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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14. 2023

누가, 무엇이 '괴물'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영화 '괴물' (스포주의)

'이 영화 볼까?' 하고 묻는다면 '예스' 추천이다.  


일본 영화는 그 특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감수성이 있다. 그래서 취향을 많이 타지 않을까. 영화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16번째 장편 영화로 각본은 사카모토 유지가 집필했다. 호평을 받은 음악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맡았다. 영화 내내 잔잔히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이 영화관을 떠나지 않고 가만히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괴물은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수장작이란 것도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알게 됐다. 영화를 보기 전엔 어떠한 사전 지식도 어떠한 기대감도 가지지 않은 채 극장에 들어간 건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객석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내심 놀랐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는 이해가 됐다. 아마도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시대적인 과제들이 지금의 우리 현실들과 많이 맞닿아 있어서 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향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앉아 있노라니 처음 1시간은 어쩐지 불편함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그다음 나머지 한 시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올라오면서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끊임없이 생각하게 됐다. 인간성 상실이란 이제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지금의 내 문제라는 지점이 더욱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내 생각대로 보는 것은 오해를 부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오해를 부른다.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생각해 보고 살펴볼수록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1. 우린 우리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소통이란 뭘까

영화는 싱글맘 사오리가 아들 미나토와 함께 상가빌딩의 화재를 집에서 목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어느 날 사오리는 아들에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갑자기 머리카락을 자르고, 운동화가 한쪽밖에 없고 물통에는 흙이 들어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들을 터널 아래에서 찾는데 함께 집으로 가던 도중 아들 미나토는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과 행동들, 미나토의 이상함에도 사오리는 담담하게 상황을 잘 대처하는 듯 보인다. 자신의 뇌는 돼지 뇌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누가 그렇게 얘기했냐고 물어보니 미나토는 호리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말한다. 시오리는 미나토의 이상 행동이 교사인 호리의 학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학교에 찾아가 문제를 제기하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는 초반 시오리의 입장에서 그녀의 시선을 통해서 상황들을 살핀다. 아들은 이상 행동을 하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고, 그런 이상 행동이 학급 담임 때문이라는 걸 알고 학교를 찾아갔으나 도무지 학교에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안에 떠는 아들과 아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지 않는 인간성이 상실된 것 같은 학교의 상황. 교장부터 다른 선생님들까지 기계적이고 냉담하게 아들의 상황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시오리는 서서히 감정이 폭발한다. 

이런 그녀의 감정의 흐름에 이입을 하다가도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시오리의 시점으로 본 그 상황과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모든 것을 내 시선, 내 생각으로 보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오리는 미나토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어떤 생각이 있고, 어떤 마음인지 아들의 상태에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덤덤한 듯 대수롭지 않은 듯 토닥이고 넘어가는 듯 보였다. 실제 미나토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인지가 되지 않는 듯한 모습. 시오리가 보고 있고 , 시오리가 보고 싶고, 시오리가 그리는 미나토만 있는 느낌. 그러니 학교에서의 상황도 모든 것이 단정되어 있고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이나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2. 선의가 꼭 선의로 돌아오는 것만은 아니다. 실체 없는 소문도 있다

시오리의 시점에서 아이를 학대하고 괴롭히는데 반성을 전혀 하지 않는 굉장히 불성실하고 불안해 보였던 호리 선생님. 호리 시점의 두 번째 스토리가 시작되자 저런 모습의 선생님이 아이들을 때렸다고? 싶었다. 이제 막 학교에 부임한 호리 선생님은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내고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다. 버릇없는 학생들이 자신이 걸스바를 다닌다고 모함을 하고 여자친구를 술집여자라고 이야기하는 등 수모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겪지만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여자친구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며 그를 멀리하려 하지만 호리는 그마저도 감싸 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나토가 갑자기 학급 기물을 던지고 파손하며 소동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말렸다. 게다가 미나토가 학급의 요리라는 학생에게 학교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 같은 정황들을 발견하게 된다. 요리가 걱정되어 찾아간 요리의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지만 요리 아버지가 요리의 뇌는 돼지 뇌라 고쳐 써야 한다는 막말을 퍼붓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린다. 

호리 선생은 정말로 아이들을 때린 적도 막말을 한 적도 없지만 시오리가 미나토의 이상 행동이 자신 때문이라며 책망하고 학교 교장과 동료교사들은 그에게 일이 커질 수 있으니 희생을 하라며 강요한다. 그렇게 어떠한 해명도 하지 못한 채 교사를 퇴직하고 그 이야기가 기사가 나가면서 여자친구마저도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듯 가버린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됐을까. 치밀어 오르는 감정으로 대화라도 해야 되겠다며 학교를 찾아갔지만 자신을 보고 기겁하듯 도망치는 미나토를 계단에서 밀었다는 누명만 다시 쓸 뿐이었다. 

나중에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에서 풀어낸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들은 호리 선생님의 선의를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방패로 사용했을 뿐이다. 주변의 비난, 강요, 근거 없는 소문들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망가져 갈 수 있는지. 아무런 근거 없이 악플을 달고 입방아 찧으며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한쪽 면만 듣고 판단하고 생각하고 단정 지어버리는 우리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물론 교권의 엄청난 추락과 힘듦도 느꼈다. 최근 있었던 서이초 사건 등 교사들의 어려움을 직면한 우리나라 문제와도 너무 결이 비슷해서 더 공감을 하면서 봤는지도 모르겠다.  


