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jtbc마라톤
고3. 밤 열 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나는 집까지 뛰어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교실에서 2킬로 정도 떨어져 있었다. 남자 애들은 야자 하는 동안 운동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다. 종이 울리면 펼쳐둔 책들을 그대로 책상 안으로 밀어 두고, 그 차림 그대로 집까지 달려 나갔다. 커다란 국도와 넓게 뻗은 논두렁을 지나야 했다. 차도를 따라 보도블록을 오분정도 뛰다 보면 먼 논밭의 냄새가 슬슬 가까워졌다. 파란 불빛의 아파트 단지가 보일 때면, 단지 밑으로 펼쳐진 거대한 고래논 사이로 포장된 농로가 스테이지처럼 뻗어있었다. 논이 나타나면 반드시 싸이의 <예술이야>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싸이에 미쳐있었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PMP엔 싸이의 흠뻑쇼 영상이 같이 담겨있었는데, 그중에서 특히 <예술이야> 파트를 여러 번 돌려보곤 했다.
너와 나 둘이 정신없이 가는 곳.
정처 없이 가는 곳.
정해지지 않은 곳.
그렇게 농로를 달리며 두 팔을 벌리면, 관객석을 가득 채운 수백 평의 벼가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고 나를 향해 뛰는 것 같았다. 주머니 속 PMP에서 싸이가 무대를 가로지르는 동안, 나는 거의 벼들과 하이파이브하며 달렸다. 컴컴한 시골 어둠 사이로 벼들은 아파트의 푸른 불빛을 조명삼아 고개만 떠있는 듯했다. 하늘은 날아가는 기분이야. 죽어도 상관없는 지금이야. 농로의 길이는 딱 노래하나 끝날만큼이었다. 논을 지나고 아파트의 초입이 나타나면 가파른 언덕을 달려야 했다. 노래가 끝나면 나는 이를 악 물었다. 이 언덕만 걷지 않고 넘어가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이겨낼 수 있으리란 생각-그러니까 그땐 겨우 수능에 불과한 것-을 했다.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십 년이 지난 11월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열린 jtbc 마라톤을 달리고 있었다. 싸이도, 관객도, 논밭도, 파란 불빛의 아파트도, 야자도, 고개를 흔드는 벼들, 수능을 잘 보고 싶다는 두려움과 욕망도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초라하고 쳐진 등들, 생쥐처럼 비에 젖고서도 낙엽처럼 굴러가는 사람들. 39km 지점에 이르자 굴러가는 사람들을 놀리는 듯이 긴 언덕이 나타났다. 이 언덕만 넘어가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이겨낼 수 있으리란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내 숨소리가 들렸고, 쥐가 나서 포기하는 사람이 보였고, 물을 건네는 사람이 보였고, 관성에 의해 앞으로 밀려나는 만큼만 앞으로 뛰었다.
왜 뛰었냐는 질문은 대체로 두 부류다. 하나는 질문이 전부인 순수 질문. 마라톤 왜 했어? 42킬로를 달리겠다는 결심 너머에 마땅한 자기의식이 있으리란 추측이다. 다른 하나는 질문을 가장한 자기표현. (도대체) 마라톤 왜 했어? (이해가 안 가. 아니! 절대 이해하지 않을 거야!). 그들은 놀라움으로 완주에 경의를 표하는 듯 하지만, '네겐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어'라는 메시지를 건네고 싶을 뿐이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공감할지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후자가 정말 많다. 물음의 동기야 어찌 되었든 간에 어떤 종류의 질문에도 나는 아직 세련된 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마땅한 자기의식 같은 건 없다. 사실 내가 내게 묻는다 해도 여전히 조롱에 가까운 질문을 하고 있다.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을 뿐이야. 뭣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고.
언덕을 넘자 피니시 라인까지는 3킬로미터가 남았다. 코스는 마침내 잠실 시가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계를 점점 자주 봤다. 남은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듯하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위로하기가 쉬웠다. 이십 분만 더 뛰면 된다. 아니 십오 분만. 십 분만. 고가를 달릴 때 키가 너무 큰 남자가 내 옆으로 붙었다. 구름이 거대한 그림자를 내 옆으로 드리우는 듯했다. 마라토너들이 서로의 간격을 넓히고 줄이는 모습은 꼭 레이싱 경기장의 차들이 차선을 바꾸어 붙는 모습과 같다. 마티즈옆에 거대한 트레일러가 붙었다고나 할까.
