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하노이 날씨도 제법 쌀쌀하다. 아침 기온 12도라니, 오토바이를 타는 친구들은 모두 경량 패딩 하나쯤은 다들 걸쳤다. 장갑에 목도리, 털모자는 좀 과한 듯 하지만 이들이 느끼는 기온은 우리와 사뭇 다른 듯하다.
토요일 아침이면 늘 하는 고민, 일찍 일어나서 뛸까, 말까. 주중에는 일찍 일어나도 근무 준비를 해야 하니 가끔 짐에 가서 뛰는 게 다지만, 토요일은 아무 때나 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늦게 마신 커피 덕분에 잠을 쉬이 들지 못하고 뒤척였는데도 일찍 눈이 떠졌다.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늦잠 좀 자고 싶지 않냐고 물었더니, 시간 가는 것이 아까워 출근하는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고 했었다. 내가 딱 그 마음이다.
습관적으로 AQI를 체크하니 이런, 인도만큼 미세먼지 지수가 높다. 보통은 빨간색인데 오늘은 보라색.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뛸까 말까에서 뛰자로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선택이라니. 이런 공기 속에서 뛰는 것이 맞을까? 마스크를 쓰고 뛴다면 괜찮겠지만 KF94 마스크를 하고 뛰면 숨이 턱턱 막히기에 살짝 턱에 걸치고 뛰게 된다. 마스크를 벗고 뛴다면 나는 근육을 얻는 대신 미세 먼지 가득한 폐를 감내해야 한다. 결국 나는 그 선택을 했다. 하노이의 차가운 공기는 일 년 내내 느낄 수 없는 귀한 것. 그리고 또 언제 봉쇄할지 모르는 공원의 조깅을 놓칠 수 없다.
문득 달리면서,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국인 아기 엄마들이 떠올랐다. (나이를 잊고 살다가 맞닥뜨리는 순간이 바로 아기 엄마들이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일 때이다.)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은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눈다. " 아이 무거우실 텐데, 유모차에 태워 다니시지." " 울 아들이 유모차를 엄청 싫어해서 웨건 태웠는데, 요즘은 웨건에서 일어서려고 해서요. 위험해서 안고 다녀요." 마트 비닐봉지와 제법 무거워 보이는 아들을 번쩍 안고 한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유모차에 앉아 있던 딸아이가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아가들만 보면 절로 나오는 소리 " 아이구 예뻐라." 했더니, 엄마가 지친 소리를 한다. " 집에 있기 싫어해서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야 해요."
문득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 아이가 가장 예쁠 나이네요. 엄마는 가장 힘들 때고요."
엘리베이터에서의 그 엄마는 어쩌면 아이를 다 키운 나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시기 인생을 살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아이 엄마는 힘들 줄 알면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선택하였고 그 대가로 예쁜 아이 볼에 비비고 안는 행복을 느끼고 산다면, 나는 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하는 고된 직장맘을 선택하였고 그 대가로 스스로 커가는 독립적인 아이들의 성취를 축하하며 사는 행복을 느끼고 산다.
어제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이렇게 함께 장식하는 크리스마스가 몇 번 남았을까 생각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면 세상으로 나갈 아들과 2년 뒤면 대학을 갈 딸아이를 둔 엄마인 나. 아이들이 언제 클까 고민하던 힘든 그 시절에 좀 더 아이들을 예뻐해 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의 아기 엄마가 나는 부러워졌다.
윤상의 달리기 노래 가사처럼 지겹고 힘겹지만 틀림없이 끝이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들, 끝난 뒤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때 인생의 선택을 돌아보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현재'를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Present라는 단어는 현재라는 말과 선물이라는 두 가지의 뜻을 갖고 있지 않은가. 현재의 선택이 모여 나의 인생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뛰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미세먼지를 마시면서 달린 나의 오늘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춘기 딸과 헬창인 아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