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을 믿었던 나
대학 시절 내내 학과 생활과 교우관계, 대외활동은 비교적 충실히 했다.
하지만 ‘지식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 교육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큰 흥미를 주지 못했다.
그래서 군 전역 후 2학년 1학기를 휴학했다.
미국 교환학생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건 내키지 않았다.
휴학 기간 6개월 동안
여의도에 있는 한 증권사 본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내가 생각하던 직무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금융권의 분위기와 생태계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만난 과장은
인턴 기간 내내 현실적인 이야기를 반복했다.
학벌과 구조의 벽,
그리고 금융권의 냉정함에 대해.
뼈 때리는 말들이었다.
반박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 찜찜했다.
그럼에도 인턴을 마칠 즈음,
나는 여전히 증권사 입사를 희망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맞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발견’의 감각을 붙잡고 있었다.
4학년 2학기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1~3학년 내내 전공 학점을 비교적 잘 챙긴 덕분에
출발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3년 가까이 준비한 금융권 취업.
하지만 2011년 하반기 취업 시즌의 결과는 실패였다.
증권사 영업직 서류와 면접을 여러 차례 봤지만,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나는 실패를 정당화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미 자본과 인맥을 갖춘 사람들,
구조적으로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는 사람들.
그 기준 어디에도
나는 명확히 들어맞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빠른 포기를 택했다.
하지만 금융권에 대한 미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보험사 영업 인턴으로 들어갔다.
숫자로 관리되는 목표,
개인 실적 중심의 구조,
비교와 압박이 일상이었다.
상품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반드시 누군가에게 팔아야 했다.
숫자를 맞추기 위해
사람의 판단이 소모되는 구조 속에서
나는 빠르게 닳아갔다.
‘돈’으로 하는 장사,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하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때부터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나와 맞는 곳,
나와 맞는 일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나는 빨리 ‘발견’하고 싶었다.
제조업으로,
헤드헌팅으로,
짧게는 4개월, 길어야 2년 반 남짓.
이 업종은 나와 맞는가.
이 산업은 내가 오래 머물 수 있는가.
내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맞는가.
나는 맞는 곳만 찾으면
모든 게 풀릴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맞지 않으면 바로 떠났다.
떠남의 반복 자체가
발견의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취업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었던 것 같다.
여러 회사를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나와 맞는 자리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번에는 생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포지션 공고에 나를 끼워 맞추는 대신,
내가 먼저 기준을 잡자고.
자동차, 조선, 반도체, IT.
네 개 산업 중 하나를 고르기로 했다.
기준은 산업의 규모와 성장성이었다.
회사 선택의 우선순위는
‘비전 > 문화 > 거리 > 연봉’으로 정했다.
그 기준에 따라 선택한 곳이
안산에 있는 한 토종 자동차 부품 1차 사였다.
산업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나에게 맞는 회사와 일을
발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문화가 문제였다.
산업과 비전은 좋은데,
조직의 공기와 방식이 나와 맞지 않았다.
문화가 싫어지니
일 자체가 싫어졌다.
이후 동종업계 외국계 회사로 이직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운영 방식은 닮아 있었다.
이번에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제는 산업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갈 길을 헤매다
헤드헌팅 회사까지 들어갔지만,
개인 실적 압박의 기억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떠돌 여유가 없었다.
이 방황을
어디선가는 끝내야 했다.
결국 다시 ‘먹던 밥’을 먹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는 방식이 달랐다.
채용 공고를 기다리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회사를 먼저 정했다.
그리고 그 회사 사장의 계정을
링크드인에서 찾아
무작정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귀사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채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