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상치 못한 졸업식 전개
첫째 아들,
유치원 졸업식이다.
이가 하나 둘 빠지고,
얼굴선이 조금씩 또렷해지는 걸 보니
정말 졸업이 맞나 보다.
미취학에서 취학으로.
2026년, 아이는 사회적 약속과 규칙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초등학생이다.
자유분방함에서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과정.
나는 그 전환이 썩 유쾌하지 않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지,
조금 일찍 틀에 넣어버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학교로 보내는 것뿐이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품고 졸업식장에 앉았다.
오랜 시간 아이들을 떠나보냈을 원장과 교직원들.
웬만하면 덤덤할 줄 알았다.
그런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담임의 편지 낭독 시간에는
막 여덟 살이 된 아이들이
집단으로 울음이 터졌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행사,
비슷한 연출과 서사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곳은 형식이 아니라
감정이 들끓는 공간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매년 졸업하는 아이들은
전년도 아이들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교사에게 졸업은
연례행사가 아니라
매년 새롭게 겪는 이별일 것이다.
유치원 졸업은
학사 일정표에 찍힌 하나의 날짜가 아니라,
아이를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의식에 가까웠다.
교직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모인 나는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이라는
익숙하고 안전한 문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앉아 보니
그 말은 너무 가벼웠다.
누군가는
‘1년만 더 같이 지내자’고
속으로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아이는 어땠을까.
겉으로는 무덤덤했다.
슬퍼 보이지도, 크게 아쉬워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펑펑 우는 여자 친구들에게
“야, 그만 울어.”라며 다그쳤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조금 아쉽긴 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괜히 안심이 됐다.
아쉽다는 감정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아이를 다독였다.
딱히 위로할 말은 없었다.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자구.”
어쩌면 그 말은
아이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행사 연출도 인상 깊었다.
부모란 무엇인지,
자식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영상.
원장과 담임이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식,
헤어짐을 대하는 순수한 태도.
나는 그 장면들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둘째도 같은 유치원이다.
2년 뒤, 나는 또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때는
조금 덜 서툰 아빠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까.
졸업은
아이의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모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역할 역시
누군가의 교과서 없이
그때그때 배우며 지나온다.
아이와 함께한 모든 과정이 새로웠고,
그 과정의 중간마다
나 역시 조금씩 졸업해 온 느낌이다.
아이가 어른을 키운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비유인 줄 알았다.
지금은 그것이 사실임을 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이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아이의 졸업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 졸업은
어쩌면 ‘부모 졸업’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완전히 졸업하고 싶지 않다.
조금만 더,
이 서툰 아버지로
아이 옆에 머물러 있고 싶다.
이 사랑스러운 녀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