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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Oct 10. 2023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내 속도대로 달리련다

대학교 4학년 학기 중이었다. 당시 내 나이 23살.

대학 동기와 즉석 떡볶이를 먹으며 앞으로의 우리 미래에 대해 푸념하고 한탄하던 중이었다. 동기가 불쑥 이런 얘기를 꺼냈다.

"언니들이(대학 선배) 지금 우리 나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래. 우리 나이면 뭐든 시작해도 늦지 않았대. 심지어 수능을 다시 쳐서 대학을 새로 가도 된대.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해보고 싶은 거 해보라고..."

그 말을 했던 그 언니들도 지금 돌이켜보면 고작 20대 중반일 뿐이었다. 23살이란 나이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정말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나이다. 아마 지금의 나라면 열을 올리고 맞장구를 치며 그렇노라 말했을 텐데... 당시의 나는 남들이 다 하니까 1년 정도 휴학을 하고 학교에 돌아온 참이었다. 취업을 해야 된다는 막중한 압박감을 받고 있는 대학교 4학년. 휴학 1년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으므로 도대체 휴학을 왜 한 것이냐며 스스로를 자책하던 시기였다.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엔 맨얼굴 그 자체로 정말 제일 예쁘다는 어른들의 얘기가 귓등으로도 안 들렸던 것처럼 23살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언니들의 말은 마음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땐 왜 모든 것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급했을까. 긴 인생의 흐름에서 1년 아니 5년이라도 좀 늦게 간다고 무슨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지금의 나도 10년 혹은 20년이 지난 이후에 돌아보면 그땐 왜 그렇게 초조하고 불안하고 급했냐고 되묻게 되지 않을까. 그때가 참 좋았는데 하면서.


죽어라 하면 소위 남들이 말하는 삶의 속도대로 갈 수 있고 그것보다 더 죽어라 해야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그렇게 동기 부여를 해주는 강연, 책들이 차고 넘친다. 그럴 땐 나 같은 인간 유형은 자극을 받아 열심히 해보고자 하는 동력을 얻기보단 외려 답답함과 불편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들을 한다.

'왜 경쟁이 당연한 듯한 세상에 살아야 할까?'

'나도 남도 잘 살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나?'

'왜 이렇게 정해진 것 같은 루트로 살아야 되는 걸까?'

이게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의 방식인지 뭔지 분간도 하지 못한 채 남들이 다 하니까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듯 살아가는 게 진정 내가 원하는 걸까? (물론 난 애당초 그렇게 몰아붙일 재간도 없다만) 그렇게 생각하며 자꾸 오지 않은 미래로 나를 보내버리고 불안해하며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서 후회를 곱씹는다. 괴로울 수밖에 없다. 미래를 가든, 과거로 가든 어쨌든 지금 여기에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무엇을 위해,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가는 것인지, 대체 스스로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 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무작정 달려 나가는 건 참 지치는 일이다. 

다들 한 번쯤은 해본 고민이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푹신한 야자나무 잎사귀 자리에 누워있던 토끼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땅이 꺼지면 나는 어디로 달아나야 할까?'

마침 그때 잘 익은 열매가 잎사귀 위에 떨어졌다. 토끼는 순간 자리에서 튀어 일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지? 혹시 땅이 꺼지는 소리인가?'

하필 땅이 꺼지면 어찌 될 것인지를 떠올린 그 순간 근처에서 난 수상한 소리에 토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땅 속으로 파묻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정신없이 달아나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다른 토끼가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묻지 마. 피해, 어서!"

덩달아 무작정 따라가며 계속 다그쳤다.

"왜 그래? 왜 이렇게 뛰는 건데?"

"땅이 꺼졌어. 세상이 무너지고 있어"

이 말을 들은 토끼도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이 모습을 본 다른 토끼들이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뛰어, 뛰어! 달아나, 어서!"

결국 10만 마리나 되는 토끼들이 한꺼번에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사슴 한 마리가 보더니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돼지가 보고 같이 달렸고, 그 모습을 차례로 소, 물소, 코뿔소, 호랑이, 사자 그리고 코끼리가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도망치듯 뛰어가는 거야? “라고 서로에게 물었다가 "땅이 꺼지고 있대.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거야"라는 대답을 듣고 덩달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10킬로미터에 걸쳐 살고 있는 모든 짐승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동물들은 몰랐다. 무작정 앞으로 뛰어가고 있지만 머지않아 바닷가 낭떠러지를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때 사자가 동물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앞질러 달려가 동물들을 멈춰 세우며 물었다.

"땅이 꺼지고 세상이 무너지고 있어서 달아난다고 했는가? 그렇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본 자가 있는가?"

동물들이 고개를 꺄웃거리는 가운데 가장 늦게 뒤따라 달린 코끼리를 지목했다.

그러나 코끼리들은 우리도 잘 모른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차례로 되짚어 올라가니 제일 먼저 뛰기 시작한 토끼에게까지 이르렀다.

토끼는 답했다. "제가 봤습니다." 사자가 물었다. "어디서 보았지?"

토끼는 야자 잎 아래에 누워 생각했던 일, 툭 하는 소리를 들었던 일을 낱낱이 말했다.

사자는 '혹시 나무 열매가 떨어져서 낸 소리를 듣고 이 토끼가 땅이 꺼진다고 믿어버린 건 아닐까. 토끼가 도망치니 다들 그 말만 믿고 내달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리가 났다는 그곳을 한번 살펴봐야겠다.'

사자는 동물들에게 잠시 기다려줄 것을 부탁하고 토끼를 자기 등에 태웠다. 야자 숲에 이르러 토끼를 내려준 뒤 말했다. "자, 그곳이 어디지?"

토끼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 "일단 다른 곳으로 피하면 안 될까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자는 토끼에게 겁내지 말라고 다독였다. 토끼는 주춤주춤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역시 그곳에는 사자가 예상했던 대로 열매 하나가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사실을 확인한 사자는 다시 동물들에게 돌아가 "두려워하지 마시요. 그대들을 불안하게 하는 일은 없소."라고 말한 뒤 자기 동굴로 돌아갔다. 


오지도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온전히 갖지 못하고 날려버렸던 지난날의 모습은 딱 토끼와 토끼를 따라 달렸던 동물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토끼는 지금 달리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렸겠지만 그 끝이 바닷가 낭떠러지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와중에도 사실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점점 불안감과 두려움이 커졌다. 

모두가 이게 정답이라고 정해놓은 듯한 삶의 방식이나 모습들을 생각하고 그게 못 미친다고 불안해하다 보면  토끼와 함께 영문도 모른 채로 달리던 동물들이 생각난다. 내 모습이 그냥 딱 그 동물들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재수 없다면 140살까지도 살 수 있다는데, 남은 인생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는 길에 집중해 볼 참이다. 더 행복하고, 더 담담하게 살 수 있도록.    

달릴 때 달리더라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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