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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Oct 24. 2023

어떤 집안일을 싫어하세요?

저는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대관절 갑자기 엄마 팔이 부러졌다. 깁스를 한 상태로 나타난 엄마는 집안일을 할 수 없으니 나와 남동생이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밥을 어떻게 해 먹었는지 집안 청소는 어떻게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빨래나 설거지만큼은 기억난다. 특히 빨래는 베란다에 앉아서 조물 조물 애벌로 손빨래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다 돌아간 빨래를 너는 일까지 하나하나 배워가며 익혔다. 사실 그전까지는 빨래를 본격적으로 해본 일이 없었다. 세탁기를 돌리더라도 적당한 애벌빨래를 해주어야 때가 더 잘 빠진다는 걸 이때 배웠다. 그땐 그게 참 좋은 교육 과정이었다고 생각 못 했지만 성인이 된 뒤 가끔 돌아보면 세탁기 사용법이며, 손빨래를 어떻게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던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내 손으로 양말 한 번 빨아본 적 없고, 속옷 한 번 빨아본 적 없는 수준은 아니니 말이다. 세상엔 생각보다 스스로 양말 한 번 빨아본 적 없고, 세탁기 한 번 돌려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의 일을 도와 집안 살림을 꾸려갔던 기억은 나름 뿌듯함으로 남아있어서 집안일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던 것이 나에겐 감사한 일이다. 평소 엄마가 이렇게 많은 부분을 챙겨주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성인이 된 뒤 혼자 살 방을 구하면서 (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해야 맞다.) 독립해서 살림을 해볼 기회가 왔다. 방을 구할 때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시장이 있는 곳을 찾았다. 요리를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재래시장이 가까이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듣던 당시 부동산 중개업자는 '어차피 밥은 안 해 먹게 되는데, 시장이 근처에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지만 당시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가 있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나는 그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이 백번 맞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장을 보더라도 재래시장이 아닌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트에서도 극히 제한된 품목만이 계산대에 오를 수 있었다. 우유(우유를 물처럼 마셨다.), 바나나(과일인데 맛있고, 가격이 저렴하다.), 스파게티 면과 소스 딱 이 4가지만 구매했다. 거기에 아주 가끔 번외 편으로 피자치즈, 소시지 같은 것이 좀 추가될 뿐이었다. 자취생의 필수품이라는 라면도 스파게티에 밀렸다. 내 기준에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것이 라면을 끓이는 것보다 간단했고 맛도 훨씬 좋았다.


어쨌든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소소하든 날을 잡든 그날의 집안일이 있었다. 방 안에 서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면 그 반경 안에서 모든 것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는 물건을 많이 늘릴 수도 없었다. 세간살이는 단출하고 간단한데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주방용품이라고 여러 가지를 갖추고 있을 리 만무했다. 프라이팬과 냄비 그리고 몇 개의 그릇들 수저 컵 등 필수적인 것들만 갖췄다. 자취를 하면서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매번 발견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이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발견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집안일 중에서도 '설거지'를 유독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요리는 못 하더라도 나온 설거지는 될 수 있으면 하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설거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다. 혼자 살면서 하게 된 수많은 집안일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쓸고 닦고 심지어 화장실 변기 청소는 큰 저항 감 없이 했다. 근데 설거지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그릇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게 '가장 하기 싫은 집안일과 가장 좋아하는 집안일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수많은 집안일 중에 단연 '설거지'를 1등으로 꼽을 수 있었다. 지금은 숱한 연습?을 통해서 싫은 감정조차 들지 않게 되었지만 그 당시 설거지는 내 기준 가장 허드렛일 중 허드렛일 같이 느껴졌다. 설거지는 뒷정리를 해야 되는 일이고, 그 뒷정리가 싫었던 것 같다. 그냥 싫구나 싫구나 하면서 미뤘던 설거지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습관의 패턴을 보여준다. 뒷심이 부족한 내 성향이 여기서도 나왔던 걸까. 내 호불호에도, 내 습관에도 모든 반응엔 이유가 있는 법. 설거지에 대단한 철학까진 아니더라도 하다 보니 기름기 있는 그릇과 기름 없는 그릇을 분리하여 설거지를 하고 그릇의 크기나 집기류의 용처를 생각해서 설거지 순서를 정한다. 어떻게 하면 물을 조금 쓰면서 설거지를 할 수 있나 연구하고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집안일 하나하나에 연구할 것들도 많고 한 사람의 삶과 습관이 녹아있다는 게 새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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