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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07. 2023

중고거래 사기 당한 썰 (2)

02.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인터넛에 발달하고 예전엔 알 수 없었던 정보, 자료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발품 팔며 알아보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인터넷상에서 몇 가지 검색만으로 중고 거래 사기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절차로 신고하고 고소를 할 수 있는지 아주 상세히 나와있었다.

나라면 귀찮아서라도 하지 못할 텐데 세세한 기록과 그 과정을 상세히 글로 적어두신 분들이 많았다. 이런 분들은 아마 복 받을 거다. 직접 알아보고 하려면 쉬이 포기할 사람들이 글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서 시도라도 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니 똥 밟았다 생각하고 지나갈까?'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돈 돌려받는 것은 포기하더라도 죗값은 스스로가 느끼도록 해야 되겠다 싶어서 진행해 보기로 결심했다. 

블로그 글을 작성한 글쓴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하지만 혹시라도 비슷한 일을 당한 분들이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적고 있었다. 


나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치밀한 성격이 되지는 못 하지만 나와 있는 대로 착실하게 따라 하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프린트하고 정리했다. 문자 내용, 통화 내역, 중고거래 당시 화면, 계좌 이체 내역 등등. 그리곤 근처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라곤 가본 적이 없어서 거길 들어가면서도 괜스레 생경한 마음이 들었다. 


경찰서를 방문하기 전에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사기에 대한 내용들을 등록하는 절차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가접수를 해두고 가야 경찰서에 가서는 시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어비 수사대에 가서 사건을 접수했다. 접수를 하면서 경찰이 여러 정황을 물어보면서 체크를 했는데 이런 사기범은 잡아도 금액을 돌려받기 어려울 거란 설명을 했다. 성심성의껏 답변은 해주셨지만 친절히 포기시키는 느낌이었다. 이럴 땐 경찰이 소액이더라도 그래도 우선 꿋꿋하게 신고 접수를 마쳤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당시는 놀라움이 컸다. 나름 따진다고 따졌는데 이렇게 당하는구나 싶어서 허무했다. 생돈을 날렸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참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근데 시간이 좀 지나니 내가 속상해한다고 돈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내 정신건강과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돈을 돌려받겠다는 생각을 탁 접었다.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하니 오히려 담담하고 깔끔한 마음이 됐다. 좀 더 이성적으로 상황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생각보다 피해자가 많아서 단톡방이 개설되었는데 피해자들은 다양한 금액으로 중고거래 사기를 당했지만 당한 수법은 비슷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형사소송까지 제기할 계획이었다. 


고소를 진행하려고 보면 볼수록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사기꾼은 모든 얼굴을 공개하고 (심지어 여자친구 얼굴까지)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고 동선까지 당당히 드러내놓고 다녔다. 물론 돈 때문에 그렇게 한 거겠지만 이 친구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어떤 게 제일 중요한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내 사고 회로로는 이런 행동은 상상이 잘 안 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궁금증은 궁금증이고 형사소송은 착실히 진행했다. 난생처음 배상명령 신청이란 것도 해봤다. 이 역시 다소 복잡해서 블로거들의 상세한 설명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다. 배상명령은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어서 피의자가 선고가 나오고도 나는 줄 돈이 없다고 한다면 강제로 받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도 굉장히 더디게 지나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가 되는데 배상명령은 더욱이 유죄판결이 나와야 가능하다. 


돈 받을 생각을 접어두었기에 더 이상 조급한 마음은 없었고 그냥 접수를 해두고 잊어버렸다. 그 사이에 단톡방에서는 여러 참고할 만한 소식들을 같은 피해자들이 전해주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전주지방법원에서 나에게 우편 하나가 날아왔다. 내가 신고한 사람의 재판이 1심은 어떻게 진행됐다 하는 내용이었다. 그 후로 2심 판결도 날아왔고 배상명령에 대한 내용도 날아왔다. 


범죄열람표에 적힌 피해자의 수만 26명. 초범도 아니었다. 그렇게 느긋하고 대범하다 싶은 건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었나.

배상신청을 낸 신청자는 10명이었는데 그중 2명은 신청이 각하됐다. 그중에 한 명이 나였다. 어떤 서류를 누락시켰는지 어느 부분이 부족했는지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았는데 각하됐다는 얘기만 나와 있었다. 이런 부분은 참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 때문에 각하이 됐는지 이유를 알아야 챙겨볼 수 있을 텐데.... 나중에 보니 나는 경찰 진술조서가 누락되어서 그랬다. 친절히 포기시키고 싶어 했었던 경찰관이 일처리까지 그렇게 했던 거다. 


사기 범행을 한 친구는 95년생인데 이미 인천구치소에서 사기로 형을 살다가 가석방된 상태였다. 가석방된 지 4개월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 실형을 선고받지 않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는 재판부의 판단. 피해자는 26명에 피해액은 1,167만 원에 달하는데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돈은 도박으로 탕진했다고 한다. 


징역 1년 4개월이 구형됐다.  


사기꾼은 실형 소식을 끝으로 시간이 한참 지났다.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도 그냥 받는 스타일이라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제가 000 엄마 되는 사람인데요."

"네? 누구요?"


처음에는 명확히 인지를 못 했다. 잠시 멈칫하고 생각해 보니 그 사기꾼 이름이었다.


"아~ 네 무슨 일이시죠?"


사기꾼의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얘기를  시작하셨다.

"걔가 원래 어릴 때는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지난번에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반성도 하고 해서 내가 합의금을 다 마련해 줬었거든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고 집안에서 교육을 시킬 때도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는데... 제가 교회를 다니거든요. 아유, 아무튼 정말 죄송합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피해자들에게 전부 연락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다 큰 아들이지만 실형은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으셔서 피해자들과 합의를 보기 위해서였다. 피해금액을 변상해 줄 테니 합의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검찰에 기소당하는 것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건 알겠는데 당사자가 직접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합의금 마련부터 피해자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합의서를 받는 것까지 전부 부모님이 대신해준다니. 몇 차례 더 통화가 오갔다.  


그래도 그동안 서류 작성하고 경찰서 오가고 연락하고 하는 내 시간들을 생각하면 피해금액에서 얼마간 더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피해액에 5만 원 정도 더 받고 합의를 하는 것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도 실랑이가 있긴 했다. 피해자가 워낙 많다 보니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그 금액도 맞춰주기 어려워했다. 내가 실제로 보지 않았으니까 그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어머니가 대신 전화를 하고 있는 그 상황 자체가 딱하긴 했다.  



말 그대로 '스불재'였구나 하는 자기반성을 했다. 사기는 요행을 바라고 욕심을 내는 사람이 당할 가능성이 높다더니 욕심을 내긴 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그것대로 나는 나대로 요행을 바라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되겠다. 이 따끔한 불주사 한 방으로 다른 더 큰 사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 셈이라 고맙다. 

법 격언 중에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리 큰 금액이 아니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 이럴 수도 있었지만 내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지 싶어서 시도해 본 것은 경험으로 남았다.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돈도 받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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