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선택을 통해 나를 찾는 여정

'퇴사는 여행'을 읽고

by 루헤 Ruhe

한국이 아닌 곳, 한국어 대신 다른 언어가 들리는 곳, 다른 음식을 먹는 경험을 할 수 있는 해외로의 여행을 나는 참 좋아한다. 하지만 매일 여행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책을 고를 때면 여행 에세이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그 중에서도 '여행 기록'에 초점을 맞춘 책보다는 저자가 그 여행을 통해 무엇을 보았고 어떤 점을 느꼈으며 그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생각이나 관점을 무엇인지 녹아 있는 책을 좋아한다.

올해 처음으로 완독한 책인 '퇴사는 여행'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저자는 다른 퇴사자들과 다름 없이 퇴사 후 많은 고민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고민속에 다녀왔던 여행 기록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앞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등을 담아내어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세세한 내용들은 차치하고, 책을 읽으면서 그에게 공감이 되었던 가장 큰 줄기는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일을 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짧은 취업 준비를 거쳐 작은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의 삶에 의문을 던진 적이 없었고, 그 곳을 떠날 때가 되서야 비로소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사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어렴풋이 느낀 한 가지 질문은 어떤 업무를 맡는지 정확히 모르는 채로 열심히 준비해서 대기업에 들어간들 오래 버틸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일찌감치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인 '화장품 기획' 업무만을 고집하며 구직을 했다. 아주 운이 좋게도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지만 내가 원하던 일만 할 수는 없었다. 당시 회사는 화장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브랜드도 가지고 있었고, 나의 주 업무는 새 생활용품 브랜드 런칭에 대한 시장조사였다. 물론 팀장님을 도와 화장품 공장도 가보고, 브랜드 서포터즈 업무를 맡아하고, 공장에서 나온 제형을 체크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화장품과 가깝지 않음에 매일매일 즐겁지 않아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수습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회사에 오래 있을 이유가 있을까? 답은 NO였다. 내가 따르던 팀장님의 이직 소식과 곧 회사 내 조직이 개편이 되어 각각의 기획자들이 맡아야 하는 책임감이 꽤 늘어나는 것 (경력자이면 좋은 소식일 수도 있었겠지만 사수가 없는 신입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등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그 때 당시의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영어 강사의 길을 걸었지만, 채 2년도 되지 않아 약한 우울증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고, 열심히 일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또 일을 하다 가끔 야근을 하기도 하는 쳇바퀴같은 일상을 다들 살아가고 있을텐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특히 학원 강사의 경우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도도 높은데, 나는 왜 아직도 지겹고 끝이 안 보일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걸까?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고, 또 없다 한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수의 생각에 맞춰서 어떻게 살겠냐는 마음을 가지니 한결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 없다는 작가의 말이 참 위로가 됐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 특히 '보편적인 삶' 에 대한 짐을 내려놓고, 현재 나의 욕구에 집중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방탕하게 놀면서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 성격도 못되고) 단지 일과 나를 분리하는 삶을 살기 어려운 사람으로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재밌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살았다는 뜻이다. 결국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6개월 가량은 최소한의 생활비 목적으로 2-3명의 아이들만 가르치며 20살 이후로 처음으로 일을 길게 쉬어보는 시기를 가졌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를 거의 같이 살다시피하며 봐주기도 하고, 5살 정도의 어린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보기도 하고, 초등학생에게 독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년쯤에는 다시 회사를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사회초년생으로서 늦지 않은 나이에 (아직도 나이 생각을 못 버렸다)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영어 선생님이 필리핀 영어캠프에 숙제를 봐주는 선생님을 구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아, 이거 내가 가야겠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버렸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다들 꽤나 당황하고 의아해했다. 갑자기 필리핀이라니. 부모님은 필리핀이 치안이 괜찮은지 물었고, 언니는 취업 준비는 어쩌고 거길 가냐고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고 영어회화를 늘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면서 내가 변화를 정말 원한다면 새로운 도전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부터 나는 '새로운 경험' 에 약간씩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직무, 어느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아닌 '

나' 라는 사람의 발전에 집중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것을 계속하다보면 어느 지점에는 하나의 점으로 모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약 4개월간의 필리핀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 생활비를 벌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 결과 현재 1년간의 워홀 생활을 끝내고 디지털 마케팅을 배우는 학교에 들어가 1년 반짜리 비자로 연장한 상태다. (호주에서의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천천히 써 볼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다사다난하게 지내기도 했고, 여러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정말 치열한 고민과 생각 끝에 내린 결정들이라 하나하나 후회하는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후회라는 감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설령 그 당시 더 나은 결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왕 내가 내린 결정이 더 좋게 결과를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미 호주를 온 뒤에 첫 직장에서 사수였던 팀장님께서 이직한 회사에 신입 모집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 제안을 통해 원하던 기획 업무를 다시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호주에 있고, 아무리 내가 원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기 때문에 정중히 말씀드리고 호주 생활이 끝나고 한국에 들어가면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팀장님은 어디든 자신은 일을 하고 있을테니 편하게 연락하고 하셨다. 그 때 느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지만,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딱 한 번만 주지는 않는다는 것. (아닌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오히려 이 연락 이후에 나는 호주에서의 생활을 조금 더 열정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내가 입사할 수 있었던 기회를 차버리고 여기 있는 것이니, '그 때 차라리 한국에서 회사나 다닐 걸' 하는 후회없이 시간을 보내자고.


그렇게 오게 된 호주의 한 스킨 클리닉에서 리셉션을 1년 했고, 현재는 인스타그램 및 온라인몰 관련 일로 업무를 바꾸게 되었다. 올해 목표는 학교에서 배우는 디지털 마케팅을 잘 활용해서 마케팅 직무가 나에게 맞는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무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지를 찾아나갈 예정이다. 호주에 도착했을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예상 못했듯이, 내년이 되면 또 어떤 내가 되어있을지 궁금하면서도 기대가 된다. 올해를 열심히 나답게 살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고 믿는다. 하루하루 어떻게 빠르게 변화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건 없기에 나다운게 무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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