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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교달 Dec 07. 2021

업무시간 외 이메일 금지

우리의 워라밸을 위하여

나는 베트남에 있는 국제학교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국제학교는 보통 영국계, 미국계, IB계 국제학교로 나뉜다. 커리큘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중시하고 교사와 학생은 배움의 여정에 파트너쉽으로 뭉친 라이프롱 러너의 관계이다. 


교사의 일상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로 미친 듯 바쁠 때와 바쁠때로 나뉜다. 8월 온라인으로 개학을 한 후 겨울방학을 앞둔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생의 백신 접종도 빨라지고 있어 곧 개학을 할 것 같지만 사회 확진자가 증가해 언제 다시 봉쇄할까 노심초사 하면서 하루를 살고 있다.



여느 날처럼, 아침에 업무 시작을 위해 이메일을 확인하던 중, 총교장이 보낸 구글 도큐먼트가 공유된 전체 이메일을 발견했다. 제목은 ' Timing of emails.' 이메일 발신 시간에 대한 불만이나 제안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에 따라 새로운 시범정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인즉슨, 교사 대표에게 교사들의 불만이 접수되었는데, outside normal working hours ( 근무시간 외) 에 받는 이메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Trial)시험 기간으로 오후 5시 이후 오전 8시 전까지 이메일을 보내지 말거나 제한적으로 보내는 제도를 실시한다는 이메일이었다.


원래 학교의 정책에 업무시간 외 발송된 이메일은 다음 날 오전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이 있어 나는 이메일이 오더라도 그닥 신경쓰지 않았었다. 근무 초기에는 알람을 띄워놓고 받는 즉시 확인을 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까봐 무척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업무시간 외 이메일 발송에 대한 불만은 새로 학교에 근무를 시작하는 교사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도 소위 짬밥이 부족할 때는 알람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쫄깃했으니까.


 기대와는 다르게 이메일 발송 시간 조율 시도는 예상 외로 나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 이메일 알람이 울려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이 신경을 쓰고 살았었나보다. 처음엔 알람이 울리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녁이면 낮에 체크하지 못했던 이메일의 답변을 보내거나, 협업해야 할 사항등에 대한 요청 이메일 등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받는 대상이 바로 읽는다고 기대하지 않고 보내기 때문에 아무때나 이메일을 보내는데 꺼려하지 않았다. 내 할일을 마치면 그만, 이메일을 받는 대상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업무 시간에 읽겠지 생각하면서 아무때나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막상 본인이 업무 외 시간에 동료나 상사에게 이메일을 받는 경우,  받은메일함에 있는 이메일 읽기를 미뤄두는 것이 심적으로 얼마나 부담인지 잘 알고 있다.


나도 동료들에게 더이상 업무외 시간에 이메일을 보내지 않기 시작했다. 급한일이 아닌 이상, 다음 날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면서 보내면 된다. 상습적으로 아무때나 이메일을 보내던 직장 상사도 규정이 정해지니 따르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교사 전체에게 설문 조사를 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규정을 공표한 것이다. 배려 없이 업무 이메일을 보내는 것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 분위기를 조성한 이후 이상적인 워라밸의 실천이 눈에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 이메일 발송 규정 


* 급한 업무가 아닌 경우 직원들은 금요일 5시 이후부터 월요일 8시까지 이메일을 보내지 않아야 한다.

* 꼭 보내야 하는 이메일의 경우 ' URGENT' 타이틀을 달고 이메일을 보낸다.

* 직원은 'URGENT'가 붙은 이메일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라도 확인해야 한다.

* 헤드들의 정규 행정 이메일은 정해진 시간에 보낼 수 있으나 위급한 사항이 아니므로 월요일 오전 8시 전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주말이고 주중이고 상관 없이 밤 12시에도 이메일을 보내거나 메시지를 보내던 상사는 이제 메모를 시작할 것이다. 혹시나 잊어버릴까봐, 생각나면 아무때나 업무를 지시하던 습관을 버리는 것으로 인해 직장 문화가 바뀔 것이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로의 작은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워라밸은 직장 내 사람들의 단합된 의지와 실천이 만든다는 것을 나는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직장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나비의 날개짓과 같은 실천을 먼저 시작해보면 어떨까 슬쩍 제안해 본다. 워라밸은 누구나에게 중요한 행복의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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