"저를 이끌어주세요. 헉헉" 트레일러를 닮은 남자가 말했다.
"좋아요 헉헉" 내가 말했다.
"같이 가면 할 수 있을 거 같앜욬 헉헉" 다시 그 남자가 말했다.
말문을 떼니 힘이 나는 듯했다. 내가 그럭저럭 잘 뛰고 있나 보군, 이라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기운을 차렸다. 남자는 내게 이대로면 몇 분에 골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지만 정신이 없어서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남은 거리는 3킬로 정도였고, 경과시간은 세 시간 이십 분 정도 지나고 있었다. "세 시간 삼십오 분 정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트레일러를 닮은 남자는 깜짝 놀라더니 "아니 왜요? 헉헉"하고 말했다. "이대로면 세 시간 삼십 분 아니에요?"라고 묻는 것이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남자는 무언가 깨달은 듯이 외쳤다. "아! 42킬로라니!"
"41킬로인 줄 알았어요" 그 남자가 얼굴에 마른세수를 하는 게 옆시야로 느껴졌다. "42킬로라니"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는 이제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듯했다. "같이 가요"라고 내가 말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같이 뛰었을까. 내리막길이 나타나자, 커다란 트레일러는 이런 내리막길을 달릴 순 없다는 듯이 속도를 줄였다. 남자는 뒤로 멀어져 갔다. "먼저 가세요"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먼저 갔다. 그렇게 2킬로가 남았다.
코스가 잠실의 커다란 건물사이로 들어서면서 응원을 나온 사람도 점점 많아졌다. "다 왔다"라는 구호가 이곳저곳 들리기 시작했다. 첫 마라톤 참가였기 때문에, 내가 속한 출발 대형은 D그룹, 가장 후발 주자였다. 어느 대회든 원활한 주로 관리를 위해 기록이 없는 사람은 맨 뒷 그룹에서 뛰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발주자가 40킬로 지점에서 킬로미터당 5분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면 많은 사람을 추월하게 된다. 마치 혼자만 뛰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내가 너무 힘든 나머지 혼잣말로 '화이팅'이라고 읊조렸을 때, 그 말을 들은 한 남자가 왼편에서 "화이팅!"이라고 응수해 주었다. 흰 옷을 입고 머리가 긴 남자였다. 흰 티가 비에 젖어 그의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마티즈라면 그는 튼튼한 소형 SUV라고나 할까. 남자는 나랑 같은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군중으로부터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었다. 조금 전에 같이 뛰자고 했던 키 큰 남자가 생각났다. 나는 흰 티를 입은 남자뒤로 바싹 붙었다. 그는 아무래도 베테랑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 만 따라가면 페이스를 놓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뒤에 어이없게 골인했다. 마지막 2킬로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몇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해도 그 일들의 선후관계를 잘 모르겠다. 흰 티를 입은 남자와는 언젠가 헤어졌다. 한 여자가 초록색 패널에 "다 왔어"라고 써놓고 두 손으로 들고 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다왔어"라고 읊조렸다. 그러자 그 여자가 "다왔어"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어디쯤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다 주황색 아치로 만든 피니시라인이 갑자기 나타났다. 세레머니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런 생각은 왜 극한에도 남아있던 것일까? 두 팔을 벌렸다. 팔이 무거워 다시 내렸다. 골인했다.
피니시 라인을 지나는 동안 지난 오 개월 간의 힘든 훈련 여정과 부상으로 고통스러웠던 나날들, 같이 마라톤 준비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소중한 얼굴들과 인스타그램으로 날아왔던 응원의 메시지들, 따위는 정말이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주마등처럼 무언가 스쳐간다는 이야기는 (훗날 내가 그런 말을 한다면) 뻥이다. 피니시라인이 나올 때까지 참고 달린 뒤, 피니시라인을 지난다. 허무하지도 않을 만큼 별것 없었다는 듯이 모든 게 끝이 나고 메달을 받는다. 질문만 남긴다. 왜 뛴 거지. 그것만이 나에게 42km 완주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생각보다 성취감이 없네?" 해현이 형이 말했다.
"그러게"라고 말했다.
우리는 뒤풀이하지 않고 각자 집에 갔다.
곰탕을 시켜 먹고 낮잠을 자야겠다는 생각과 내가 왜 뛴 거지,라는 질문만 남아있었다.