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적당한 스포일러가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를 한번 더 봤다. 상영관에서 다시 본 영화로는 올해 두 번째다. <헤어질 결심>과 <에에올> 중에 뭐가 더 좋았냐고 물으면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 여운은 <에에올>로 기운다. 아무래도 최근에 봤으니까. 왓차피디아를 열어 별 다섯 개를 표시했다. 처음엔 네 개 반과 다섯 개 사이를 고민했지만 다섯 개 만점이 확실하다. 별 반개 차이는 사적인 데서 온다.
영화 도입부, 웨이먼드가 아내 에블린에게 "무슨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 나는 벌써 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바쁜 에블린 대신 자막이 대답했다. 모든 것. 동시에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란 피아노 화음이 상영관을 꽉 채웠다. 누를 수 있는 건반은 다 누른 것 같다. 그때 나는 짐작했다. 이 영화는 산만한 와중에 잃을 수 없는 무언가를 건져가며 흘러가리라고. 내가 내 하루에 바라던 듯이 말이다.
지난 2년, 나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점이 있다면 내가 생각보다 섬세하거나 예민하단 사실이다. 가끔 누군가 '너 예민해졌다'라고 말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위로해 주는 말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틀렸다. 지가 뭔데 그렇게 말하지? 적다 보니 살짝 짜증이 날 정도다. 아무튼 나는 남들보다 예민하게 태어났다. 그 특성을 이상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서야 인정하고 티 내고 있을 뿐이다. 예민함을 늦게 받아들인 이유는 유난한 사회적 적응능력 때문이다. 예민하면서도 금세 사회에 옷을 맞추고 내 역할을 찾는 기질때문에, 나조차도 내 예민함을 인정해줄 틈이 없었다. 둘 중 하나만 가지면 좀 편할 텐데. 어쨌거나 가만히 살더라도 소모하는 에너지가 많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집에 가면 이상할 정도로 더 지친다.
그런 의미에서 재작년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책은 작은 구원이 됐다. 내가 수집하는 정보가 너무 많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지능이 높다거나, 후천적으로 성실한 똘똘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니 판단을 곁들여 받아들이지 말아주길 바란다. 글자그대로 수집하는 정보가 많을 뿐이다. 내 키가 172이고, 약지 손가락이 검지보다 더 긴 사실에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정보를 수집하는 세포가 내 몸에 자라고 있다면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을 뿐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 일들이 이해가 된다. 나는 퇴근하고 전전긍긍대는 성향이 있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영화를 봐야 하는데, 공부를 해야 하는데, 가계부를 정리해야 하는데, 나는 왜 졸라 피곤할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한 글자도 틀리면 안 된다. '내가 수집하는 정보가 너무 많군!'이라고 생각하자, 편히 누워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똑같이 8시간을 일했더라도 남들보다 더 많은 배터리를 쓰는 인간이기 때문에, 쉴 필요가 있으니까.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산만한 와중에 무언가 건져내며 흘러갈 거라는 내 짐작은 틀렸다. 영화는 아무것도 건져내지 않는다. 산만하게 뻗도록 가만히 놔둔다. 상상력은 특이점을 넘었다. 영상은 특이점 너머를 대변할 뿐이다. 차라리 상상을 시험하는 오락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다른 우주에서 만난 우리가 절벽 위의 바위라는 이야기, 어떤 우주에서는 손가락이 모두 핫도그라는 이야기 안에서 어떤 단일한 메시지를 건져낼 수 있다는 말인가.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모든 것'이라는 대답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에블린이 '수집하는 정보가 너무 많'아 산만해지는 동안 그녀와 그녀 주변이 의도치 않게 정리되는 방식이 영화의 내용이다.
이 영화가 멋진 이유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그 모든 산만을 인정해버렸기 때문이다.
무한한 멀티 버스를 통달한 두 사람이 있다. 엄마와 딸. 에블린과 조이(조부 투파키)다. 조이는 세상에 발생 가능한 모든 우주를 동시에 이해하고 만다. 여러 우주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능력을 갖춘 그녀는 어느 우주도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차라리 세상을 지워버리고 말겠다는 신념을 가진 '조부 투파키'가 된다. 조부 투파키는 뒤늦게 우주를 이해하곤 혼란스러워하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Nothinig matter". 아무 의미 없다고. 에브리웨어 내가 다 겪어봤는데, 어차피 남는 건 허무뿐이니 베이글 너머로 이 우주를 데리고 차라리 사라지자고.
에블린 역시 모든 우주를 동시에 겪어낸 경지에 이른다. 조부 투파키를 막을 영웅의 필요에서 에블린이 탄생했지만, 영웅 에블린이 나가는 방향은 순전히 개인적이다. 지긋지긋한 남편 웨이먼드를 만나지 않았던 우주, 날 괴롭히는 공무원과 연인으로 만난 우주, 절벽 위에 수천 년간 놓인 돌멩이로 딸과 재회하는 우주를 겪고, 에블린은 조이에게 마찬가지로 말한다. "Nothing matter". 나는 여전히 네 타투가 싫다. 살찐 것도 싫다. 그러나 허무가 아니다. 이제 모든 우주를 다 겪어보았으니, 비로소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바로 여기서 너를 선택하겠다.
대환장 파티의 말미에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훌쩍거린다. 어쩌면 미리 준비된 감동 때문이다. 영웅의 면모를 갖추고 기껏 사소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의 뻔한 순서를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이 모든 우주를 다 겪고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모든 우주를 겪었기 '때문에' 비로소 여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절망할만한 이야기는 지금 여기를 선택하는 일에 '방해'가 아닌 '근거'가 된다. 과하게 수집된 정보는 그 와중에 탄생할 내 선택을 빛내는 재료가 된다.
수집하는 정보가 너무 많은 이들을 위한 처방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요가를 비롯한 명상이다. 지금 매트 위에서 요가 동작 하나에 집중하고,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세다보면, 다른 곳으로 멀리 떠나버리는 복잡한 마음을 어느 정도는 정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여기에 동의하면서도 가끔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숨을 쉬는 순간이야 그렇다 치지만, 돌아오면 복잡한 세상과 문젯거리는 산적해 있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낫띵 매러다. 지금 여기를 말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그 모든 이야기를 그대로 존재하게 두는 일뿐이니까. 올 앳 원스, 무려 한꺼번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