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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Feb 26. 2023

점심시간 갈색 고양이

열두 시 사십 분. 점심시간을 이십 분 남겨두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전 내내 열받게 하는 사람이 많아 숨을 돌리지 않고서는 배기지 않을 노릇이었다. 나는 옆자리 주무관에게 말했다. 저 산책 좀 하고 올게요. 주무관이 답했다. 하 시팔 저는 똥 싸고 올게요.


주차장 뒤편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은 직원들이 산책하는 오솔길의 시작지점이었다. 나는 언덕을 오르자마자 갈색 고양이의 뒷모습을 마주쳤다. 고양이는 멀리 이어지는 오솔길을 바라보며 그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도로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튼 모습이 지나다니는 사람을 검문이라도 할 모양새였다.


나는 그 뒤태가 우스워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동작을 멈췄다. 그 녀석이 뒤에 사람이 나타난 걸 알았다간 제 꼴이 민망해서 도망가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조용히 카메라를 켰다. 앉아있는 고양이를 확대했다. 작은 동상 같은 아이의 윤곽과 오솔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명암이 그려졌다. 엽서로 써도 될 만큼 멋진 장면이었다.


찰칵. 사진 찍는 소리에 고양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고양이는 몸뚱이를 가만두고도 고개만 180도 돌릴 수 있는 생물이었다. 그 녀석은 목을 꺾어 두 눈으로 나를 똑똑히 쳐다봤다. 나는 그 자세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서 움직이면 놀란 고양이가 달아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하고 오른발을 왼발의 왼편으로, 다시 왼발을 오른발의 왼편으로 옮겼다. 들고 있던 핸드폰은 다시 조용히 주머니로 가져갔다. 적어도 내가 널 찍으려던 건 아니었어,라고 변명이라고 하듯이.


그러자 그 녀석이 이번엔 머리를 가만두고 몸통을 고개 쪽으로 돌려세워 네발로 꼿꼿이 서는 것이었다. 부위별로 따로 동작하는 관절인형처럼 말이다. 털이 햇볕에 정면으로 비추자 완전한 치즈색으로 보였다. 고양이는 완전히 얼어버린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얏 옹


나는 긴장을 풀고 다시 천천히 카메라를 들었다. 잘만하면 그 고양이가 멀리 도망가지 않게하고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고양이는 한걸음 씩 내 쪽으로 다가오며 이렇게 말했다.


얏 옹.

이얏 옹.


그러니까 그 고양이는 꼭 두 글자로 우는 소리를 냈다. 우리는 야옹 혹은 냥이라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지 않던가. 그런데 이 녀석은 얏과 옹을 완전히 두 음절로 구분해 얏, 옹, 혹은 이얏, 옹, 이라고 울었다. 말하자면 울음의 뒷 음절에 엑센트를 한번 더 줬다는 얘기다. 녀석은 그렇게 몇 번을 울어대더니 이제는 나를 향해 서둘러 다가오고 있었다. 발걸음 하나에 얏, 옹. 다른 발걸음 하나에 이얏, 옹. 갈색 고양이가 어느새 내 발 한 치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왼손을 고양이에게 뻗었다. 오른손은 핸드폰 카메라를 쥐고 있었다. 그 아이는 시선을 내 머리끝부터 시작해 하나씩 훑었다. 정수리에서 상체로, 점차 내려오는 무릎으로, 서서히 뻗어가는 왼손으로 향했다. 마침내 녀석은 내 왼손에 시선을 멈추고 후다닥 달려와 내 왼손과 왼팔에 걸쳐 미친듯이 몸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얏옹, 이얏옹, 얏옹, 이얏옹, 이얏옹 야핫 홍. 나를 한 바퀴 도는동안 온몸으로 비비며 신명나게 울었다.


결국 그 자리에 그대로 걸터앉게 됐다. 나는 갈색 머리통을 쓰다듬었다가 녀석이 엉덩이를 내밀면 엉덩이를 두들겨줬다. 녀석은 요물처럼 내 전투화에 올라탔다가 내려앉으며 배를 까기도 했다. 내가 배를 간지럽히려 하면 몸을 몇 바퀴 돌리고 일어나 나에게 몸통을 누르며 내 등 뒤로 사라졌다. 내 시선이 내 뒤로 따라가면 녀석은 머리를 부딪히거나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와 전투화를 밟고 옆으로 누웠다. 고양이는 끝까지 두음절로 이얏, 옹, 하고 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십 분이 지났다. 오솔길로 사람들이 지나왔다. 사무실에 들어갈 때가 된 것이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똥을 싸고 돌아온 주무관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심통이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너무 빨리 끝났을 터다.

"저 위에 고양이 있는 거 알아요? 사람을 엄청 좋아하던데" 내가 말했다.

"어디요? 언덕 위예요?" 주무관이 말했다.

"주차장 뒤예요. 치즈 색이에요"

"황색이 아니에요? 부장님이 밥 주던 고양이."


부장님이 고양이 밥을 주던 건 알았지만 그만둔 줄로 알고 있었다. 본부장 지시사항으로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안전상의 문제로 영내 고양이 밥 주기를 절대 금지함. 사고 발생 시 책임 묻겠음'이라고 게시된 지가 벌써 일 년 전 일이기 때문이다. 부장이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고양이 밥을 주고 있다고 본부장에게 밝혔는데, 본부장은 별 대꾸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고 며칠 뒤에 홈페이지에 그 공지사항이 게시됐다.


"고양이 밥 주지 말라해서 안 주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내가 물었다.

"그래도 계속 줬어요. 가끔 요즘 황색이 안 보인다고 투덜대시던데. 퇴직하시면서 사료도 그대로 두고 갔어요."


매주 금요일 오후엔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 나는 상자 몇 박스와 플라스틱통을 가슴에 가득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분리수거장은 주차장 옆에 붙어있는데, 그 안에 쓰레기 배출을 돕고 있는 근로자 두 분이 보였다. 그때 점심시간에 마주쳤던 갈색 고양이가 언덕을 따라 가벼운 동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녀석은 이번엔 분리수거장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곧 들어갈 것처럼 발걸음을 놀리고 있었다. 내가 쓰레기를 안고 문을 들어서려고 하자 배출을 돕던 근로자 아저씨가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이 놈!" 아저씨가 발을 크게 구르자 깜짝 놀란 고양이가 저 멀리 주차장 구석으로 달아났다.

같이 놀란 내가 쓰레기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쟤 여기에 자주 오나 봐요?"

"자주 와요. 금요일이면 우리가 여기서 밥을 주거든요" 아저씨가 말했다.

"근데 왜 내쫓으신 거예요?"

"지금은 분리수거를 해야 하잖아요"


나는 상자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테이프를 다시 찢어 하나씩 곱게 폈다. 종이를 쌓아둔 곳에 차곡차곡 정리해 올려두었다. 페트병은 페트, 병은 병이라고 쓰여있는 파란색 통에 던져 넣었다. 우리가 일주일간 먹은  대부분 비타오백과 구론산이었다. 어느  아침으로 먹었던 샌드위치 포장재를 들고 아저씨에게 이건 어디에 버리면 되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헷갈리면 그냥 페트에 넣으라고 했다. 어쨌건  주간 쓰레기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금세 분리수거를 마칠  있었다. 황색이. 분리수거장을 나왔을   녀석을 다시 찾아보았다. 황색아! 날씨가 무척 좋아졌던 까닭일까?  녀석은 멀리 달아나 쉽게  놀곳을 찾았을 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희미하게 불러 보았다. 이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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