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럴싸한 말들을 떠올리고 싶지만 아무래도 없다. 튀김이 올라간 냉면과 불고기 김밥을 먹었다. 냉면 국물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화장실에 다녀왔다. 에어컨 바람은 약간 쌀쌀하고 얼굴은 세수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애기들은 엄청나게 시끄럽다. 노이즈캔슬링 너머로 안내방송과 아이들 소리 지르는 소리가 선명하다. 여기까지 적고 고갤 드니 사람들이 줄을 섰다. 30분 뒤에 비행기는 세부로 간다.
책으로는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그중 ‘네 인생의 이야기’를 먼저 읽었다. 영화 컨택트로 각색된 단편인데, 세상에, 엄청 좋다. 남은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혹여나 여행동안 다 읽으면 또 읽을 작정으로 두꺼운 샤프도 하나 가져왔다. 밑줄 그어가며 하나하나 곱씹는 시간을 보내는 거다. 바다나 맥주를 앞에 두고! 그러나 내가 과연 이걸 읽을까? 정말? 다시 읽을 정도로 많은 양을? 작년 발리에 가져갔던 책 한 권은 여행 이틀 만에 호스텔 캐비닛에 두고 왔다. 책을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며칠을 지냈으니 차라리 짐을 줄였다고 말할 수밖에. 여기까지 적다 발밑을 보니 내 에어팟이 떨어져 있다. 주머니가 얕은 반바지를 입었더니 짐이 자꾸 빠진다. 사람들은 아직도 줄을 서있다. 탑승이 미뤄지고 있는 듯하다.
물을 사러 갈까 말까 고민된다.
대체 이런 여행은 뭣하러 가는 걸까?
물은 사지 않는 게 좋겠다.
이런 이야기쯤이야 아무도 읽지 않아도 좋다.
줄을 섰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뒷좌석부터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승무원이 지나갈 때 물을 달라고 했다. 돈을 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승무원이 친절히 알려주었다. 이천 원입니다. 내 옆자리 아줌마는 프링글스, 마른오징어와 하이네켄 한 캔을 시켰다. 아줌마는 나이가구순은 되어 보이는 어머니와 같이 와서 그녀를 하나하나 챙기고 있었다.
“먹어요”
아줌마가 프링글스를 종이컵에 나눠담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나는 목이 너무 말라 먹고 싶지 않았다.
“먹어요, 먹어요” 아줌마가 말했다.
“감사합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뒷자리 아이가 발로 계속 등을 찼다. 때때로 내 좌석을 집어 당기기도 했다. 옆자리 아줌마는 말했다. “큰일 났네 호호”. 그때 나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이해’를 읽고 있었다. 큰 사고를 겪은 주인공이 회복을 위해 호르몬을 주사 맞았다가 초인류적인 능력을 섭렵하게 된 이야기다. 주인공 그레코는 자신의 유일한 적수, 또 다른 초인간 레이놀즈와 결투를 벌이게 된다. 이야기의 정점은 인류의 임계점을 넘어버린 두 초능력자의 결투 신인데, 육탄전도 논쟁도 없다. 레이놀즈는 이때 겨우 한마디로 주인공을 무너뜨린다.
“이해해”
자기 자신을 이해한 그레코는 그대로 무너진다.
아이가 등을 세게 찼을 때, 나는 슬쩍 뒷자리로 고개를 돌려 아이와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무표정했다. 아이가 앞자리를 발로 차든 말든 알 바 없다는 얼굴로 눈이 퀭해 있었다. 내릴 때 안 사실인데, 뒷자리에는 사실 아이가 둘이 아니라 셋이 있었다. 갓난아기 한 명이 엄마에게 안겨 있었다.
3
한 여자가 친구 핸드폰을 내 발밑으로 떨어뜨렸다. “디질래?” 친구가 말했다. 나는 몸을 구부려 의자밑으로 들어간 핸드폰을 꺼내주었다. “디질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 쥔 핸드폰을 한손으로 낚아챘다. 나는 그녀를 봤다. 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그 말을 반복했다. 디질래? 디질래? 디질래?
4
렉시아스 호스텔에 체크인했다. 레이첼은 내가 아침 8시에 왔는데도 친절히 설명해 줬다. 여기가 방이에요. 지금은 다들 잔답니다. 웰컴드링크를 드릴게요, 아이스커피나 아이스티로요. 호스텔은 목구조로 여러 층을 나눠놨는데 층마다 노트북으로 자기 작업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씩 있었다. 나도 노트북이 있었으면 글을 더 썼을까?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게 개발자였고 웹툰을 그리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5
꼭대기 라운지에 갔더니 안녕하세요 조심하세요 인사가 들려왔다. 한달살이 중인 미기다. 나는 그렇게 미기, 발레리, 안젤라를 만나 수다를 떨었다. 나는 발레리가 필리피노라서 놀랐는데, 그녀에겐 흔히 있는 일인 듯했다. 내가 한국에 가봤냐고 묻자 그녀는 자기 아빠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스텝 대디가 한국 사람이야”
“정말?” 나는 늘 그렇게 말한다.
“청주에 살아”
백인인 줄 알았던 발레리는 가족이 한국에 있는 필리피노였고, 미기는 광운대에서 공부를 했단다. 그녀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케이드라마, 케이팝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그녀들은 오빠, 어쩌고 하며 한국인을 따라 하는 걸 즐거워했다.
“오빠 배 곱 파 용”
“오빠 머 먹을 꼬에 용”
그녀들은 또박또박 따라 하며 웃었다.
내가 ‘배고파’가 따갈로그어로 뭐냐고 물어보자 발레리가 알려주었다.
“구똠 나호. 나ㅋ 호 라고 해야 해”
“구똠 낰 호” 내가 따라 했다.
“옵빵 구똠 나호”
“옵 빵 구똠 나호오옹-“
6
한 시간짜리 마사지를 받고 왔다. 마사지가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내일도 또 갈 생각이다. 나는 가끔 머릿속으로라도 내 몸을 다시 조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티니 아줌마가 비슷하게 해 줬다. 돌아와서 워크스페이스에 들어왔다.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이미 열중하고 있다. 모니터를 훔쳐봐야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없고, 그래서 그냥 이런 거나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근무를 한다면 뭘 할까? 어렸을 때 사슴벌레 잡던 이야기나 마저 적어보려고 했다.
7
양서초등학교는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마을은 두 산을 나누는 계곡을 따라 나있었다. 학교는 마을초입 큰 길가에, 우리 집은 농업용 저수지 밑에 있었다. 나는 저수지가 논밭으로 흘려보내는 물길을 따라가면 초등학교가 나온다고 생각하고 길을 외웠다.
나는 그 길이 꽤 멀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집엔 차가 없었으니 별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할머니가 키웠다. 할머니는 면허도, 차도 없어서 내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줬다. 엄마는 내가 네 살 때 일본으로 가서 열 살이 되자 돌아왔다. 아빠는 멀리 돈을 벌러 갔다고 했다. 사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했고 아빠에게 다른 가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나중의 일이다.
그 동네-도곡리-에 어린이는 나밖에 없었다. 신원리나 국수리 사는 애들은 버스를 타고 친구들이랑 집에 갔다. 그러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나만의 세상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데려다준 찻길을 따라 걷지 않았다. 저수지로 연결된 개울길이나 옆산으로 이어진 숲길을 따라 걸었다. 숲길의 끝에 봉긋한 묘지가 나타나면, 무서워진 나는 다시 포장도로를 향해 숲에서 도망쳐 나왔다.
8
근육들을 분해해 재조립한다 해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사실 특별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