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높이가 바뀌는 순간
10년이 넘도록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일을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참 반가웠을 말이다.
그 말을 듣기 위해 애써왔던 시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왜일까.
나는 여전히 기능인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주를 만들어내는 사람,
숫자를 맞추는 사람.
그 역할은 분명 중요하다.
나도 그 안에서 성장했고, 인정도 받았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나는 언제까지 기능적인 인간으로만 남아 있어야 하는가.
연차가 쌓일수록
‘실무를 잘한다’는 평가는
어쩌면 나를 그 자리에 고정시키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더 이상 다른 peer들과
누가 더 잘하느냐를 비교하는 게임 안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질문이 달라지고 있었을 뿐이다.
처음 영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어떻게”에 집착했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가.
어떻게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가.
이 영역은 개인의 역량에 가까웠다.
노력하면 늘었고,
결과도 비교적 빠르게 나타났다.
보험 영업 시절,
아침마다 실적이 집계되던 게시판을 떠올려 본다.
헤드헌팅을 할 때는
한 사람의 커리어가 숫자로 환산되던 순간들을 보았다.
그 세계에서는
잘하는 법을 빨리 익히는 사람이 살아남았다.
성과는 분명히 남았다.
하지만 방향은 남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계속 “어떻게”만을 갈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산업, 같은 제품, 같은 고객을
오래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이 사업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기술은 왜 지금 필요한가.
“어떻게”는 개인의 문제지만
“무엇”은 조직의 문제였다.
보험과 헤드헌팅에서 두 번 경험했던
개인 실적 중심 구조를 떠올려 보면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성과는 나지만
방향은 남지 않는 구조에서는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여러 회사를 떠났던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향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잘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규 사업 총괄을 제안받았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기능인으로만 남고 싶지 않았다.
회사 미래 먹거리 전략 발표를 맡았을 때도
마음은 비슷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이제는 배운 것을 써먹고 싶었다.
아는 것을 말로만 남기지 않고
구조로 만들고 싶었다.
배움과 써먹음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싶었다.
내 직접적인 영향력이 닿지 않는
다른 부서와 리더십 레벨에도
내 생각이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실행자가 아니라
해석자와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직함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질문은 달라지고 있었다.
숫자보다 구조를 묻고,
실적보다 방향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 한국 공장이 이 사업을 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이 기술을 확장해야 하는가.
왜 지금 투자해야 하는가.
나는 어느새
사장의 질문을 흉내 내고 있었다.
아직 사장이 된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설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질문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마도
오래 한 자리에 남아 있었기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