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지만, 취하지는 않기로
오늘 저녁, 여의도 콘래드에서 혁신리더상을 받는다.
여러 회사가 참여하는 GPTW 시상식이다.
GPTW(Great Place To Work)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직 문화를
평가·인증하는 글로벌 기관이며,
매년 ‘일하기 좋은 기업’과 ‘혁신 리더’를 선정해 수상한다.
솔직히 말하면 기쁘다.
무대 위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장면을 떠올리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는 상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에 가깝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렘보다 분석이 먼저였다.
이 상은 어떤 방식으로 선정되는지,
내부 추천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왜 내가 되었는지 구조를 먼저 이해해보고 싶었다.
인사팀이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태도도 그 나름의 맥락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 임원 레벨에서 추천했고, 외부 기관이 수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상이 내 커리어의 전환점은 아닐 것이라는 점을.
turnaround도 아니고 milestone도 아닐 것이다.
여정 중간의 break point에 더 가깝다.
목이 말라 잠시 시원한 물 한 잔을 들이켜는 느낌.
수상의 기쁨은 하루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혁신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로 움직인 적은 없다.
그저 내가 고민해 온 방향을 말해왔을 뿐이다.
글로벌 본사에서 ‘Growth’를 말하던 시점,
HR의 요청으로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그 안에는 내가 현장에서 부딪히며 설계해 온
팀 운영 구조와 운영 철학이 담겨 있었다.
그 발표는 문서로만 남지 않았다.
조직이 만들어졌고, 실제 운영으로 이어졌다.
전략은 실행의 형태를 갖추었다.
아마 회사는 그 지점을 긍정적으로 본 것 같다.
나는 준비되어 있었고, 시점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상은 결과라기보다 중간 점검에 가깝다.
“그래,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정도의 메시지라면 충분하다.
나는 증명 마인드셋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
외부의 인정으로 나를 규정하는 방식은 내 결에 잘 맞지 않는다.
나는 내가 세운 기준 안에서 나를 다져가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시상식'은 '결혼식'과 닮아 있다.
'결혼' 그 자체는 아니다.
나는 오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셈이다.
혁신리더상과 ‘결혼’을 하는 느낌이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이후일 것이다.
결혼식은 하루다.
결혼은 그 이후의 태도다.
이 상이 내 이름 옆에 붙는 순간,
그 단어를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력서의 장식으로만 남겨두는 방식도 썩 내키지 않는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단어가 가벼워지지 않도록 사는 건 결국 내 몫이겠구나.
상을 받는 건 이벤트지만,
그 이후의 하루하루가 관계에 더 가깝다.
이 상을 마침표로 쓰고 싶지는 않다.
이후의 한 줄을 조금 더 조심해서 써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상 받으러 가는 날까지 이렇게 생각이 많으냐고.
그냥 즐기면 되지 왜 굳이 의미를 덧붙이느냐고.
그 시선을 이해한다.
가끔 나를 타자화해 보면 꽤 피곤하게 사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건을 그냥 흘려보내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해석하고, 기록하고, 정렬하는 편에 가깝다.
쓰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
기억은 쉽게 흐려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나중에 흩어진 기억의 편린을 주워 담으며 “그때 왜 그랬지?”라고 묻는 일은 가능하면 줄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쓴다.
쓰면서 나를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본다.
써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감각을 믿는 편이다.
이 기록은 언젠가 아이들이 읽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게 될 것은 상이 아닐 것이다.
그날 아빠가 어떤 태도로 그 상을 다루었는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인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외부 평가를 절대화하지 않았으며,
자기 기준을 유지하려 했다는 흔적.
나는 나를 제법 아끼는 편이다.
그래서 이렇게 사유하고, 이렇게 기록한다.
상은 하루의 장면에 가깝다.
태도는 그 장면 이후에 흐르는 시간에 더 가깝다.
그리고 나는,
이 상과의 관계를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은 채
내 속도대로 이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