3. 원래 자기 마음을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미나토는 요리에게 관심이 가지만 요리가 동급생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같이 엮이고 싶어 하진 않는다. 요리에게 아이들이 있을 때는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요리는 알겠다고 대답한다. 요리는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밝은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 남자아이들을 오히려 자극한다. 요리는 평소 여자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여자아이들과 교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영화에서는 '남자다운'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요리의 모습은 그런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다운' 남자아이의 모습은 아니다. 미나토는 요리와 함께 있다가 자신도 그렇게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말을 들을까 두렵다. 

미나토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아닌 척 하지만 사실은 요리와 하는 모든 것들이 즐겁다. 신발을 도둑맞은 요리에게 자신의 신발 한 짝을 빌려주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둘만의 아지트를 다니며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미나토는 어쩐지 요리와 있을 때 온전히 자신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둘은 각자 아빠와 엄마에게도 하지 못하는 생각들 마음들을 나누며 교감한다. 어느 날 요리가 아버지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신을 할머니 댁으로 보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미나토는 그 말을 듣고 요리가 떠나는 것이 싫다며 매달린다. 요리는 미나토를 안아주는데 둘은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당황한 미나토는 요리를 밀치고 달아난다. 미나토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요리와 처음 하는 모든 것들이 미나토의 인생에는 없던 것들이라 그 모습이 시오리에게는 아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비쳤을 터. 미나토는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요리를 돕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난동을 부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요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상대가 같은 남자라는 사실에 미나토는 아마 막막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요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미나토는 요리의 말처럼 자신의 뇌도 돼지 뇌가 되었다고 자책하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엄마 시오리에게 말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호리 선생님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교장에게 자신이 거짓말을 했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을 털어놓는다. 내가 괴물이라 행복하게 살 수 없다면서. 

교장은 '누군가 가질 수 없는 것은 행복이라 부르지 않는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이 행복이야.'며 그런 미나토의 마음을 받아준다. 둘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듯 호른과 트럼펫을 우렁차게 분다. 교장은 미나토의 고백으로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진상을 규명하는 것을 포기하고 호리 선생을 희생시키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 그 모든 것들은 처음이라 서투르고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직면하기 어려웠던 두려움 자신을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켰다는 죄책감까지. 여기선 어떤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까.


4.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다

미나토와 요리는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넌 고쳐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까. 다시 태어나야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런 상황들은 좋아진다고 생각했을까.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는 요리의 상황, 다른 여자와 있다가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아빠에 대한 배신감을 마음 한편에 묻어둔 미나토, 버려졌다는 슬픔, 동성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느낀 당황스러움, 편부모 가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 일부러 이런 상황들이 만들어졌다거나 누군가 꼭 악의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고도 볼 수 없다. 다만 그저 내 위주로 생각하고 내가 맞다고 믿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뿐. 해를 입히려고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는 상황이 굉장히 아이러니하지만 삶이란 건 그렇다.

폭풍우가 심하게 몰아치던 날 곧 세계가 멸망할 것 같다고 생각한 미나토는 요리의 집을 찾아가 욕실속에 잠겨있던 요리를 세상 밖으로 꺼낸다. 둘은 자신들의 아지트로 달려간다. 그렇게 폭풍우가 지나간 후 날이 개고 아지트에서 나온 둘은 내리쬐는 햇살을 맞이한다.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지만 둘은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웃는다. 안쓰럽고 먹먹했지만 그 폭풍우 같던 시간들을 지나고 어려움을 겪으며 아이들은 성장했다. 


지금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은 다만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이니 다른 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 그러므로 누군가 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고 오해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말하고 그래야 한다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다양성을 해치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 지금의 힘든 상황, 못 마땅한 상황들은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는 것. 인간성 상실과 그로 인한 공동체 붕괴. 아동학대, 성소수자 문제, 학교와 교육 시스템의 붕괴 등 사회문제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볼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볼 것. 함께 밝은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소통이 없는 단절은 누구도 무엇도 괴물처럼 보이게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누구도 괴물이 아니다.


2023년 최고의 영화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 '괴물'

 

마지막으로 평론가들의 평론을 함께 공유한다. 


* 동정심으로 관객의 마음에 부드럽게 충격을 주는 괴물은, 관점 변화를 통해 끝까지 놀라움을 안기는 걸작이다. (로튼 토마토 평론가)

* 베테랑의 쇄신과 역동을 목도하는 감흥이 엔딩만큼 눈부시다 (김소미 씨네 21)

* 소수자 문제를 드러내는 영리한 플롯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따뜻한 시선 (임수연 씨네 21)

* 인간의 한 게를 드러내는 빼어난 구성. 감독의 새로운 걸작 (배동미 씨네 21)

* 오해를 경유해서 이해에 이르는 경험 끝에 관객은 그 햇살 아래서 증인이 된다. (이동진 왓챠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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