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는 발견이 아니라 축적이다 5

기록이라는 인프라

by 김지영

운을 설계하기 위한 장치


운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노트와 메모가 핵심 인프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여러 노트 앱을 찾아보고 써본 끝에
옵시디언을 선택했다.


실무의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AI를 통해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문제 정의가 더 선명해졌고,
가설 검증의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그 결과를
이메일로만 남겨두기에는 아쉬웠다.


이메일은 흩어진다.
검색은 되지만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AI의 문법인 마크다운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는
편집기 성격의 노트 앱이 필요했다.


업무 기획 단계부터 실행,
그리고 피드백과 결과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노트에 담기 시작했다.
모든 건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 되자
이메일을 뒤질 필요가 없어졌다.


나의 모든 프로젝트가
어떤 문제에서 시작되었는지,
왜 그런 판단에 도달했는지,
어떤 가설을 세웠고,
결론은 무엇이었는지,
성과는 어땠는지.


모든 것이
연결된 노트 안에서 한 번에 보이기 시작했다.




기억을 외부화하다


기억에 의존하지 않아서 좋았다.


기억은 금세 흩어진다.
파편적이고, 때로는 왜곡된다.


숫자를 다루고,
협상의 디테일이 중요한 내 업무에서
기억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기록의 구조를 바꿨다.


P.A.R.A 방식으로 분류하고,
제텔카스텐으로 원자화하고,
MOC 노트로 연결했다.


특정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약 10개의 노트로 쪼갰다.
문제 정의, 가설, 의사결정 포인트, 리스크, 결과.


이렇게 해두면
주요 개념과 과실을 빠르게 핵심만 리뷰할 수 있었다.


특히 신규 사업이 아닌
문제 해결형 이슈의 경우
내가 이슈 오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 진가가 드러났다.


겉보기엔 전혀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라도
기존 노트 속에서 유사한 속성을 찾아
은유적으로 연결해 보면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일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튀어나온다.


예를 들어
특정 부품의 수출 관세 결정을 검토할 때
과거 유사 사례에서만 답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물리학의 제1원리처럼
“이 부품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관세는 외형이 아니라
핵심 기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문제를 분해하면
전혀 다른 산업에서 썼던 사고 구조가
갑자기 연결된다.


기록은 기억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재조합하는 장치였다.




온톨로지를 만들다


지식과 경험은
노트에 저장된 YAML frontmatter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나는 그 구조를
온톨로지라고 부르기로 했다.


Ontology는 철학의 존재론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노트법에 적용하면,

특정 도메인 안에서 개념, 속성,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구조화한 지식 구축 모델이다.


쉽게 말하면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내가 수행했던 업무를
원자적으로 나누고,
서로 연결하고,
다시 창발 시키는 과정을
노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는
더 이상 하나의 문서가 아니다.


여러 개의 개념 노트로 쪼개지고,
다른 프로젝트와 교차 연결되며,
전혀 다른 맥락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 순간
나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온톨로지적 인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보를 저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연결해 통찰을 만드는 사람.


외부에 ‘제2의 뇌’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기록은 축적의 인프라다


커리어가 축적이라면,
기록은 축적의 인프라다.


축적 자체는 시간이 만든다.
하지만 기록이 없으면
축적은 흩어지고 증발한다.


경험은 남는 듯하지만,
기억에만 의존하면 결국 사라진다.


기록은
축적에 복리 효과를 부여한다.


어제의 판단이 오늘의 기준이 되고,
지난 프로젝트의 실패가
다음 의사결정의 리스크 필터가 된다.




나는 더 이상
많이 일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대신
연결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커리어는 발견이 아니라 축적이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