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갖고 싶은 장난감이나 옷을 사달라고 마트를 따라갔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트 입구에는 안경점이 있어 종종 시력 교정을 위해 그곳을 갔다. 안경을 맡긴 후 옷가게를 돌아보며 필요한 게 있으면 구입을 했다. 1층으로 내려가면 온갖 식료품이 우리를 반겼고, 그중 특히 과자류에 눈독을 들였다. 과자를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마트만 가면 간식코너를 빙빙 돌며 무엇을 살 지 고민했다. 우리 가족은 과자를 쌓아놓고 먹는 스타일들은 아니어서, 인당 1-2개쯤만 구입했고 그게 보통의 가정인 줄 알고 자랐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는 과자를 먹고 싶을 때만 딱 하나씩 사곤 한다.
마트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 건 독일 유학 시절이다. 독일에서는 외식비가 꽤 비싼 편이었고,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기숙사에서 요리하기였다. 다행히 독일 마트는 천국이었다. 우리나라 농산물 물가에 비해 훨씬 싸서, 무엇을 집어도 1-2유로 이내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차이가 크다고 느꼈던 건 파프리카 가격이었다. 독일에서는 개당 약 700원 꼴로 먹었던 야채가 한국에 오니 비쌀 땐 2000원까지 가는 걸 보고 기함을 했다.
어쨌든 독일 물가에 만족한 나는 마트를 갈 때마다 만 원의 행복을 찍는 냥 열심히 골라 장을 봤다. 본가에서는 없었던 나만의 부엌이 있으니 저절로 신이 났다. 호박 하나를 사더라도 이걸 사서 무엇을 해먹을지, 그리고 남은 건 어떤 요리를 해먹을지 고민하는 게 꽤나 즐거웠다. 늘 먹는 야채나 품목이 어쩌다 할인행사를 할 때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장을 보거나 요리를 재밌어한다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독일에 살면서 나에 대해서 알게 된 점 중에 하나다.
얼마 전 다녀온 터키 여행에서도 마트를 찾았다. 패키지여행이라 못 갈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몇 번의 자유시간이 주어져 갈 수 있었다. 이 마트의 이름은 Migros로 M의 개수에 따라 그 규모가 달라진다고 들었다. 우리가 간 곳은 M이 하나였던 것으로 보아 제일 작은 규모였을 것이다. 호텔에서 따로 취사를 할 수 없으므로 식료품을 구경하진 않고, 한국에 사갈만한 기념품이 있을지 찾아보았다. 말린 무화과, 피스타치오 등을 사 간다고 들었는데 한국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조금 고민했다. 오히려 이렇게나 많은 초콜릿을 보며 이게 특산품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진 가운데에 있는 ULKER 초콜릿 (초록색) 은 터키 여행 내내 가방 한 켠을 차지했다.
한국에서의 장보기는 1-2주에 한 번 새벽 배송, 그 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편의점이나 마트를 이용한다. 혼자 살면 새벽 배송을 자주 시킬 줄 알았더니 배송비를 무료로 받기 위한 최소금액을 채우기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마트를 이용하는 게 귀찮지만 계획적으로 식단을 짤 수 있는 방법이었다.
주로 사는 품목은 양배추와 10구 계란이다. 소화가 그리 잘 되는 편이 아니라 케일, 요거트, 매일 샐러드 먹어보기 등을 해봤다. 그중에 양배추를 꾸준히 먹는 게 도움이 돼서 양배추 사과즙과 함께 병행해서 먹고 있다. 그리고 작은 냉장고에 그나마 관리가 쉬운 편에 속하는 게 양배추다. 사실 양상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한 통의 크기가 너무 크고 냉장고에서 길게 가지 못하며 관리를 잘 못 하면 자칫 얼어버린다. 반면에 양배추는 단단한 성질이 있어서 그런지 물기만 안 닿으면 꽤 오래가고, 소분해서도 팔기 때문에 늘 1/4 크기를 사 온다.
계란의 경우 가족 단위라면 30구가 들어 있는 한 판을 구매하겠지만 1인 가구에게는 어림도 없다. 일단 30구가 다 들어가기도 힘들고 은근히 매일 먹지 않으면 유통기한을 넘기기 십상이다. 물론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다르다지만 신선식품이라 그런지 하루만 지나도 괜히 찝찝함이 남는다. 그래서 잘 팔지는 않지만 10구 혹은 15구짜리 달걀을 사 온다. 이마저도 배달 몇 번으로 끼니를 때우면 유통기한을 넘을 수 있어 계란찜이든 스크램블 에그든 단백질을 위해서라도 신경 쓰며 먹고 있다.
장보기가 취미인 이유는 마트를 둘러보며 여러 품목을 구경하는 재미이다. 덧붙여 생각해둔 생활비 범위 내에서 어떻게 하면 알차게 사용할지와 그 재료들을 어떻게 다양하게 해먹을지를 생각하는 것. 더 나아가 어떤 메뉴로 좀 더 건강하고 질리지 않는 식사를 나에게 잘 차려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까지가 나의 취미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