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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05. 2023

굿바이 밀가루, 글루텐 프리 일지

01. 시작 : 결심이라고 하지 말자. 참게 되니까

3개월 간 밀가루 끊기를 해본 적이 있다. 건강을 위해서였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하는 것을 확연히 느끼게 됐을 때는 '소화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인지했을 때다.  무거운 음식들을 먹으면 대번 티가 났다. 나에게 무거운 음식은 각종 고칼로리의 음식들인데 그중에서도 밀가루가 주된 재료인 음식들, 튀김처럼 기름진 음식이다. 밀가루와 기름의 궁합은 또 찰떡이지 않나. 둘이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평소 식습관이 과식하는 편이 아닌데도 특정 음식들이 소화가 어렵다거나 아니면 조금만 양을 늘려도 명치나 배에서 딱 정체되어 잘 내려가지 않는 답답함을 느낀다. 두통도 있다. 소화가 잘 되는 체질이 있고 안 되는 체질이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선천적으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체질이었다.

콩이나 두부, 버섯, 김이 소화가 힘든 음식들이란 걸 최근에 알게 됐다. 아마 공감이 가지 않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의외로 저런 음식들이 소화가 잘 안 된다. 소화력이 많이 떨어지면 일상적으로 문제없이 먹던 음식들도 몸에서 받아주질 않는 슬픔을 느끼게 된다. 음식이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면 여러 어려움이 동반되게 된다.


간략히 얘기해 보자면 소화가 잘 안 되면 음식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을 몸에서 충분히 흡수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기력(기운)이 떨어지게 되고 기운이 떨어지면 소화력은 더 안 좋아진다. 그러면 또 소화가 안 되고 몸에서 사용할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니 기운이 더 떨어진다. 악순화의 고리다.

또 언젠가부터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나더니 면역력이 떨어지면 빨갛게 올라와서 가려웠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들어가는데 이 증상이 좀 잦아졌다. 한 번 두드러기 증상이 생기니 이제 가끔 잊어버릴 만하면 찾아오는 손님이 됐다. 병원을 가봐도 알레르기 증상이니 면역력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 이외에는 특별한 얘기를 듣진 못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두드러기 증상, 면역력 약화도 영양분 공급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생겼겠거니 추측해 봤다. 시기적으로 딱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소화력이 급격히 떨어지던 시기와 두드러기가 심해진 시기가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음식을 신경 써서 관리해야 되겠다 싶었다. 가장 안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밀가루'가 떠올랐다. 밀은 잘못이 없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글루텐'은 나와 함께 하기 어려운 친구다. 글루텐은 소화장애를 유발하고 두드러기, 복통, 설사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된다.  

밀가루를 끊어봐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밀가루 끊기를 시작했다. 

밀가루를 끊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는 게 어려웠다. 아니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즐겨 먹었던 것들에는 거의 다 밀가루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걸 끊자고 하니 거의 먹을 수 있는 게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빵도 먹을 수 없고(쌀로 만든 빵이 있긴 하지만 또 다르다.) 국수 종류도 어렵고 피자, 치킨, 각종 전 그리고 가공식품에는 어김없이 대부분 밀가루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 끊어야 한다. 이렇게 결심하고 시작했더니 유혹도 많고 참는 것도 어렵고 스트레스가 있었다. 건강을 얻을지언정... 삶의 즐거움을 잃는 것 같은 기분? 습관이 무섭다고 평소 먹던 것들을 먹지 않자니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애가 쓰이고 저항감이 뒤따랐다. 

밀가루가 몸에서 분해되면 엑소루핀이라는 것이 분비되는데 중독증상을 일으키는 성분이다. 몇 십 년을 먹은 세월이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3개월 간은 어찌어찌 잘 지켜나갔다. 그러던 중 약속이 있어서 외식할 일이 있었는데 (이런 순간들이 문제다.) 그때 약간 타협하는 마음이 났다. 한 번 정도 먹는 건 괜찮지 않을까? 

메뉴가 칼국수였는데 평소에 워낙 좋아하던 맛집이라 당시는 도저히 먹지 않기가 어려운 심경이었다. 주문한 칼국수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내 앞에 나왔고 한 젓가락을 집어 집 안에 넣는 순간.

나는 '온몸 곳곳에 쫙 붙는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그렇게 강렬하게 느껴봤다.

말 그대로 몸에서 쫙쫙 밀가루를 흡수했다. 정말 강력히 원하는 마음이 났다. 쾌한 마음도 강하게 확 느껴졌다. 팽팽히 잡고 있던 끈이 끊어지듯이 신나게 칼국수를 싹 비우고 나니 

그때부터는 밀가루 끊기를 시작한 것을 정말 잊어버리고, 너무나 빠른 속도로 원래 식습관으로 돌아왔다. 


'결심하고 참는 방법으로는 언젠가 터지게 되는구나'하는 강렬한 교훈을 얻고서 

나의 밀가루 끊기 1차 시도는 3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그래도 한 번 밀가루 끊기를 시도해 봤던 경험을 통해 글루텐과 멀어지면 속이 편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됐다. 쉽사리 마음먹지 못해서 그렇지 밀가루를 끊고 식습관을 바로 잡아봐야지 하는 생각은 내내 품고 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드디어 마음을 먹었달까.

'글루텐 프리'를 다시금 시작해보려 한다. 1차 시도를 교훈 삼아 이번엔 결심이라고 하지 않고 가볍게 시작해 보기로 했다. 참는 게 아니라 안 먹기로 했으니 안 먹어보는 것으로. 우선 작심삼일은 무사히 넘겼다.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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