
‘포기’라는 단어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것일까.
‘포기’는 그저 감정의 상태가 아닐까. 이것은 내 ‘판단’이 아니었을까?
내가 그간 많은 회사를 떠났던 이유는,
‘실적만을 위해 달려가는 구조’와 ‘답답한 조직 문화’가
내가 오래 머물 그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보험 영업 시절, 아침 실적 집계판. 능력과 실적주의.
페인트 회사 현장에서 느낀 산업 구조의 답답함과 저가 공세.
헤드헌팅에서 ‘이직’의 무게감이 ‘숫자로 환산하는’ 순간들.
겉에서 보면
방향을 못 잡아서 많이 옮긴 사람,
집중력 부족,
빠른 포기 성향,
습득은 빠르지만 금방 실증 내는 사람.
하지만 재정의하면
가설을 세우고,
짧게 검증하고,
틀리면 빠르게 철수한 기록일 수 있다.
어디든 못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조건에는 오래 머물지 않는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토종 국내 자동차부품 회사 입사할 때부터
기준을 세웠던 것을 기억한다.
채용 공고 사이트에 떠 있는 회사에 지원한 것은 같지만,
어느 기준으로 지원했느냐가 남았다.
그때부터 ‘발견’에서 ‘설계’로 이동하고 있었던 신호가 아니었을까.
내가 거쳐온 많은 회사 중
한 곳에서 만약 버텼다면?
버티는 법은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맞는 것보다,
‘아닌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아닌 것을 제거하는 것도 ‘축적’의 일부가 아닐까.
축적은 붙잡는 것만이 아니라, 버리는 것의 기록이 아닐까.
결국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맞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오래 축적’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었을까.
현 회사에 10년째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포기’를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축적의 선(線)’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링크드인으로 직접 회사 대표에게
입사 희망 메시지를 보냈던 적극성,
이것은 ‘축적된 판단력’의 발현일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이유는,
방황을 끝내고 싶었던 욕망과
내 결정을 옳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조건을 제거하다 보니,
남은 것은 결국 방향이었다.
빠른 포기는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필터링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표류’하고 있었던
나의 커리어는 이제 정착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